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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풀벌레 풀피리 풀씨 (2021.7.15.)

― 제주 〈제주풀무질〉

 

 

  제주에는 바다를 보러 오지 않습니다. 제주에 오는 뜻은 언제나 ‘제주책집’을 누리려는 마음입니다. 제주책집을 오가는 길에 바다가 있으면 “그래, 지나가는 길목에 있으니 볼까?” 하고 생각합니다. 제주책집 사이에 오름이 있으면 “그래 책집 틈새에 오름이 있네.” 하고 바라봅니다.

 

  어느 고장을 가든 그곳에 어떤 책집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 하고 어림합니다. 마을책집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곳이라면 푸르면서 아름답습니다. 마을책집이 피어나지 못한 채 곁배움책(참고서)하고 잘난책(베스트셀러)만 덩그러니 있는 책집뿐이라면 어쩐지 시들시들할 뿐 아니라 매캐합니다.

 

  잘난책이 나쁠 일은 없되, 잘난책을 보러 굳이 마을책집에 갈 마음이 없어요. 잘난책은 많이 읽힌다고 하되, 마을빛이나 마을길이나 마을살림하고는 동떨어지거든요. 수수한 순이돌이가 저마다 즐거이 보금자리를 짓는 곳이기에 마을이 태어납니다. 마을에서는 수수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이를 살갑게 돌보면서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 어른으로 자라요. 책집지기이자 마을지기인 책집일꾼이 눈빛을 밝혀 하나둘 갖춘 ‘마을책’을 만나는 보람으로 책집마실이 즐겁습니다.

 

  아침 일찍 제주시에서 자전거를 몰아 조천에서 다리를 쉬었습니다. 등짐은 책을 더해서 한결 묵직합니다. 고개를 넘어 들길을 지나 세화로 달립니다. 한참 달리니 땀방울이 빗방울처럼 듣습니다. 아이들을 수레에 태우지 않고 혼자 등짐을 메고서 달리기에 홀가분하되 무척 조용합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달릴 적에는 늘 노래를 불렀어요. 아이들은 자전거마실을 하며 늘 노래랑 바람을 누렸지요.

 

  땀을 들일 만한 나무그늘을 찾아서 앉아 노래꽃(동시)을 씁니다. 개미랑 수다를 떨다가 다시 달립니다. 이윽고 땡볕인 바닷가 풀밭에 자전거를 눕히고 새삼스레 노래꽃을 씁니다. 다시 기운을 내어 〈제주풀무질〉에 이릅니다.낯을 씻고 또 씻어도 땀은 가시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신나게 잘 달린 한여름 자전거입니다.

 

  오래도록 서울 한복판에서 풀피리를 불던 책집은 제주 오른켠에서 풀바다를 이루어 풀씨를 심는 길로 접어드는구나 싶습니다. 풀밭은 풀벌레가 풀잎을 갉으며 풀노래를 부르기에 푸릅니다. 풀벌레가 없다면 들숲은 모두 말라죽어요. 벌나비랑 새가 있기에 들숲하고 마을이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짓고 어떤 집을 세우고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책을 나누는 사람일까요? 제주에는 놀거리·누릴거리·먹을거리·볼거리가 많습니다만, 저는 이 여럿에 마음이 안 갑니다. 바다 곁에 풀밭이 드넓기를 바라고, 오름 곁에 책밭과 책숲과 책벌레가 있으면 넉넉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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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본주의를 말한다》(우네 유타카/김형수 옮김, 녹색평론사, 2021.3.12.)

《해녀리나》(Nika Tchaikovskaya, Tchaikovsky Family Books, 2019.5.16.)

《성주가 평화다》(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대구경북작가회의·성주문학회, 한티재, 2017.1.28.)

《함께 가자 우리》(차주옥, 실천문학사, 1990.5.20.)

《아버지의 첫 직업은 머슴이었다》(한일순 말·한대웅 씀, 페이퍼로드, 202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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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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