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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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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바라본다 (2018.3.14.)

― 부산 보수동 〈알파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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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집에는 새로 나온 책만, 더구나 베스트셀러하고 유명작가 책이 한복판을 크게 차지합니다. 흔하고 판에 박힌 책이 가득합니다. 이와 달리 헌책집은 똑같은 책을 여럿 꽂거나 갖추는 일이 드물어요. 헌책집 책꽂이는 어느 고장 어느 헌책집을 가도 ‘다 다른 책을 빼곡하게 건사하는 차림새’입니다. “굳이 헌책집까지 책을 보러 갈 까닭이 있나?” 하고 묻는 분한테 “헌책집을 다니며 다 다른 아름책을 만나고 보면, 이다음에 새책집을 다니는 눈썰미가 한결 그윽하게 거듭나는걸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요즈음 책을 비롯해서 해묵은 책에다가 나라밖 갖가지 책이랑 비매품까지 고루고루 품는 책숲이 헌책집이에요.


책집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스윽스윽 파랑 나물을 다듬는 〈알파서점〉 지기님입니다. “뭘 이런 모습도 찍으려고 해?” “이렇게 살림하는 모습이니 더더욱 책집을 살가이 보여줄 만한걸요. 살림하는 책집인걸요.”


오늘 우리는 책집을 찾아가거나 셈틀이나 손전화를 켭니다. 책집은 이제 큰길보다는 마을 안쪽으로 깃듭니다. 갖은 시끌벅적한 물결하고 어느 만큼 등진 골목에 자리잡는 책집으로 찾아가자면 자가용은 안 어울립니다. “차를 세울 자리가 없으면 가기 어렵잖아요.” 하고 묻는 분이 꽤 많아 “책집에 갈 적에는 자전거를 타 봐요. 바람을 천천히 가르며 마을을 느끼면서 가면 상큼하답니다. 두 다리로 더 천천히 걸으며 골목을 누린다면 우리 손에 쥔 책이 훨씬 싱그러울 테고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책집으로 마실하며 도란도란 수다꽃을 피울 만합니다. 책집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만난 책으로 다시 수다꽃을 피울 만해요.


시골에 없는 책집을 찾아 여러 고장을 떠돌다 보면 길에서 보내는 틈이 깁니다. “자가용으로 다니면 시간도 아끼고 책짐도 안 무겁잖아요? 최종규 씨도 자가용 좀 몰아 보지요?” “손잡이를 쥐면 책을 못 읽어요. 자가용 값에, 기름값에, 보험삯으로 돈을 쓰기보다는 책값에 쓰고 싶어요. 정 책짐이 무거우면 택시를 타지요. 길에서 오래 보내는 만큼 쉬엄쉬엄 ‘이 골목하고 마을을 떠올리며 동시를 쓸 수 있’으니, 시를 쓰고프다면 두 다리로 책집마실을 해보시면 좋겠다고 여쭐게요.”


우리가 누리책집에서 책을 장만하더라도 이모저모 살피느라 품하고 겨를을 꽤 들여야 합니다. 다리품만 품이 아니에요. 또각또각 누리는 손짓도 품입니다. 게다가 누리책집에서 책을 살피자면 몇 가지에서 그치지만, 책집에 닿아 휘 둘러보면 이 어마어마한 책이 모두 우리 읽을거리로 품에 안깁니다.


자동차를 달리자면 앞만 보면서 옆거울을 흘깃거릴 뿐, 하늘도 이웃도 마을도 쳐다보기 어렵습니다. 셈틀·손전화로 책을 장만하자면 ‘시킬 책’만 바구니에 담을 뿐, 우리를 둘러싼 숱한 책바다에서 헤엄치기 어렵습니다. 마을을 걸으면서 마을을 봅니다. 숲을 거닐면서 숲을 봅니다. 아이하고 손을 잡고 걷기에 아이 손끝에서 우리 손끝으로 옮는 따사로운 사랑을 누립니다. 걸으면서 바라보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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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용해 전집 1∼6》(예용해, 대원사, 1997)

《산시로》(나츠메 오소세키/최재철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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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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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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