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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실꽃 2022.8.7.

나그네채에서 0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있다. 스스로 애쓰지 않아서 가난할 수 있고, 나라·무리(조직·단체)나 우두머리·힘꾼(권력자)한테 미운털이 박혀서 가난할 수 있고, 땀흘린 보람을 거의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얼개라서 가난할 수 있고, 애써도 자꾸 쓴맛을 보느라 가난할 수 있고, 나라·마을이 팔짱을 낄 뿐 모둠살이라는 품을 헤아리지 않기에 가난할 수 있다.

 

  나는 일 때문에 바깥마실을 한다. 서울이나 인천이나 광주나 부산이나 대구나 대전처럼 커다란 고장에서 산다면, 일 때문에 바깥마실을 하는 날이 적을 만하리라. 아니, 어쩌면 더 있을 수 있겠지. 시골에서 살며 여러 고장을 찾아다니기에, 전남 고흥부터 전남 순천이나 광주를 다녀오는 길조차 하루로는 빠듯하다.

 

  부릉이(자동차)를 모는 이라면 고흥부터 순천이나 광주쯤 아무렇지 않게 오갈 텐데, 시외버스로 오가는 이라면 이 길이 얼마나 멀고 길삯이 드는가를 알리라.

 

  나는 부릉이를 안 몬다.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마치는 1994년 2월까지, 그러니까 배움수렁(입시지옥)을 마친다는 셈겨룸(시험)을 치룬 1993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배움터에서는 아무것도 안 가르쳤다. 그냥 꼬박꼬박 나가야 했다. 이때 푸른배움터에서는 ‘운전면허 따러 학원에 간다’고 하면 안 나와도 받아들이더라. 나는 길잡이(교사)한테 “이제 이곳은 학교가 아니라, 시간때우기를 하는 곳이니, 저는 스스로 책집을 다니면서 하루 내내 책읽기만 하겠습니다.” 하고 밝혔는데, ‘운전면허 따러 학원에 갈 적에는 결석 처리가 아니’지만 ‘스스로 배우려고 책집을 간다고 하면 결석 처리를 하겠다’고 하더라.

 

  푸른배움터 길잡이가 꼰대질을 보여주었기에 “그러면 전 앞으로도 자동차 따위는 안 몰 생각입니다.” 하고 대꾸했다. 낮 네 시 무렵 겨우 배움터에서 풀려나면, 인천 배다리 책집거리로 달려가서(말 그대로 달려갔다. 버스삯조차 아깝고, 책집이 닫을 때까지 더 읽을 생각으로 달렸다) 땀범벅인 채로 저녁 늦게까지 책읽기를 했다.

 

  아무튼 2022년 8월 6일에 찾아간 대전 마을책집 〈우분투북스〉에서 《우리는 군겐도에 삽니다》란 책을 장만했고, 대전에서 서울로 기차를 달리는 길에 다 읽었다. 이 책을 쓴 분은 “가난했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는 일로 첫걸음을 떼었다 하고, 가난했기에 할 수밖에 없던 일이 오히려 나중에 그분한테 빛나는 새 일거리로 자리잡았고, 두멧시골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아름다운 일판까지 꾸릴 수 있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 책은 1/4까지는 재미있었고, 그 뒤는 ‘자랑(나 이렇게 성공해서 돈 잘 벌고, 일꾼도 많이 거느리거든?)’만 늘어놓은 듯해서 따분했다.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나그네채를 잡을 적에 언제나 이모저모 살핀다. 2022년으로 치면, 여느날(평일)에는 4∼6만 원 사이를, 쇠날·흙날·해날(금요일·토요일·일요일)이라면 5∼7만 원 사이를 어림해서 잡는다. 하룻밤 묵는 삯을 10만 원이 넘어도 아무렇지 않게 쓸 만한 살림이라면 나그네채를 잡는 일이 수월하겠지. 또한 구시렁대는 일조차 없으리라.

 

  그러나 가난하기 때문에 더 싼 나그네채를 알아보며 살아왔고, 혼자 움직일 적에는 가장 싼 곳에서 묵었다. 곁님을 만나기 앞서인 2008년까지는 하루 5000∼1만 원인 나그네채를 용케 알아내어 묵었고, 둘이 움직일 적에는 삯을 조금 더 들이는 데를 찾았고, 큰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삯을 더 들이는 데를 보아야 했고, 작은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더더 삯을 들이는 데를 찾아본다.

 

  마흔 살에 이르기까지 ‘가난하기 때문에’란 말을 곧잘 썼으나, 이제는 이 말을 안 쓴다. 마흔 살로 넘어선 뒤부터는 ‘시골사람 눈으로’라든지 ‘숲빛 마음으로’라든지 ‘살람하는 어버이 손길로’라든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같은 말을 쓴다.

 

  모두 사랑으로 바라보고 싶다. 뻔히 보이는 바가지를 씌워서 5000원이나 1만 원을 더 챙기려는 나그네채 일꾼도, 고무신을 꿴 내 발을 딱딱한 구둣발로 질끈 밟고 지나가면서 아무 말도 없는 서울 젊은이도, “요즘도 책 사러 서점 가요?” 하는 철없는 말을 읊으며 ‘밀리의 서재’에서 얼굴을 파는 김영하 같은 글쟁이도, 그저 사랑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난 모든 풀꽃나무하고 풀벌레하고 헤엄이한테 다 다르게 이름을 붙이면서 살아간다. 모두를 사랑하려니까. 오롯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그네채 이야기를 한 올씩 풀어내려고 한다. 이제는 쓸 만한 때에 이른 듯하다. 나그네채를 1994년부터 다녔구나.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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