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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곁에

― 서울 〈글벗서점〉 02.333.1382

 서울 마포구 신촌로 48



  깊어가는 겨울녘에 사람들 물결을 스쳐 헌책집으로 찾아갑니다. 서울마실을 띄엄띄엄하기에 서울에 있는 숱한 헌책집이나 마을책집을 두루 다니지 못합니다. 시골에 사니 그러려니 하고 여기다가 이 생각이 썩 좋지 않다고 느낍니다. 시골에 사니까 서울에 있는 책집을 두루 못 다닌다기보다 ‘서울에 바깥일이 있어 찾아갈 적에 기쁘게 쪽틈을 내어 아름다운 책집으로 사뿐걸음을 한다’는 쪽으로 생각을 돌리기로 합니다. 책집에 다닐 틈이 없는 살림이 아닌, 숲바람하고 숲책을 여느 때에 아늑하게 누리다가, 대때로 책집바람하고 책집숨결을 느끼는 나들이를 재미나게 다닌다고 생각하자고 느낍니다.


  서울 강남에서 버스를 내린 다음에 지하철을 돌고돌아 신촌에서 내리면 바야흐로 바람하고 햇빛을 누리며 걸을 수 있습니다. 다만 오늘은 밤길을 걷습니다. 〈글벗서점〉이 가까이에 보입니다. 돌돌 끄는 짐수레를 멈추고 사진기를 꺼내어 목에 겁니다. 이제부터 굵고 짧게 책집마실을 누리기로 합니다. 길손집에 들기 앞서까지 책을 곁에 두려고요.


《대한 어머니》(대한 어머니회) 23호(1984.12.)

《대한 어머니》(대한 어머니회) 24호(1985.3.)

《대한 어머니》(대한 어머니회) 37호(1986.9.)


  이런 잡지는 누가 왜 찍어냈을까요? 요즈음에도 ‘대한 어머니회’가 있을까요? 자그마치 1965년에 첫발을 떼었다는 ‘대한 어머니회’라지만, 아무래도 군사독재정권 입맛에 따라 사람들 눈귀를 속이는 길을 걸어온 곳, 관제기관이라고 느낍니다. 《대한 어머니》에 나오는 ‘대한민국 어머니 헌장’하고 이 잡지에 나오는 글자락을 몇 군데 옮겨 봅니다.


- 대한민국 어머니 헌장

[앞글] 어머니는 아들딸을 낳아 잘 기르며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이바지하며 보다 살기 좋은 세계를 이룩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힘쓴다. 그리하여 여기 어머니 헌장을 마련한다 …… 1965년 5월 8일


금년 국군의 날 유시에서 전두환 대통령으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길이며, 최선의 승전전략은 적의 도발의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며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23호 93쪽)


전두환 대통령의 대화재개 노력은 그동안 북한의 대남무력통일 고집으로 번번이 거부되어 왔다 … 제5공화국은 출범과 함께 구시대의 규제와 속박을 훌훌 벗어버리고 개방과 자율의 정책을 소신있게 펼쳐 나왔다. 82년 초의 야간통행금지 해제를 비롯, 중·고등학생의 머리 모양과 복장 자율화, 대학의 자율 보장, 그리고 해외여행의 단계적 자유화 추진 등이 그 대표적인 일들이다. (24호 98∼99쪽)


  《대한 어머니》라는 잡지는 어떤 돈으로 찍어서 어디에 뿌렸을까요. 이 잡지를 엮은 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으며, 그들은 어떤 돈하고 이름값을 누리며 이 나라를 어지럽히거나 흔드는 길을 간 셈일까요. 언젠가 우리 스스로 씻어내야 할 독재부역 뒷그늘이지 싶습니다.


  《트라브존의 고양이》(현순혜, 나녹, 2017)를 집어듭니다. 《채만식 어휘사전》(임무출, 토담, 1997)이 눈에 뜨여 같이 집어듭니다.


표제어 9482어와 12,858개의 예문을 싣고 있다. 표제어에는 토박이말 50.61%, 한자말 37.78%, 외래어 등 기타 어휘가 11.61%로 구성되어 있는데 … 한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이 중에서 기존의 국어사전에 없는 토박이말이 1631어로, 전체 토박이말의 33.99%나 되었고, 한자말도 13.52%나 되었다. 우리 국어사전에 이렇게 많은 우리말이 빠져 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책을 내면서)


  ‘채만식 사전’에 실은 낱말이 1만이 살짝 안 된다는군요.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을 테지만, 글로 담아내는 낱말은 다들 그리 안 많습니다. 입으로 주고받는 말에 흐르는 낱말은 훨씬 적습니다. 《채만식 어휘사전》은 1997년에 나왔고, 그무렵 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낱말이 많았다는데, 오늘날에도 그리 다르지 않아요.


  오늘날 사전은 시사용어 한자말이나 영어는 바로바로 싣는 흐름인데, 이와 달리 고장말은 도무지 안 담으려는 흐름입니다. 고장마다 고장 터전에 발맞춤 살림살이를 그대로 녹여낸 말이 고장말이에요. 똑같은 것을 놓고도 사람들은 다 다르게 느껴서 다 다른 이름을 붙였지요.


  이밖에 사람들 스스로 새로 짓는 말이 꽤 많습니다. 알맞춤하면서 살뜰히 지은 말을 차곡차곡 담는 사전이 되자면, 높은자리 아닌 열린자리로 나아가서 마음을 틔워야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누릴 삶을 돌아볼 적에 비로소 새말도 짓고 옛말도 살찌웁니다.


  《제시 이야기》(박건웅 그림, 우리나비, 2016)를 골라듭니다. 박건웅 님이 처음에 선보인 만화책에 대면 글밥이 너무 많고, 그림결이 좀 틀에 박히는구나 싶습니다. 홀가분히 꽃피어나는 그림으로 살찌우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앞서 들춘 《대한 어머니》는 군사독재가 내세우는 거짓말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어머니로서 어머니답지 않은’ 모습이었다면, 《제시 이야기》가 태어나도록 일제강점기에 중국 한켠에서 ‘아기를 돌본 나날’을 적바림한 일기는 그야말로 ‘어머니로서 어머니답게’ 걸은 몸짓이지 싶습니다.


  어머니로서 사랑이라면 총칼을 아랑곳하지 않으리라 느껴요. 어머니로서 사랑어린 슬기라면 아이를 숲을 마을을 꿈을 목숨을 온누리를 고이 품어서 밝은 눈길로 허물벗기를 하도록 이끌리라 느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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