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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노래 2022.8.22.

나그네채에서 4 시애틀로

 

 

  나그네채를 알아볼 적마다 길손채 이름을 보면서 어쩐지 즐겁다. 굳이 날개(비행기)를 타고서 훌훌 떠나지 않더라도, 뉴욕이나 파리를 다녀올 만하고, 캐슬이나 궁전에도 깃들 만하다. 어제는 시애틀에 가기로 했다. 길손채 가운데 우리말로 이름을 지은 곳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다. 예전에는 모조리 한자말로 ‘○○여관’으로 붙이는 일본스러운 이름이었다면, 요새는 거의 영어로 ‘○○호텔’이라 한다. ‘○○모텔’이라 붙인 곳은 좀 묵은 티가 난다. 길손채는 으레 술집골목하고 나란히 있다. 웬만한 길손채는 왁자지껄한 거나꾼(주정꾼) 소리가 스며들고, 술에 절은 냄새가 올라오기도 한다. 또한 술집골목을 낀 길손채는 밤 열 시가 넘어서야 길손을 받기 일쑤이다. 왜냐하면, 밤 열 시까지 ‘잠자리놀이’를 즐기려는 젊은 순이돌이한테 빌려주면서 돈벌이를 하니까. 숲노래 씨처럼 ‘잠자리짝꿍’이 없이 책짐을 등에 손에 가슴에 잔뜩 안고서 묵으려는, ‘책짝꿍’만 데려오는 길손을 보면 그야말로 모든 길손채지기는 숲노래 씨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고무신차림을 깨달으며 “도대체 어디에서 오셨나요?” 하고 묻는 분이 수두룩하다. 장난스럽게 “깊은 두멧골에서 길(도)을 닦다가 이 땅(세상)에 내려왔습니다.” 하고 말하고 싶기도 하지만, “이 고장으로 강의를 하러 와서 책집에 좀 들렀습니다.” 하고 꾸밈없이(재미없게) 말하고 만다. 모든 길손집지기는 내가 ‘길꾼(도인·도 닦는 사람)’이라고 밝히기를 바라지 않을까? 이 눈치를 알면서 장난스런 말은 따로 안 한다. 가뜩이나 등에 손에 가슴에 책짐을 잔뜩 이고 지고 안느라 무거운데, 말장난은 안 하고 싶으니까. 얼른 내 자리로 깃들어 책짐을 끌르고서 고무신하고 옷을 빨래해서 널 생각을 한다. 아무튼 바깥일을 하러 나라 곳곳을 떠돌면서 언제나 ‘번쩍번쩍 눈부신 이웃나라’에서 하루를 묵는다. 그런데 티벳이나 몽골이나 버마나 부탄은 가기 어려울까? 케냐나 모잠비크나 아르헨티나나 칠레는 갈 수 없으려나? 하다못해(?) 네덜란드나 벨기에나 룩셈부르크나 터키나 체코나 폴란드나 핀란드는 갈 수 없으려나? ‘네덜란드호텔’이나 ‘칠레호텔’이나 ‘시에라리온호텔’이 있다면 기꺼이 이곳에 가 보려 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시애틀호텔'은 경기도 부천에 있습니다.

부천역 언저리 길손채를 어느덧

예닐곱 곳을 찾아가 보았는데

여태 다닌 부천역 길손채 가운데 

'시애틀'이 가장 나았기에

이 글을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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