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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9월 15일부터

마음수다를 씁니다.

이 마음수다는

‘소설’이라고 하겠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소설’이거든요.

날마다 하루 한 바닥씩

옮겨적으라는

마음소리를 듣고서

그야말로 바지런히

옮겨적는 나날입니다.

“숲노래 소설”이란 이름을 붙여 봅니다.

“글수다”란 이름도 붙입니다.

다시 말씀을 여쭙지만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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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소설

 

꿈자리에서 겪은 일이 생생하다. 꿈자리를 되새기자니 마음에 어떤 소리가 들린다. “잘 봤니? 잘 봤으면 옮겨 봐.” “어. 누구?” “누구냐고?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기보다는 네가 누구인지 궁금해 할 노릇 아닐까?” “어? 어? 어.” “네가 꿈에서 겪고 보고 듣고 느낀 모두를 그대로 옮기렴.” “그래, 알았어. 그럴게.” “자, 오늘부터 하루에 한 가지씩 이야기를 보여주거나 들려줄 테니 마음을 기울여서 받아적으렴.”

 

글수다 2021.9.15.물.

 

어느 곳에서 돌봄이(의사)라는 일을 한다. 꿈으로 간 몸을 입던 나는 “내가 이런 일도 했나?” 하고 생각한다. 끝없이 사람들이 몰려든다. “자, 다 나았습니다.” 하고 알려주지만, 돌봄터(병원)에 들어온 사람은 안 나가려고 한다. “나갔다가 또 아프면요?” “이제 안 아픕니다.” “또 아플 텐데요.” “그때에는 여기 바로 오시기보다 스스로 몸을 다스려 보세요. 여기 오가느라 힘들고 돈도 많이 쓰시잖아요? 집에서 느긋이 풀꽃을 쓰다듬고 하늘과 해를 보시면 튼튼합니다.” “아녜요. 여기가 가장 좋아요.”

 

돌봄터에는 이런 사람이 가득하다. 이런 사람들은 나라에서 돌봄삯(병원비·치료비)을 다 대주니 ‘돈걱정’은 안 한다. 그러나 ‘몸생각’도 안 하고, ‘스스로 살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왜 태어나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생각하지 않기에, 배움터(학교)를 오래오래 다니고, 일터(회사)를 오래오래 다니며 길든 탓에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간다. ‘돈과 일자리를 주는 남’이 하는 말은 고분고분 듣되, 마음에서 퍼지는 빛살은 바라보지 않는다.

 

나라(정부)는 돌봄터를 더 크게 자꾸 짓는다. 젊은이는 돌봄이(의사)가 되면 돈 잘 벌고 좋다고 여긴다. ‘나라에서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가득하다. 스스로 삶을 생각하고 지으면서 제 빛을 찾거나 보려는 사람을 찾을 길이 없다.

 

이런 판이고 보니,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다 잊거나 할 줄 모른다. ‘남이 꾸며서 우습게 보여주는 이야기(연속극·영화·공연)’에 넋이 빠진다. 보임틀(TV·영상)에 넋을 잃고 빠져들면서 이 이야기만 한다. 그러면 나는 이 일 ‘돌봄이’를 그만둘 수 있는가? 나부터 이 쳇바퀴를 스스로 내려놓고서 떠날 수 있는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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