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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물결 (2019.7.4.)

― 광주 계림동 〈유림서점〉

광주 동구 중앙로 298 (광주고 앞문 옆)

062.223.2320.



  순천 헌책집 〈형설서점〉 책지기님하고 벌교에서 광주로 달립니다. 〈형설〉 책지기님은 무척 오랜만에 광주 계림동으로 마실을 한다고 합니다. 함께 달리는 차에서 우리 삶을 둘러싼 책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 지자체에서 목돈을 들여 책마을을 짓거나 책터를 꾸미는데, 왜 막상 ‘오랜 책손길’로 마을책집을 가꾼 사람들은 그러한 책마을이나 책터에서 한복판에 서지 못하는가 하는 이야기도 합니다.


  어느덧 광주에 닿습니다. 찻길 한켠에 흰금으로 그린 차댐터에 짐차를 세웁니다. 참외를 두 자루 장만합니다. 오랜 책집 어르신한테 찾아가는 길이라 한 자루씩 드릴 생각입니다. 광주고 앞문하고 사이좋게 있는 〈유림서점〉에 먼저 들르기로 합니다. 〈형설〉하고 〈유림〉 두 책집지기가 살가이 말을 섞는 동안 저는 〈유림〉 골마루를 거닐면서 이곳에서 새로운 손길을 기다리는 책을 돌아봅니다. 어린이책도 푸른책도 여느 인문책이나 문학책도 고루 있습니다. 고등학교 앞문 곁에 있는 이 헌책집을 눈여겨보거나 즐겁게 마실을 하는 광주고등학교 푸름이는 몇쯤 있을까요? 이곳 교사는 고등학교 곁 헌책집을 얼마나 자주 드나들며 ‘오래되면서 새로운’ 책숨을 받아들일까요?


  《사랑의 비문》(이상규, 동해, 1989)이란 시집을 뒤적이다가 묵은 일본 교과서를 몇 봅니다.


  《新版 標準 國語 一年 下》(敎育出版周式會社, 1970)

  《新版 標準 國語 三年 上》(敎育出版周式會社, 1981)

  《新版 標準 國語 一年 下》(敎育出版周式會社, 1981)


  예전에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이자 자료조사부장을 맡을 적에 일본 옛 교과서를 ‘사전짓기 자료’로 잔뜩 장만하곤 했습니다. 묵은 교과서도 사전을 짓는 길에 살뜰히 자료 노릇을 합니다. 새삼스레 이 묵은 일본 교과서를 들추는데, 일본도 1960년대부터(또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누런종이 교과서를 썼군요. 새삼스럽습니다. 그동안 이 일본 교과서를 다시 장만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못 만났어요. 예전에 출판사에 깃들어 달삯을 받고 일할 적에는 그곳 자료로 신나게 갖추어 놓았으나, 혼자 사전짓기라는 길을 가면서 ‘사전짓기 자료’를 다시 갖추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책을 사놓는 돈을 오롯이 제 주머니에서만 털어야 하니까요.


  아무튼 이 일본 옛 ‘국어 교과서’를 들여다보니, 겉그림이며 속그림이 거의 ‘이와사키 치히로’ 님 그림인데, 이와사키 치히로 님 그림을 그대로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썼을까요? 다른 그림쟁이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흉내’를 내면서 다시 그렸어요. 그래서 그림결이 퍽 서툽니다.


  아, 이런 그림넣기를 한국도 일본을 따라 그대로 했지요. 한국도 어린이 교과서에 이렇게 ‘좋은 그림’을 바탕으로 삼되, 그 좋은 그림을 그대로 살리기보다는 ‘다른 그림쟁이한테 맡겨’서 살짝 달리 그렸어요. 굳이 이래야 했을까요? 게다가 한국은 왜 일본 따라쟁이 노릇을 했을까요? 한국 어린이한테 왜 일본 어린이스러운 교과서를 오랫동안 쥐어 주었을까요? 오늘날 한국 교과서는 얼마나 한국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걸맞게 줄거리하고 겉모습을 짰을까요?


  《늑대와 춤을》(마이클 블레이크/정성호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2002)을 보면서 깜짝 놀랍니다. 그렇구나, 영화에 앞서 책이 먼저 있었네! 1988년에 소설로 먼저 나왔네! 여태 몰랐네!


  《나보다 우리일 때 희망이 있다》(조충훈·김종두, 임팩트프레스, 1999)는 광주 대인동에 있던(또는 아직 있을는지 모를) 출판사에서 펴낸 책이고, 이 책을 함께 쓴 사람 가운데 조충훈 님은 순천시장을 맡은 적 있어요. 책 하나에 이런 이야기도 흐르는군요.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케이트 디카밀로 글·배그램 이바툴린 그림/김경미 옮김, 비룡소, 2009)을 뒤적이고, 《신라인의 마음, 신라인의 노래》(이형대, 보림, 2012)을 뒤적이다가 《고양이 눈으로 산책》(아사오 하루밍/이수미 옮김, 북노마드, 2015)을 고릅니다.


  이곳 〈유림서점〉은 헌책집입니다. 헌책집이니 헌책이 있는 곳일 텐데, 사람 손길을 탄 책이 바로 헌책입니다. 줄거리가 헐거나 낡지 않습니다. 겉그림이나 책종이에 살그마니 사람 손길이 배었을 뿐입니다.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책도 꽤 많아요. 갓 나와서 갓 읽히고 새로운 책손을 기다리는 책이 줄줄이 탑처럼 쌓입니다.


   헌책집이니 새책 아닌 헌책이 있는 곳입니다만, 사람들한테 사랑받아 읽히고 새로운 손길을 기다리는 따끈따끈한 책이 복판 골마루를 사이에 두고 이쪽저쪽으로 곧게 물결을 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슬쩍 쓰다듬습니다. 책탑이자 책물결은 숱한 사람들 눈길이며 사랑이 머금고서 이렇게 어우러지겠지요.


  이다음에 〈유림서점〉을 새로 찾아올 적에는 겉에 물결치는 책탑을 한 꺼풀 벗겨 뒤쪽을 돌아보자고 생각합니다. 뒤쪽 책물결은, 깊이 묻힌 안쪽 책물결은 또 어떤 손때를 품으면서 책손을 기다릴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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