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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아침에서 낮으로 (2021.10.16.)

― 제주 〈금요일의 아침 조금, 한뼘책방〉

 

 

  비가 오는 밤입니다. 새벽에도 가랑비가 마당을 가볍게 적십니다. 등짐을 비가리개로 싸고서 자전거를 탑니다. 우리 집 푸른씨는 “아버지 잘 다녀오셔요.” 하고 배웅합니다. 저는 “우리 푸른씨는 집에서 즐겁게 노셔요.” 하고 얘기합니다.

 

  빗길은 오르막이 가볍고 내리막이 빠릅니다. 다만 빗물이 끝없이 튀기에 빨리 달리지는 않습니다. 시골마을 새벽녘에는 오가는 부릉이(자동차)가 드뭅니다. 호젓이 비내음을 맡고 숲빛을 머금으며 바다노래를 맞이합니다. 어느 분은 “이런 날씨에 무슨 자전거를?” 하고 묻지만 “이런 날씨에는 이런 날씨를 누려요. 돌개바람이 칠 적에는 돌개바람이란 이렇구나 하고 누리려고 탑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녹동나루에서 제주나루로 네 시간 즈음 뱃길을 가르는 사이에 노래꽃을 씁니다. 때로는 손님칸에 드러누워 눈을 감습니다. 제주에 닿습니다. 빗줄기는 굵습니다. 빗방울을 동무삼아 천천히 오르막을 타고서 〈금요일의 아침 조금, 한뼘책방〉에 이릅니다. 골목에 깃든 포근한 샘터 같습니다. 〈한뼘책방〉이, 또는 〈금요일의 아침 조금〉이 깃든 마을에서 살아가는 분은 이 마을에 책집 하나가 싹트면서 얼마나 싱그러운가를 천천히 느끼면서 맞이할 테지요.

 

  등짐을 내려놓고 생강내음이 감도는 잎물을 한 모금 마십니다. 꽃종이로 고이 싼 책을 하나 고르고, 〈금요일 한뼘〉에서 크게 짖으며 놀래킨 개를 마주보다가 개를 그린 노래책을 더 고릅니다. 어른 몸집만 한 개는 놀고 싶어서 짖는구나 싶습니다. 저를 놀래킬 적에는 ‘개를 그린 노래책’을 집을 때였는데, 큰개는 “얌마, 내(개) 책이잖아. 네가 왜 만져?” 하는 눈치예요. “응, 네 책 맞아. 그런데 이 책을 이곳 지기님이 새로 들여놓을 수 있단다. 난 이곳에서 네 눈빛을 보고서 이 노래책을 장만해서 읽을 생각이란다.” 하고 마음으로 속삭입니다.

 

  빗줄기는 그대로 굵습니다. 이런갑다 생각하지만 저만 비를 긋고 자전거는 시월비를 고스란히 맞습니다. 하루 내내 비를 쫄딱 맞는 자전거를 이따가 길손집에서 말끔히 닦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느새 낮이 깊고, 구름이 새하얗게 덮은 하늘은 바람이 가볍게 춤춥니다. 둘레에서는 날이 매우 춥다고들 하지만, 시월이란 워낙 이런 철인걸요. 낮볕은 아직 후끈하고 밤이슬은 서늘하되, 빗물결로 “이제 곧 겨울이란다. 너희는 겨울맞이를 어떻게 하니?” 하고 묻는 시월입니다. 저녁에 설문대어린이책숲에서 만날 이웃님을 그리면서 다시 등짐을 멥니다. 온몸을 뜨끈하게 어루만졌으니 새길을 나설 때입니다. 아침에서 낮으로 한 뼘 움직입니다. 이 낮은 곧 별밤으로 걸어가겠지요.

 

ㅅㄴㄹ

 

《개를 위한 노래》(메리 올리버/민승남 옮김, 미디어창비, 2021.3.15.)

《쇼리》(옥타비아 버틀러/박설영 옮김, 프시케의숲, 2020.7.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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