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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펴내는 <동화읽는 어른>

2019년 9월호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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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글쓰기

우리말 이야기꽃 : 다섯걸음 ― 글이란 꽃



이원수는 동화 창작, 동시 창작, 외국 어린이문학 번역, 어린이잡지 편집장, 젊은 어린이문학가를 키우고 북돋우는 일, 나라에서 젊은 어린이문학가한테 궂은 일(정권 입맛에 맞는 글쓰기)을 시킬라 치면 이를 손사래치는 방패막이 구실을 하였다. 이원수를 따르는 쪽에서도, 이원수가 못마땅한 윤석중 무리에서도, 이원수가 일제강점기에 친일시를 쓴 줄은 다들 알았다. 이원수를 따르는 쪽에서는 이원수가 ‘입에 발린 겉치레’로 참회록을 쓰기보다는 ‘온몸으로 참회하는 삶’을 보내기에 너그러이 받아들였고, 이원수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군사독재 부역자로 지낸 어린이문학가 무리는 이원수 스스로 키운 커다란 문학판에서 딴소리를 하지 못했다. 남북녘 모두 군대와 총칼을 버리고 평화롭게 어깨동무를 하는 새로운 어린이나라를 지어야 한다는 뜻을 밤낮으로 글로 펴다가 몸을 너무 많이 쓴 탓으로 그만 몸져누워서 이승을 떠난다. 《우리말 글쓰기 사전》 332쪽



  이오덕·권정생 두 어른이 주고받은 글월은 책으로 두 판 나왔습니다. 첫 판은 2003년에 어느 출판사에서 두 어른 몰래 펴내며 말썽이 되었고, 둘째 판은 권정생 님이 이승을 떠난 지 여덟 해 뒤인 2015년에 나왔습니다. 이미 지난 일일 수 있습니다만, 바로 이 지나간 일을 몇 가지 적어 본다면, 이오덕 어른은 이녁 몸도 나쁜데다가 권정생 어른도 몸이 나쁘다 보니, 둘 가운데 누가 먼저 저승길로 갈는지 모르는 터라, 둘이 주고받은 글월을 한자리에 모아 보자고 했습니다. 권정생 어른이 물었지요. ‘선생님, 그 편지, 책으로 내시게요? 편지를 책으로 내시겠다면 이제 더는 편지 안 쓰겠습니다.’ 이오덕 어른은 ‘지금 내자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다 죽고 나서 내면 좋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죽기 앞서 아직 조금이라도 건강할 적에 정리를 해두면 좋겠습니다.’ 하고 얘기했습니다. 이리하여 권정생 어른은 그동안 이오덕 어른한테서 받은 글월을 추슬러 이오덕 어른한테 보냈고, 이오덕 어른은 서로 나눈 글월을 차곡차곡 갈무리했어요. 권정생 어른은 처음에 ‘둘 다 죽고 백 년 뒤’를 말씀했는데, 이오덕 어른은 그러면 너무 기니 ‘둘 다 죽고 십 년쯤 뒤’가 어떻겠느냐 여쭙니다. 권정생 어른은 ‘십 년쯤 뒤’는 좀 짧아 보여 ‘삼십 년 뒤’를 물으시다가 ‘그래도 십 년 뒤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지요.


  두 어른이 나눈 글월에 깃든 푸른사랑을 느끼고 싶은 분이라면 얼른 이 글월꾸러미를 읽고 싶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기다리고 지켜보면서 우리 마음을 돌아볼 만하지 싶어요. 아름다운 사랑이란 오늘도 아름다울 테지만, 열 해 뒤에도, 서른 해 뒤에도, 백 해나 이백 해 뒤에도 아름다울 테니까요.


  이오덕·권정생 두 분은 1970년대 끝자락에 ‘글이라는 꽃’이 징검다리가 되어 만났습니다. 아프고 슬픈 마음을 눈물이라는 빛으로 담아서 글을 쓴 사람이 하나 있었고, 이 글에 감도는 포근하면서 시린 사랑을 알아본 사람이 하나 있었지요. 이때부터 둘은 서른 해를 가로지르는 글벗, 글꽃벗, 꽃벗(서로 꽃같은 벗)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권정생 님을 이오덕 님이 알아보고서 둘이 만나 글꽃벗이 되었다면, 이오덕 님을 알아보고서 오래도록 글꽃벗이 된 다른 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원수 님입니다. 이원수 님은 해방 뒤에 이오덕 님 동시를 눈여겨보았고, 이윽고 ‘멧골 어린이 글’을 갈무리하는 이오덕 님 배움길을 지켜보면서 눈을 번쩍 떴다고 합니다. 글을 쓴답시고 하나같이 서울로만 몰리는 흐름을 거스른 채, 더 깊은 두멧골로 들어가서 멧골마을 어린이 곁에서 든든한 버팀나무요 글동무에 그림동무가 되려는 교사 한 사람이 짓는 동시하고, 이 멧골학교 교사가 아이들 글을 여미어 내놓는 학급문집은 그 어떤 동시집이나 동화책보다 눈부셨다고 얘기했습니다.


  이오덕 님은 1965년에 《글짓기 교육, 이론과 실제》라는 이름으로 ‘글짓기 교육 이론’을 갈무리해서 책으로 묶었습니다. 1973년에는 《아동시론》을 써냈지요. 이 두 가지 책은 누구보다 이원수 님이 반겼고, 앞장서서 널리 알리려고 했습니다. 동심천사주의도 반공도 독재도 아닌, 오롯이 어린이를 어린이 그대로 마주하면서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글꽃을 피우는 ‘젊은 멧골마을 교사’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이슬떨이와 길동무가 된 이원수 님이었어요.


  다만, 두 사람 이원수·이오덕 사이에는 한 가지 허물이 있습니다. 첫째, 이원수 님은 일제강점기에 친일시를 썼습니다. 둘째, 이오덕 님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어(한국말) 아닌 국어(일본말)’를 일본말로 가르치면서 이런 노릇이 잘못인 줄 몰랐습니다. 두 사람은 해방을 맞이하고서 어떤 길을 걸었을까요? 이원수 님이 남겼을 일기가 있다면 좋으련만, 해방 뒤에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1947년에 써낸 동시책 《종달새》나 동화책 《어린이 나라》를 헤아리면서, 또 한국전쟁하고 군사독재에 이르는 동안 동심천사주의·반공교육 등쌀에서 젊은 어린이문학가를 지켜낸 걸음을 살피면서, 어린이잡지와 어린이책에 그토록 쏟은 땀방울을 돌이키면서, 몸져눕기 앞서 마지막으로 이오덕·권정생·염무웅 세 사람하고 창비아동문고를 꾀해서 펴내도록 온힘을 바친 손길을 생각하면서, 1981년에 눈을 감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겨울 물오리〉라는 동시를 떠올리면서, 2000년대나 2010년대라는 눈높이가 아닌 지난날 삶자락에서는 뉘우침글(참회록)을 어떻게 온몸으로 보여주는가를 곱씹어 봅니다.


  이원수·이오덕 두 분이 1950년대부터 1981년까지 둘도 없는 글꽃벗으로 지낸 삶길이었기에, 1970년대부터 2003년까지 이오덕·권정생 두 분이 다시없는 글꽃벗으로 어우러진 삶길이었구나 하고도 느낍니다.


  곰곰이 보면, 이원수·이오덕 두 분은 해방 뒤에 허물벗기를 ‘입’이 아닌 ‘온몸’으로 했습니다. 이오덕 어른은 이녁 일기를 고스란히 남겼기에 일제강점기에 ‘일본말로 가르치는 교사 노릇’이 몹시 부끄러웠다고 밝힌 대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밝혔든 안 밝혔든, 언제나 어린이 쪽에 서서, 더구나 멧골마을 어린이 쪽에 어깨동무를 하고 서서, 어린이하고 사진을 찍을 적조차 늘 귀퉁이나 뒷자리에 서서, 가슴 펴고 노래하는 어린이가 되기를 바라는 한길을 걸었지요. 이원수 어른은 끝없이 새 동시하고 동화를 쓰기도 했지만, 아직 한국말로 안 나온 세계명작동화를 한국말로 옮기는(프랑스말이나 영어가 아닌, 일본말을 한국말로 옮겼습니다) 일을 엄청나게 했어요. 장발장도, 꿀벌 마야의 모험도, 미운 새끼 오리도, 플루타르크 영웅전도 ……, 나중에는 페스탈로찌 전기까지 옮겼습니다.


  당찬 몸짓으로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쓰는 글이라면, 당치면서 씩씩한 기운뿐 아니라, 아름다운 숨결이 흐르겠지요. 고개를 꺾고 빌붙는 몸짓이 되어 쓰는 글이라면, 한때에는 돈을 얻을는지 몰라도, 갈수록 시커먼 빛깔로 얼룩지겠지요.


  글이라는 꽃이 피기까지 겨울을 살아냅니다. 가을날 시들어 겨울날 뿌리를 빼고는 모두 말라죽은 채 잠들어야 새봄에 비로소 싹을 틔워 줄기를 새로 올리고 새잎을 펴요. 풀벌레가 허물벗기를 하듯, 애벌레가 탈바꿈을 하듯, 잘못을 씻거나 털 적에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오덕 님도 이승을 떠나는 날까지 감춘 이야기가 꽤 많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윤이상 님한테서 피아노를 배웠다’입니다. 어느 해에 배웠는지는 또렷이 안 밝히셨기에 어림만 할 뿐인데, 윤이상 님한테서 배운 피아노로 어린이한테 멋진 풍금 솜씨를 선보였지요. 몸져눕는 바람에 큰아들이 바퀴걸상에 앉혀서 모실 적에는 큰아들더러 ‘전자음반’을 사다 달라고, 누운 몸으로는 피아노를 못 치지만, 전자음반이라면 칠 수 있겠다고 하셨다지요. 큰아들은 이때에 이녁 아버지가 그렇게 건반을 잘 치는 줄 처음 알았다고 합니다. 예전 국민학교 음악 교과서에 멧골마을 어린이가 신나게 부를 만한 동요가 없다고 느껴, 이원수 동시에 손수 가락을 붙여 동요를 짓기도 했습니다. 악보를 얼마나 깔끔하게 쓰셨는지 모릅니다.


  이 대목도 어느 해인지 안 밝히셔서 어림만 할 뿐이지만, 이오덕 님이 이원수 님 동시에 가락을 입혀 동요를 지었다는 얘기를 들은 이원수 님이, 그 노래를 불러 달라고 바라셨다는데, 온삶을 걸쳐 글꽃벗이었다고 해도 너무 수줍은 나머지 노래를 불러 드리지 못했다지요.


  오늘 이곳에서 두 어른하고 두 어른을 나란히 그려 봅니다. 말을 옮긴 글이 아닌, 온삶을 바쳐 사랑으로 살림을 지으려는 손길로 마음에 생각이란 씨앗을 심어 하나하나 옮긴 글로 벗님이 된 이원수·이오덕 두 어른하고 이오덕·권정생 두 어른을 함께 생각해 봅니다. 두 어른 더하기 두 어른, 모두 세 어른입니다. 이들 세 어른은 잘잘못으로도 스스로 배우고, 숲하고 멧골에서도 배우며, 어린이하고 이웃하면서도 배운 삶이었지 싶습니다. 이분들 자취를 가다듬어 책으로 엮는 일을 하며 배운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제법 오래 제 가슴에 묻어 놓았는데, 《우리말 글쓰기 사전》(스토리닷, 2019)이란 책에 남김없이 풀어냈습니다. 글을 잘 쓰는 길이 아닌, 글이 꽃이 되는 길을 바라면서 새로운 사전으로, 이야기가 흐르는 사전을 썼습니다. ㅅㄴㄹ



이오덕은 멧골자락 어린이가 읍내 어린이나 도시 어린이한테 늘 놀림을 받으면서 풀이 죽는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이 멧골 어린이가 스스로 제 삶을 동시로 담아내고 그림으로 그려내면 차츰 기운을 차리리라 여기면서 ‘글쓰기 교육’을 하다. 돈이 없는 멧골자락 어린이가 많은 터라, 종이에 크레파스를 손수 장만해서 쪽종이에 짧게 이야기를 쓰도록 하고, 그림은 마음껏 그리도록 했다. 이오덕 어른은 네덜란드 그림님 고흐를 사랑해서 집에 늘 고흐 그림을 붙여 놓고서 바라보았는데, 멧골자락 어린이가 그린 해바라기, 어머니나 아버지, 보리밟기, 소뜯기기, 담배따기 같은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 마치 ‘이 땅에 새로 태어난 고호’ 같다고 느껴 늘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우리말 글쓰기 사전》 33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우리말 글쓰기 사전

숲노래 기획/최종규 글,사진
스토리닷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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