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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바닷바람 곁에서 (2012.7.10.)

― 여수 〈형설서점〉


  아침 일찍 시골버스를 타고 고흥읍으로 갑니다. 일찍 일어나서 움직여야 하는 날, 아이들은 똥을 푸지게 누어 주곤 합니다. 먼길을 움직일 적에는 집에서 똥을 누어 주면 홀가분합니다. 길에서 뒤가 마려우면 아이도 어버이도 고단합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 똥을 치우고 밑을 닦습니다. 옷을 갈아입히고 주섬주섬 짐을 챙깁니다. 아이들과 나들이를 다닐 적에 제 등짐이며 끌짐은 온통 아이들 옷가지입니다. 작은아이가 기저귀를 뗀다면 기저귀랑 바지 짐이 퍽 줄겠지요.


  읍내에서 시외버스를 탑니다. 이웃 여수 바다를 만나러 갈 생각입니다. 시외버스로 두 시간하고 십 분 즈음 걸리는 먼길이라, 세 사람은 모두 멀미를 합니다만, 이럭저럭 여수 시내에 닿습니다. 여수 바다를 본 아이들은 고흥 바다처럼 마음껏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에 서운합니다. 들어갈 만한 바다는 꽤 멀다는군요. 아이들한테 싹싹 빌면서 〈형설서점〉에 찾아갑니다. 큰아이는 “난 이 만화책 할래.” 하면서 두 손으로 내밉니다. 곁님은 뜨개책을 한 짐 챙깁니다.


  책 한 자락으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실마리를 얻습니다. 책 한 자락을 손에 쥐면서 삶을 새롭게 사랑하는 슬기로운 숨결을 깨닫습니다. 헌책집이 여러 곳 옹기종기 모인 골목도 재미나고, 바다가 가까운 여수도 재미있습니다. 그저 천천히 걷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할 만하고, 바닷바람을 쐬면서 하늘바라기를 하더라도 ‘하늘읽기 = 책읽기’가 될 만합니다. 어느 책집이든 살며시 들어가서 가만히 책꽂이를 돌아보면 마음을 한껏 사로잡을 만한 책이 꼭 나타납니다. 들길을 걷고 바닷가를 거니는 동안 맞아들이는 바람도 언제나 마음을 싱그러이 잡아끕니다.


  길은 길을 찾으려는 사람이 찾습니다. 책은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 읽습니다. 삶은 삶을 지으려는 사람이 짓습니다. 스스로 할 때에 합니다. 스스로 안 할 때에 안 합니다. 기쁘게 마음밥을 먹으려 하기에 생각을 토닥토닥 북돋웁니다. 


  아름다운 책은 바로 우리 손에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집어든 책이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책집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찾아간 책집이 바로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바로 곁에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고,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은 ‘아름다운 나’를 느낍니다.


  낮에는 따스한 바람입니다. 저녁에는 스산한 바람입니다. 새벽에는 차가운 바람을 밀어내는 포근한 노을이 천천히 퍼집니다. 밤에는 온누리를 살가이 어루만지는 달빛에 별빛이 내려옵니다. 숱한 별이 숱한 사람한테 하나하나 드리우듯, 헌책집 책시렁 숱한 책은 저마다 다른 사람들 가슴에 이야기씨앗 하나로 드리웁니다.


《바다의 향기를 품은 도시, 여수를 만나다》(GS칼텍스, 2009)

《괴테 평전》(P. 뵈르너/안인길 옮김, 삼성문화재단, 1973)

《明夷待訪錄》(황종희/전해종 옮김, 상성문화재단, 1971)

《젊은 화가에게 주는 편지》(허버트 리드/유근준 옮김, 상성문화재단, 1977)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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