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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28 - 글쓰기보다는 놀이쓰기


《나랑 자고 가요》

 광양동초 1학년 1반 어린이·김영숙 엮음

 심다

 2020.2.1.



  글을 못 쓰는 사람은 없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말을 하거든요. 우리가 하는 말을 옮기면 모두 글이에요. 말을 더듬는다면 글을 더듬더듬 옮기면 되어요. 시골말을 쓴다면 시골말을 고스란히 옮기면 됩니다.


  말하는 그대로 글을 옮길 적에는 멋이 안 난다고 여기는 분이 많습니다만, 말결하고 달리 꾸미는 글결이 되면 글치레가 되고, 글치레란 겉치레로 잇닿습니다. 생각해 봐요. 그럴듯해 보이려고 ‘우리 말씨가 아닌 다른 말씨’를 쓸 적에 즐거운가요? 뭔가 번듯하거나 똑똑해 보이도록 말씨를 고치면, ‘우리 말씨 아닌 다른 말씨’로 꾸민 그런 말 한 마디가 우리 마음에 사랑으로 피어나는가요? 남이 멋지게 하는 말씨를 흉내내지 말고, 우리 마음을 즐겁게 드러내는 말씨를 가꾸면 됩니다.


  밭을 가꾸듯 말글을 가꾸지요. 살림을 가꾸듯 말결이며 글결을 가꿉니다. 마음을 가꾸듯 생각을 가꾸어 말글도 나란히 가꾸고요.



우리 집 마당에 감나무가 있다

할머니랑 엄마가

감나무 팔을 꺾어도

감나무가 살아남았다

나무는 대단해. (감나무-이준상/14쪽)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쓰면 됩니다. 어른은 어른답게 쓰면 됩니다. 다시 말해,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말하면서 이 말을 글로 옮기면 됩니다. 어른은 어른답게 말하면서 이 말을 글로 옮기면 되어요.


  꾸미지 맙시다. 치레하지 맙시다. 똑똑해 보이거나 잘난척하지 맙시다. 자랑하지 말고, 우쭐대지 맙시다. 콧대를 높이지 말고, 멋을 부리지 말며, 남보다 나아 보이거나 좋아 보이도록 말이며 글을 치레하지 맙시다.



밤은 따가워.

밤은 맛있어.

밤은 왜

잠바를 두 개 입을까? (밤-서지현/33쪽)



  글은 삶으로 쓰면 됩니다. 우리 삶을 그대로 쓰면 되어요. 글은 살림으로 쓰면 됩니다. 밥살림·옷살림·집살림을 고스란히 쓰면 됩니다. 글은 사랑으로 쓰면 되지요. 스스로 사랑하는 하루를 오롯이, 스스로 사랑하는 이웃이며 동무이며 집안이며 마을이며 숲이며 온누리이며 마음을 옹글게 쓰면 되지요.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글을 숲으로 쓸 만합니다. 그리고 바다가 되고 하늘이 되며 구름이 되는 넋으로 글을 쓸 만해요. 제비가 되고 제비꽃이 되고, 소나무가 되고 잣나무가 되어서 글을 쓸 만합니다. 조약돌이 되고 모래가 되어 글을 쓸 만하고요.



진흙은 밟으면 신발이 더러워져.

비 오는 날은 진흙이 돼.

비가 안 오면 다시 흙이 돼. (진흙-박종호/90쪽)



  여덟 살 어린이가 손수 쓰고 그린 이야기를 갈무리한 《나랑 자고 가요》(광양동초 1학년 1반 어린이·김영숙 엮음, 심다 2020)를 읽으면서 여러 마음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바라본 아이 모습을 비롯해서, 아이를 둘러싼 어른이나 어버이나 마을이나 삶터 모습을 읽습니다.


  여덟 살 어린이는 수수하게 제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어른이나 삶터에서 바라는 대로 그대로 꾸미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학교라는 터에서는 교육과정이나 수업진도가 있다 보니까, 또 학교 안팎에서 점수라든지 ‘공부 잘하기’나 학원이라는 얼거리가 있으니, 또 텔레비전이며 유튜브이며 영상이며 갖가지 다른 모습이 있으니, 이 모두가 아이들 눈길을 거쳐서 마음으로 퍼졌다가 말로 터져나온 뒤에 글로도 나타납니다.



무지개야,

너는 해님이 좋아?

아니면 비가 좋아?

꼭 말해 줘야 돼.

나는 해님이 좋아. (무지개-조서현/99쪽)



  남을 아예 안 보기는 어려울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남을 가만히 보면 좋겠어요. 나하고 다르지만, 나하고 똑같이 아름다운 숨결인 이웃을 보면 좋겠습니다. 나하고 생각이며 말씨이며 몸짓이며 모조리 다르지만, 나랑 똑같이 사랑스러운 넋인 동무를 보면 좋겠어요. 키에 힘에 덩치에, 이모저모 겉모습이 모두 다르지만, 나랑 똑같이 오늘 하루를 맞아들이면서 새롭게 즐기는 어버이랑 어른을 바라보면 좋겠어요.



우리에게 아기가 생긴다.

아직 이름을 못 지었어.

난 그냥 남봄이라 지었어.

봄에 낳으면

더 예쁜 이름을 지어 줘야지. (아기 2-남희원/116쪽)



  어린이한테 섣불리 글쓰기를 시키면 쪽종이 몇 줄을 채우기도 버겁기 마련입니다. 적잖은 어른도 쪽종이에 이녁 이야기를 몇 줄로 못 채우곤 합니다. 어린이한테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버거운 글쓰기가 되곤 해요.


  어린이라면 글쓰기보다 놀이쓰기가 되어야지 싶습니다. 그저 글을 쓰지 말고, 하루를 신나게 놀고 나서, ‘오늘 무엇을 하며 놀았나’를 쓸 노릇입니다. 어른이라면 글쓰기보다 살림쓰기나 사랑쓰기가 되어야지 싶어요. 그냥그냥 글을 쓰려고 달려들지 말고, 스스로 짓는 살림이나 사랑을 쓰면 됩니다. 또는 스스로 짓고 싶은 살림이나 사랑을 쓰면 되어요.

  


새는 하늘을 날 수 있어.

나도 하늘을 날고 싶어. (새-배찬웅/168쪽)



  놀지 못하거나 않는 아이는 꿈꾸지 못합니다. 꿈꾸지 못하는 아이는 사랑을 마음으로 키우지 못합니다. 사랑을 마음으로 키우지 못하는 아이는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삶길을 맞아들이지 못합니다.


  어린이 글쓰기는 언제나 놀이에서 비롯합니다. 먼저 놀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놀아야 합니다. 이러고서 거듭 놀아야 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놀아도 되고, 아침부터 저녁 내내 놀 만합니다. 아이한테 놀이 아닌 수업이나 책을 섣불리 어깨에 얹으면, 아이들이 뽑아내는 글은, 참말로 ‘공장에서 뽑아내는 똑같은 틀’에 갇힌 모습이 됩니다.


  아이한테 시키지 말고, 아이한테 맡기기를 바랍니다. 아이한테 공부나 수업이나 학교교육을 시키지 말고, 아이한테 하루를 스스로 지어 사랑으로 하루를 짓는 즐거운 배움길을 누려 보라고 맡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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