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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타박타박 걸어서 (2019.11.28.)
― 광주 〈심가네박씨〉
광주 동구 동명로 67번길 22-2
062.229.0688.


  오늘날에는 책을 사는 길이 꽤 많습니다. 지난날에는 책집으로 가서 살펴보고서 샀다면, 오늘날에는 누리책집에서 미리보기로 가볍게 훑고서 살 만한가를 살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나라밖 책을 사자면 서울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곳에 가서 ‘해외도서 주문서’를 그곳에 있는 공책에 적은 다음에 열흘이나 보름쯤 기다린 뒤에 찾아갔다면, 이제는 한국에 있는 누리책집에서도 나라밖 책을 시킬 수 있고, 아마존이란 곳을 거쳐서 어느 나라 어느 책이든 만납니다.

  나라밖 책을 장만하는 길을 헤아린다면 비행기삯을 안 들여도 되니 매우 값싸고 쉽게 장만한다고 하겠지요. 나라안 책도 고흥 같은 시골자락 책손으로서는 큰고장에 안 가고도 장만할 만하니 찻삯이며 품을 아낄 만하다고 여겨도 됩니다. 그러나 두 다리로 타박타박 걸어서 찾아가는 책집이 아닐 적에는 ‘시키는 책’이 아닌 ‘미처 모르던 책’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누리책집에서는 이 누리책집에서 널리 팔려고 올려놓은 책만 살필 수 있어요.

  광주에 일이 있어서 찾아가는 길에 〈심가네박씨〉를 들르려고 시외버스에서 내려 전철을 갈아타고서, 손전화 길그림을 켜서 한참 걸은 끝에 책집 앞에 닿습니다. 걷고 보니 꽤 멉니다. 짐꾸러미가 없는 단출한 몸이라면 그리 안 멀다 싶지만, 등에 인 짐에다가 손으로 끄는 짐이 있으니, 한국처럼 어디나 거님길이 울퉁불퉁하고 턱이 많은 데를 걸어서 가자면 참 멀구나 싶어요. 이만 한 길인 줄 알았으면 버스길이 있는지 알아보거나 택시를 타야 했네 싶더군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고서 책집에 들어갑니다. 오늘은 마을책집에서 《논 벼 쌀》(김현인, 전라도닷컴, 2019)을 장만하고 싶어서 〈심가네박씨〉로 찾아왔습니다. 며칠 앞서 〈전라도닷컴〉에서 이 마을책집에서 조촐히 책수다를 했다고 들었어요. 책수다만으로는 고흥에서 광주로 마실하기 어려운데다가, 저녁 책수다라면 고흥에 못 돌아가니 엄두를 못 냅니다. 마침 오늘은 날이 되기에 책 한 자락을 만나려고 걸음을 했어요.

  느긋이 한참을 둘러보면서 《이중섭 편지》(이중섭/양억관 옮김, 현실문화, 2015)도 고릅니다. 그림지기 이중섭 님이 어떤 일본글로 쪽글을 곁님한테 띄웠으려나 궁금합니다. 아마 어려운 말은 없이 애틋하고 애타는 사랑말로 쪽글을 띄웠으리라 생각해요. 다른 책도 매한가지입니다만, 이 《이중섭 편지》는 더더욱 ‘수수하면서 사랑스러운 삶말’로 가다듬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나라밖 책을 한글로 옮기는 분은 하나같이 먹물입니다. 많이 배운 이들이 옮김지기 노릇을 해요. 그런데 많이 배운 먹물이라는 눈길을 벗어나지 못하는 분이 참 많아요. 더구나 옮김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버릇이 들면서 여느 사람들 수수한 말씨로 풀어내는 길하고 멀어지곤 합니다.

  아이 손을 잡고 사뿐사뿐 거닐듯 바깥말을 한국말로 옮길 줄 안다면 참으로 좋으리라 생각해요. 아이 손을 확 잡아끌면서 달리는 몸짓이 아닌, 아이가 다리가 아프면 느긋이 쉬며 놀이노래를 부를 줄 아는 몸짓으로 바깥말을 옮길 적에 아름다운 글이 된달까요. 오늘 우리가 누리는 마을책집이란 터전도 이와 같다고 여겨요. 책을 더 많이 읽은 사람 눈높이가 아닌, 널리 알려진 몇몇 글님 책이 아닌, 이름값 있는 커다란 출판사 책이 아닌, 수수한 마을에서 작은 사랑으로 태어난 들풀 같거나 들꽃 같은 책을 고이 건사하는 마을책집으로 나아간다면, 참고서·문제집·교과서·대학교재를 치워버린 마을책집이라는 숲빛이 한결 눈부시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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