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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노래 2021.6.21.

놀이하는 어린이 1 어린이라는 세계 

 

 

  어른이라는 몸을 입은 사람은 누구나 아기로 태어났고, 아이로 살았고, 어린이로 놀았고, 푸름이로 자란 뒤에, 어른이라는 길에 선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를 안다. “어린이를 모른다”고 말한다면 어린이를 모르는 척할 뿐이거나 어린이한테서 등돌린 셈이라고 느낀다. 어린이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오늘이 어린이라서 어린이를 알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그이 몸에 어린날을 아로새겼으니 어린이를 안다.

 

  어릴 적부터 그랬는데, 둘레 어른이 “어린이라는 세계를 통과한다” 같은 말을 하면 어쩐지 거북하다. 두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오늘도 영 껄끄럽다. 어른이나 어버이란 몸을 입더라도 “어린이로 보낸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흐르는 숨결”인 터라 ‘지나간다(통과한다)’고 하면 말이 안 되지 싶다. 어른이면서 어린이요, 어린이로서 어른이라고 할까. 어른은 어린이 숨결을 늘 함께 품고, 어린이는 “오늘 어린이란 몸이기 앞서 예전 삶자락에서 거쳐 온 어른이라는 숨빛”이 함께 흐른다고 느낀다. 

 

  글쓰는 어른이 말하 듯이 “어린이라는 세계를 통과해서 어른이 된다”기보다는 “어린이로 즐겁게 뛰논 삶이기에 어른으로도 즐겁게 살림을 짓는 오늘”이지 싶다. 어린이라는 삶은 ‘통과’가 아니라 ‘늘 함께’라고 느낀다. 어린이는 어른하고 함께살기에 사랑을 가르치고, 어른은 어린이랑 같이살기에 사랑을 배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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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노래 2021.6.21.

놀이하는 어린이 2 보고 듣는다

 

 

  흔히들 “어린이는 듣는 자리, 어른은 말하는 자리”로 여기는데, 어쩐지 거꾸로 본 셈이지 싶다. 스스로 어린이로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고, 오늘 어른이 되어 어린이하고 살아가는 나날을 되새기노라면, “어린이는 말하는 자리, 어른은 듣는 자리”로 여겨야 알맞지 싶다.

 

  어린이는 끝없이 말한다. “저게 뭐야? 이게 뭐야? 그게 뭐야?” 어른은 끝없이 듣는다. “응, 응, 응.” 어린이는 자꾸 말한다. “그래서? 왜? 어떻게?” 어른은 꾸준히 듣는다. “그래, 그래, 그래.”

 

  적잖은 어른은 어린이한테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하고 윽박지르거나 나무라는데, 이런 윽박말을 듣는 어린이는 ‘엄마아빠도 내 말 안 듣잖아?’ 하고 생각하지 싶다. 나부터 이렇게 느끼고 생각했는걸. ‘아이 말을 듣지 않는 엄마아빠라서, 나는 엄마아빠가 나한테 보여주고 가르친 대로 엄마아빠 말을 들을 수 없잖아?’ 하고 속으로 느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린이는 본다. 어린이는 보고 말한다. 어린이는 보고, 봐주고, 돌아본다. 어른은 어린이로 살아내어 어느덧 어린이를 곁에 두고 살면서 새롭게 보고, 봐주고, 돌아본다. 어른은 듣는다. 어른은 듣고서 배운다. 어린이가 들려주는 말을, 비바람해가 들려주는 노래를, 스스로 마음에서 빛나는 말을 어린이 곁에서 듣고서, 새롭게 생각하여 둘레에 이야기를 즐거이 들려준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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