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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1.17.

헌책집 언저리 : 가회동과 배용준·대장금

 

 

  나라 곳곳이 구경터(관광지)로 바뀌기 앞서 마을책집은 마을빛을 건사하면서 아늑한 쉼터였습니다. 온나라 오래집이 구경터로 바뀌면서 오랜 마을책집은 구경꾼 발걸음에 빛을 잃다가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곤 했습니다. 서울 가회동에 중앙고등학교가 있고, 배움터 어귀에 조그맣게 오랜 헌책집 〈합서점〉이 있었습니다. 책집지기이던 아저씨가 일찍 저승길로 가면서 새 헌책을 들이기 어려워 조금씩 기운 살림이었지만, 조용조용 골목길을 비질하면서 정갈하게 돌보았어요. “우리는 이제 책집이라 하기에도 부끄러워요. 그래도 이곳이 우리 살림집이니까 예전부터 하던 대로 집 앞도 가게 앞도 쓸고, 쓸다 보면 학교 앞도 쓸고, 옆가게 앞도 쓸고 그래요.” 500살이 넘는다는 은행나무는 책집하고 바로 붙어서 자라고 그늘을 드리우고 잎을 날립니다. 둘은 떼놓을 수 없는 사이입니다. 배움터 어귀 책집도 매한가지예요. 책집하고 마주보는 글붓집(문방구)도 그렇습니다. 모두 수수하게 배움이(학생)를 마주하며 지냈습니다. 이러다가 ‘겨울연가’가 갑자기 확 뜨면서 글붓집은 ‘배용준 얼굴그림’을 큼지막하게 내놓고 일본 손님한테 팝니다. ‘대장금’하고 얽혀 ‘이영애 얼굴그림’도 나란히 내걸어 일본 손님한테 팔고요. 우리는 저마다 다르게 태어난 이 몸으로 나아갈 즐거울 길을 찾아나서기 어려울까요? 가회동과 중앙고등학교와 마을책집은 제 빛을 잃고서 ‘배용준·이영애’판으로 범벅을 해야 할까요. 가회동 작은 마을헌책집 〈합서점〉에 들러 아주머니를 뵌 어느 날 “나는 아무리 부끄러워도 헌책을 놓고 싶은데, 젊은 예술가들이 와서 자리를 빌려 달라고 빌어. 하도 빌어서 어떻게 해. 책을 치우고 그 사람들이 가지고 온 그릇을 놓았지. 그런데 그런 그릇은 다른 가게에도 많으니, 여기까지 오는 일본 손님한테 우리나라 책을 보여주어도 좋을 텐데…….” 이제 가회동 〈합서점〉은 그곳에 없습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주워 책갈피로 삼을 책집은 그곳을 떠났습니다. 햇빛은 그대로이고 바람도 그대로이지만.

 

ㅅㄴㄹ

 

* 사진 : 서울 합서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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