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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날’이 아닌 ‘한글날’인 까닭

말꽃삶 1 한글·훈민정음·우리말

 

 

  어릴 적에는 그냥그냥 떠오르는 대로 말을 하고, 둘레 어른이나 언니한테서 들은 말을 외워 놓았다가 말을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틀리거나 엉뚱하거나 잘못된 말을 꽤 자주 읊으며 손가락질이나 놀림을 받았어요. “야, 그런 말이 어디 있니?”라든지 “내 말을 흉내내지 마!”라든지 “무슨 소리야? 다시 말해 봐.” 같은 말을 숱하게 들었습니다.

 

  어린이는 아직 ‘말(우리말)’하고 ‘글(한글)’을 또렷하게 가르지 못 합니다. 입으로 하니까 말이요, 손으로 적으니까 글이라고 알려준들, 적잖은 어린이가 ‘왼쪽·오른쪽’을 오래도록 헷갈려 하듯 ‘말(우리말)·글(한글)’도 헷갈려 하지요.

 

  어른 자리에 선 사람이라면, 아이가 ‘왼쪽·오른쪽’을 찬찬히 가릴 수 있을 때까지 상냥하고 부드러이 짚고 알려주고 보여줄 노릇입니다. ‘말·글’을 또렷하게 가르지 못하는 줄 상냥하고 부드러이 헤아리면서 느긋이 짚고 알려줄 줄 알아야 할 테고요.

 

  그런데 우리 배움터를 보면, 예나 이제나 배움터 구실보다는 배움수렁(입시지옥) 모습입니다. 배움수렁에서는 ‘왼쪽·오른쪽’이나 ‘말·글’이 헷갈리는, 또 ‘가르치다·가리키다’를 또렷이 갈라서 쓰지 못하는 어린이를 지켜보지 않아요. 셈겨룸(시험문제)을 한복판에 놓습니다.

 

  이러다 보니 어린이일 때뿐 아니라 푸름이일 때에도, 또 스무 살을 넘기고 마흔 살을 지나더라도 ‘우리말·한글’을 옳게 가르지 못 하는 어른이 꽤 많아요. 10월 9일 ‘한글날’은 한글을 기리는 날입니다. 우리말을 기리는 날이 아니에요. 일본이 총칼을 앞세워 쳐들어오면서 우리나라 숨통을 죄고 짓밟을 무렵, 그들(일본 제국주의)은 ‘우리말(조선말)’을 없애려 했습니다. 이즈음 우리나라에서는 주시경 님이 ‘훈민정음’이라는 우리 옛글을 ‘한글’이란 이름으로 바꾸면서, “우리말을 우리글로 담는 얼거리”를 비로소 처음으로 제대로 새롭게 세웁니다.

 

  진작부터 우리말을 버리고서 일본말을 쓰는 조선사람이 수두룩했지만, 우리가 쓰는 말(우리말)을 담는 글(우리글)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누구나 쉽게 익히고 삶으로 품으면, 우리나라는 일본 제국주의한테 안 잡아먹히리라 여긴 주시경 님입니다.

 

  주시경 님이 ‘우리말 얼거리(국어문법)’를 비로소 세우면서 가다듬고 추슬러서 내놓을 적에는, 조선사람뿐 아니라 일본사람도 주시경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고, 조선총독부조차 주시경 님이 들려주는 “우리말 이야기(강좌·강의)”를 귀담아들을 뿐, 함부로 막거나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조선총독부)은 오히려 조선사람 스스로 아직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손수 엮어낼 엄두를 못 낼 1920년에 《朝鮮語辭典》을 떡하니 내놓았습니다.

 

  깊이 본다면, 주시경 님은 ‘자주독립운동’이라는 큰뜻을 품고서 ‘훈민정음’을 ‘한글’로 바꾸어, 참말로 모든 한겨레가 말살림을 글살림으로 옮기면서 우리 넋과 얼을 지키는 데에 온마음하고 온힘을 바쳤습니다. 이런 엄청난 일을 꾀하고 벌일 적에 조선총독부가 왜 섣불리 주시경 님을 건드리지 못 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들 조선총독부는 조선을 사로잡고 억누르고 ‘한겨레넋(조선사람다운 넋)’을 없애려면, 저들 일본사람과 앞잡이(친일부역자)부터 우리말(조선말)을 제대로 알고서 배운 다음에, ‘글을 모르고 말만 아는 조선사람’을 휘어잡는 길을 펴야 했더군요.

 

  그러니까, 주시경 님은 일제강점기에 첫손으로 꼽을 만큼 검은이름(블랙리스트)에 들었으나, 오히려 ‘조선총독부로서도 배워야 할 사람’이었기에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고 하겠습니다. 조선총독부로서는 주시경 한 사람 목을 쳐서 없애기는 쉽지만, 이런 짓을 했다가는 ‘조선총독부로서도 조선말을 제대로 익혀서 앞잡이(친일부역자)를 부린다거나, 조선을 거머쥐는(식민 지배) 길’이 외려 어려울 만했습니다.

 

  주시경 님이 남긴 글을 살피면, 주시경 님 스스로도 이 대목을 잘 알았다고 느낍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한겨레옷만 입으려 했고, ‘가방’이 아닌 ‘보따리’만 챙겼어요. 주시경 님을 가리키는 덧이름 하나는 ‘주보따리’입니다. 둘레에서는 차림옷(양복)에 구두에 한껏 멋을 부릴 뿐 아니라, 한겨레스러운 모습을 버리지만, 주시경 님은 끝까지 ‘한겨레로서 한겨레다운 살림’을 지키고 돌보았습니다.

 

  저는 1982∼87년 사이에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이런 이야기를 배움터에서 듣고 익혔어요. 그무렵에는 세종대왕보다도 주시경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고, 우리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크나큰 힘 가운데 하나는 ‘우리 말글’을 지킨 일이었고, 우리 말글은 바로 주시경 님이 ‘훈민정음’을 ‘한글’로 바꾼 때부터라고 가르쳐 주었어요.

 

  요즈막 어린배움터나 푸름배움터에서는 주시경 이야기를 거의 안 짚거나 안 가르친다고 느낍니다. 요새는 세종대왕 이야기만 넘칩니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한글’이 아닌 ‘훈민정음’을 엮었고, 훈민정음이란 ‘소리(소릿값·바른소리)’입니다. 훈민정음은 조선 무렵에 ‘조선팔도 글바치가 저마다 팔도 사투리로 중국말을 하기’ 때문에 ‘서울 및 임금터(궁궐)에서 이야기(의사소통)를 제대로 하려’면 ‘중국말을 읊는 소리(소릿값)부터 하나(통일)로 맞추어야 한다고 여기’면서 내놓았어요. ‘훈민정음 = 소리(발음기호)’입니다. 더구나 훈민정음은, 조선사람 누구나 한문을 똑같이 읽도록 맞춘 소릿값(발음기호)이지요.

 

  세종대왕이 편 훈민정음이란, 조선팔도 사람들이 마음껏 쓰던 ‘사투리’를 오직 ‘서울말’로만 맞추라고 하는 틀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팔도 글바치(양반·사대부·지식인)는 세종대왕한테 맞서는 글(상소)을 끝없이 올렸는데,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은 한문을 바르게 읽는 소릿값’이라는 뜻을 알렸으며, ‘훈민정음 = 자주독립’이 아닌 ‘훈민정음 = 중국 사대주의’라는 대목을 깨달은 글바치는 더는 세종대왕한테 안 맞섰습니다.

 

  조선 무렵에 훈민정음이라는 소릿값이 태어나고서 나온 여러 책을 살피면 훈민정음은 ‘우리글’이 아니라 ‘한문을 읽는 소릿값(발음기호)’일 뿐인 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다만, 세종대왕은 중국 사대주의를 더 깊이 다지고, 봉건주의를 한결 단단히 세우려는 틀로 훈민정음을 엮었지만, 사람들은 이 ‘소릿값(발음기호)’을 쉽게 다루면서 ‘우리 마음을 우리글로 옮기는 실마리’로 삼았습니다. 아주 드문 몇몇 글바치는 훈민정음으로 책을 남겼거든요.

 

  그리고 낡은틀(남성 가부장 권력)이 드센 조선 500해에 걸쳐 몹시 억눌리고 밟힌 순이(여성)는 한문으로도 글을 남겼으나, 이 훈민정음으로도 글을 남겨 주었습니다. ‘암클’이란 소리를 들은 훈민정음이되, 오히려 ‘순이가 살려주고 돌봐주었기에 살아남은 우리 글씨인 훈민정음’이라고 하겠습니다. 돌이(남성)로서는 정철·김만중·홍대용 님도 훈민정음으로 글을 남겨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글’은 주시경 님이 일제강점기에 새롭게 바꾸어 낸, 아니 처음으로 빛을 보도록 촛불을 켠 우리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말을 하면 아주 틀립니다. 세종대왕은 중국 사대주의를 단단히 펴려는 뜻으로 ‘발음기호인 훈민정음을 엮었다’고 해야 올바릅니다. 주시경 님도 우리글을 새롭게 짓지는 않았어요. ‘발음기호였던 훈민정음’을 ‘누구나 말을 글로 옮기기 쉽도록 틀을 짜고 세우는 길을 처음으로 연’ 주시경 님입니다.

 

  한글날이란, 우리말을 우리글로 옮기는 첫발을 비로소 내딛은 새길을 기리는 하루입니다. 한글날은 ‘훈민정음을 기리는 날’이 아닙니다. 한글날은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을 우리 나름대로 ‘글로 옮기는 길’을 처음으로 세운 그날(일제강점기에 자주독립으로 깨어나려던 땀방울)을 기리는 잔치입니다.

 

  예전에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만 말했으나, 요새는 갈수록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글이나 책이 쏟아집니다. 속내를 숨기면서 ‘우리말이 우리글로 피어난 길’을 사람들이 못 알아채도록 가로막는 슬픈 수렁이라고 느낍니다.

 

  세종대왕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세종대왕은 그저 ‘새로 선 나라’인 조선을 더욱 단단히 봉건사회로 다스리려는 뜻이었기에, ‘조선팔도 사투리로 읊던 중국말’을 ‘서울말로 중국말을 읊는 틀’로 고쳐서 가다듬으려고, ‘훈민정음’이란 소릿값(발음기호)을 세웠을 뿐입니다.

 

  조선 오백 해는 중국을 섬긴 나날입니다. 중국 사대주의이지요. 일제강점기는 일본을 우러른 나날입니다. 슬픈 제국주의입니다. 사대주의하고 제국주의가 서슬퍼렇던 때에는 어떤 사람도 마음껏 생각하지 못했고, 말도 글도 홀가분히 펴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한복판이지만, 목숨을 바쳐 우리글을 갈고닦은 사람이 있어요. 일본 제국주의가 물러난 뒤에도 오래도록 군사독재가 이었는데, 이동안에도 우리말하고 우리글을 가다듬은 사람이 있습니다.

 

  한글은 주시경 님이 일구었습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엮었습니다. 우리말은 다 다른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마다 제 삶자리·보금자리에서 스스로 살림을 짓고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면서 수수하게 지었습니다. ‘한글·훈민정음·우리말’ 세 가지를 이제부터 우리 스스로 찬찬히 바라보고 아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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