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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도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요시노 겐자부로 저/김욱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왜 시골에 ‘농업고등학교’가 없을까
 [푸른책과 함께 살기 98] 요시노 겐자부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양철북,2012)

 


- 책이름 :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 글 : 요시노 겐자부로
- 옮긴이 : 김욱
- 펴낸곳 : 양철북 (2012.6.28.)
- 책값 : 12000원

 


  아이 둘을 재웁니다. 뜨거운 여름 한낮 햇살을 쬐며 면 소재지 우체국을 함께 다녀온 다섯 살 첫째 아이는 만화영화를 보고는 그동안 쌓인 졸음을 참지 못해 아버지 자장노래를 들으며 살포시 잠듭니다. 자전거수레에서 넉넉히 잔 둘째 아이는 집에서 마루에 시원스레 응가를 누고는 한손에 부채와 파리채를 갈마들어 쥐며 이래저래 온 집안을 쏘다니며 놀다가 천천히 잠듭니다.


  두 아이를 재우고 나서 아버지도 한동안 같이 잡니다. 햇살이 저녁으로 넘어가는구나 하고 느끼며 일어납니다. 마당에 넌 옷가지를 걷습니다. 마당에 넌 이불도 걷습니다. 여러모로 집일을 건사합니다. 이러구러 삼십 분 즈음 지나 셈틀을 켜려 하는데 두 아이가 잠에서 깹니다. 이제 아이들은 자고 싶은 만큼 잤습니다.


  잠자리를 털고 나란히 일어난 두 아이를 일으켜 ‘조금 걷자’고 얘기합니다. 만화영화를 보여 달라 하는 첫째 아이한테 바깥에 다녀와서 보자고 달랩니다. 세 사람은 저녁햇살을 누리며 마을 어귀로 걷습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오랜 빨래터로 갑니다. 빨래터에서 셋이 물놀이를 합니다.


  마을 빨래터는 두 군데 있습니다. 빨래터에는 멧골에서 흐르는 물이 네 철 끊이지 않고 시원스레 흐릅니다. 집집마다 물꼭지가 달린 요즈음에는 모두 집에서 빨래하고 물을 쓰지만, 마을에서 아이들이 자라던 때에는 모두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물을 길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까지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여름철 물놀이를 즐겼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을 앞에는 흥양초등학교가 있는데, 1990년대에 문을 닫았지만, 아마 이곳이 문을 닫을 무렵 집집마다 물꼭지가 들어왔을 테고, 물꼭지가 들어오면서 빨래터는 옛날 옛적 이야기처럼 남았으리라 생각합니다.


.. 우라가와가 자신을 괴롭힌 아이를 볼 때는 그 눈빛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눈빛에서 증오 같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기에 분위기에 휩쓸려 같이 장난을 친 아이들은 씁쓸해진다. 장난친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 “그럼 이번에는 집이 가난하다는 걸 떠나서 우리가와하고 너희들이 다른 점은 뭘까?” … 가난해서 열등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아직 사람답게 성장하지 못했다는 증거란다 ..  (37, 114, 117쪽)


  스물아홉 집이 살아가는 마을에 아이가 있는 집은 오직 우리 집입니다. 우리가 이 마을에 새로 들어오며 ‘마을에 아이들 목소리’가 흐릅니다. 우리 마을에도 옆 마을에도 옆옆 마을에도 어린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면 소재지로 가야 비로소 어린이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면 소재지에서 구경하는 어린이라 하더라도 앞으로 열 해쯤 지나면 거의 모두 사라질는지 몰라요. 아직까지 시골 면 소재지 언저리에 아이들이 있다지만, 이 아이들이 자라서 초등학교를 거쳐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한결같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버는 삶’으로 바뀌리라 생각해요.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라남도 고흥은 군민 거의 모두 흙을 일구거나 고기를 잡습니다. 관공서는 있으나 여느 회사나 공장이 거의 없어요. 골프장도 기차역도 따로 없으며, 이른바 ‘돈을 번다는 시설’이 없는데, 달리 말하자면 ‘돈을 벌되 공해를 내뿜는 위해시설’이 없습니다. 고흥사람은 거의 모두 땅과 하늘과 바다와 햇볕과 나무와 풀과 바람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고흥이라는 곳은 오롯한 시골이요, 시골사람답게 시골내음이 솔솔 피어나는 터전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시골 고흥인 만큼, 고흥에는 ‘농업고등학교’나 ‘농업중학교’가 있을 법합니다만, 막상 농업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습니다. 인문계 학교 아니면 실업계 학교인데, 실업계 학교는 도시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는 솜씨를 가르칠 뿐이에요. 고향인 시골마을에서 흙이나 바다를 사랑하며 살아갈 길을 가르치거나 보여주거나 이끌지 못해요.


  저희는 잘 모릅니다만, 우리 보금자리 고흥뿐 아니라, 고흥하고 이웃한 보성이나 장흥도 엇비슷하리라 느껴요. 참말 시골이지만, 시골에 있는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이 학생들한테 농업이나 어업을 가르치지 못해요. 시골학교 교사가 학생한테서, 또 학부모한테서 농업이나 어업을 배우면서 아이들이랑 삶을 나누려 하지 못해요.


.. 마지막 열쇠는 코페르, 바로 너 자신이란다. 너 말고는 아무도 없어. 네가 인생을 살고, 인생에서 여러 가지를 체험하고, 체험하면서 생각한 것을 위대한 사람들이 남긴 지혜와 견주어 볼 때 비로소 그 사람들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 인생에서 중요한 건 어느 때나 네가 느낀 진심, 네 마음을 움직이는 생각이란다 … 네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또는 세상이 인정하는 대로만 살아간다면 언제까지나 자립한 사람이 될 수 없단다 … 진심으로 네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져야 해.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 때도, 네가 그것을 좋아한다고 확신할 때도 그 감정은 언제나 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단다 ..  (50, 52쪽)


  한국에서 ‘농업고등학교’ 이름을 건사하는 학교가 아직 몇 군데 있습니다. 그런데 농업고등학교치고 아이들이 농사일을 배우는 데는 거의 없습니다. 농업고등학교를 나와 씩씩하게 흙일꾼으로 살아가는 아이가 매우 적습니다.


  요즈음 한여름을 맞이해 서울처럼 커다란 도시에서는 ‘전기 예비율’이 아주 낮다며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참말 도시는 전기를 많이 쓰니까 나날이 전기를 걱정할밖에 없어요. 그러나, 전기를 많이 쓰는 도시는 스스로 전기를 빚지 않아요. 적어도 아파트 옥상에 햇볕전지판을 붙이지 않을 뿐더러, 아파트이든 높은 건물이든 유리창이 햇볕전지판 노릇을 하도록 과학기술을 일구지 않아요. 조금만 생각하고 조금만 과학기술을 슬기롭게 쓴다면, 자동차도 지붕뿐 아니라 앞뒤 유리를 햇볕전지판 노릇을 하도록 만들면서 기름(석유) 아닌 햇볕으로 구르도록 할 수 있어요. 서울처럼 커다란 도시 찻길을 가득 메운 거리등불도 햇볕으로 켜지도록 할 수 있어요. 빗물을 받아서 쓰는 길을 얼마든지 열 수 있어요. 도시사람 똥오줌이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고 좋은 거름이 되도록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도시사람은 지구별을 아끼거나 사랑하며 보살피는 길을 좀처럼 생각하지 않아요. 서울이나 부산이나 대구나 인천 같은 도시에는 아예 농업고등학교는 생기지 않아요. 시골에도 농업고등학교가 없지만, 도시에도 농업고등학교는 없어요.


  왜 시골 아이가 몽땅 도시로 가서 회사원이나 공무원 노릇을 해야 할까요. 왜 시골 아이가 흙일꾼이나 고기잡이가 되면 안 되고, 모조리 도시에 있는 공장에서 일해야 할까요. 왜 도시 아이 가운데 한둘이라도 시골로 가서 흙일꾼이나 고기잡이가 되도록 이끌지 않을까요. 왜 대학교 농업과학 학과 아이들은 대학교를 마친 다음 시골로 가서 흙일꾼이 될 마음을 품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면, 출판사이든 신문사이든 도시에만 있어요. 시골에는 없어요. 농민이 읽는 신문을 만든다는 사람도 도시에 신문사가 있을 뿐, 스스로 시골에서 일하면서 신문을 만들지는 않아요. 농업이나 어업을 다루는 공무원도 서울이나 커다란 도시에서 건물에서 펜대나 셈틀만 붙잡을 뿐, 정작 흙이나 물을 만지면서 시골사람이랑 어깨동무를 하지 않아요.


.. 느티나무 위로  펼쳐진 밤하늘은 빨려들 것처럼 짙은 쪽빛이었다. 별은 바늘 끝에 색을 묻혀 하늘에 찍어 놓은 것처럼 높은 곳에서 작게 빛나고 있었다 … ‘너와 상관없는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에도 당연히 분자와 분자가 교류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따뜻하게 만나야 한단다’ … ‘사람이 사람에게 좋은 감정으로 친절을 베풀고, 그것을 기쁨으로 삼는 것처럼 아름다운 관계는 이 세상에 없단다’ ..  (65, 88∼89쪽)


  저녁을 차립니다. 두 아이를 먹입니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을 씻깁니다. 아이들을 씻기면서 빨래를 합니다. 빨래기계가 있으나, 나는 손빨래가 한결 익숙합니다. 이불을 빨 때에는 빨래기계를 쓰지만, 여느 때에는 틈틈이 아이들을 씻기거나 내 몸을 씻으며 손빨래를 합니다. 다 씻은 아이들하고 저녁에 뜬 반달을 구경합니다. 반달을 구경하고 세 사람이 둘러앉아 만화영화를 봅니다. 아이들 어머니는 홀가분하게 바깥마실을 나갔습니다. 아이들 어머니가 이틀을 바깥잠을 자기로 하고, 아이들 아버지가 홀로 아이들하고 복닥입니다. 아이들 어머니가 집에 있어도 모든 집일을 아버지가 도맡았는데, 아이들 어머니가 없이 집일을 하자니 한결 바쁘기도 하면서, 온통 ‘아이바라기’만 하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그렇지만, 혼자 아이들을 바라보며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하는 하루는 일찍 마무리합니다. 아홉 시가 안 되어 두 아이가 졸립다며 불을 끄고 자자고 부릅니다. 자장노래를 삼십 분 남짓 부르며 밤잠을 재웁니다. 큰아이는 어머니 왜 안 오느냐고 묻습니다. 오늘은 어머니가 말미를 얻어 마실을 갔다고 여러 차례 얘기하며 부채질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재웁니다.


  무르익는 한여름 밤에는 풀벌레 노랫소리 고즈넉하게 들립니다. 자동차 다니는 소리 없고, 시끄러운 노래 트는 가게 없으며, 술에 절은 사람들 얄궂은 소리 없습니다. 전철 소리도 버스 소리도 없습니다. 우리 마을 앞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는 저녁 여덟 시 즈음 마지막으로 지나갑니다. 군내버스가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깜깜한 저녁부터 이듬날 아침에 첫 군내버스가 지나갈 때까지 그야말로 차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밤잠을 자며 시끄러운 소리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아니, 아이들은 밤잠을 자며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으며 한갓집니다. 때때로 개구리도 노래를 하고, 멧새도 노래를 합니다. 바람이 나뭇잎과 풀잎을 건드리며 풀노래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 “얼마나 연습한 거야?” 코페르가 물었다. “연습?” “너무 잘하니까.” “연습 같은 건 안 했어. 엄마를 도와주다 보니 이렇게 됐어. 하나를 잘못 튀기면 3전 손해거든. 그래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 그런데 우리가 머리 숙여 칭찬하고 떠받드는 그 위대한 사람들은 그 타고난 재능으로 어떤 일을 해낸 걸까. 또 그들이 이룩한 업적은 우리 삶에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  (98, 162쪽)


  나는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시골마을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날마다 새롭게 들여다보는 들판을 사진으로 담고 글로 옮깁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느낀 이야기를 쓰고,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 새끼를 깐 제비들을 바라본 이야기를 씁니다. 뭉게구름 이야기를 쓰고,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워 논둑길을 달리며 느낀 이야기를 씁니다.


  우리 식구는 신문을 안 읽습니다. 텔레비전을 안 봅니다. 가끔 면내나 읍내에 나갔을 적에 어느 가게에 들를 때면 신문을 들추기도 하지만, 신문을 들춘다 해서 우리들 시골에서 살아가며 도움이 되거나 귀를 기울일 만한 이야기를 찾지 못합니다. 시골사람이 시골마을에서 예쁘게 살아가며 웃음꽃 피우는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는 적이란 거의 없어요. 시골사람이 시골마을에서 착하게 살아가며 사랑꽃 피우는 이야기가 방송에 나오는 적이란 아주 드물어요. 곰곰이 살피면, 도시사람이 도시에서 예쁘거나 착하게 살아가는 이야기 또한 신문이나 방송에는 거의 안 실려요. 정치꾼 이야기, 주식 이야기, 경제발전과 군대 이야기, 미국과 일본 이야기, 자동차나 백화점 이야기, 운동경기나 영화 이야기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올 뿐이에요.


  봄이 되어 들판에 흐드러지는 들풀 이야기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지 않아요. 봄까지꽃이나 할미꽃에서 비롯하는 한 해 숱한 꽃누리 이야기를 신문이나 방송에서 다루지 않아요. 벚꽃놀이 이야기나 가끔 다루지만, 사람들이 날마다 먹는 밥이 되어 주는 벼가 이삭을 패는 이야기는 신문에도 방송에도 나오지 않아요. 어쩌면, ‘이삭이 팬다’는 말조차 모를 수 있겠지요. 개구리밥이 얼마나 작으며 예쁜 풀인지를 모를 수 있겠지요. 얼마나 많은 잠자리와 나비가 자동차한테 치이거나 밟혀서 죽는지 모를 수 있겠지요.


.. 그런데 선배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게 정당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판단하는 것도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네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은 교풍을 어지럽히는 놈들이며 손봐야 할 녀석들이라고 판단했다 … 다른 학교와 운동경기를 할 때 응원하러 오지 않았다고 국민이 아니라는 낙인을 찍어 버리는 무서운 선배들이 있는 학교를 누가 사랑할 수 있을까 … “학교를 위해 폭력을 써야 한다는 건 모두 거짓말이야.” … ‘사람이 사회에서 느끼는 불행과 고통을 생각해 보면,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을 증오하거나 적으로 만들면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어.’ ..  (146∼147, 150, 219∼220쪽)


  나는 시골사람입니다. 한자말로 적자면 ‘촌민(村民)’입니다. 요샛말로 고쳐서 말하자면 ‘촌사람’이나 ‘촌놈’입니다. 오늘날 한국땅에는 도시사람이 99요, 시골사람은 1이라 합니다. 나는 99:1 가운데 ‘하나(1)’라는 자리에 섭니다. 그러나, 시골마을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면 소재지나 읍 소재지에 나들이를 가 볼 때면, 때때로 시외버스를 타고 이웃 순천시에 가 볼 때면, 도시와 시골은 99:1이 아니라 99.99:1쯤 되지 않으랴 싶어요. 부산이나 인천이나 서울을 가 볼 때면, 도시와 시골은 99.999:1쯤 되겠구나 싶기도 해요.


  사람들이 도시에 지나치게 몰린 채 살아가요. 너무 좁은 곳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요. 너무 좁은 곳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니, 사람들 스스로 숨이 가빠요. 풀이나 나무 자랄 빈틈이 없어요. 자동차 댈 자리조차 없다고 하지만, 자동차에 앞서 사람이 느긋하게 눕거나 앉을 자리마저 없어요. 열 층이건 스무 층이건 겹겹이 포개어도 모자라다고 하는 판이에요. 땅밑으로 파고 들어가서 집을 지어요. 지붕을 뚫고 옥탑까지 집으로 마련해야 해요.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하나요. 돈을 언제까지 벌어야 하나요. 돈을 왜 벌어야 하나요.


  돈을 벌어서 밥과 옷과 집을 사나요. 그러면, 돈을 벌지 말고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마련하면 되지 않을까요. 돈을 벌어서 유기농 곡식조차 아닌 화학약품에 찌든 곡식이나 가공식품을 사먹지 말고, 마음을 벌고 사랑을 벌며 삶을 버는 하루를 누리면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밥을 스스로 일구어 먹으면 아름답지 않을까요.


  농업은 경제가 아니에요. 농업은 삶이에요. 어업도 경제가 아니에요. 어업도 삶이에요. 돈을 많이 벌어 도시에서 유기농 곡식을 사먹으면서 아이들을 영어 잘 가르치는 학원과 학교에 넣으면 앞으로 무슨 보람을 누릴 수 있을까요. 아이들도 나(도시 어른)처럼 도시에서 돈 잘 벌어 유기농 곡식 사다 먹을 만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 하나요.


.. 코페르는 그때의 자신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코페르 자신은 누가 그랬는지 알고 있다.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의 내 마음 … “사람이 살면서 만나는 사건들은 모두 한 번뿐이며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것을 돌층계 사건에서 배웠기 때문에, 내 안에 들어 있는 좋은 생각과 아름다운 감정들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  (187, 214쪽)


  요시노 겐자부로 님이 1930년대에 일본에서 내놓은 푸른책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양철북,2012)를 읽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이웃 한국과 대만을 식민지로 삼았을 뿐 아니라, 중국까지 쳐들어가며 슬픈 바보짓을 일삼던 때에, 요시노 겐자부로 님을 비롯해 생각과 마음과 사랑을 활짝 연 사람들은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책을 내놓았다고 해요. 1930년대 일본도 2010년대 한국처럼 처세와 자기계발을 일삼자는 책이 판치면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 어둠고 슬픈 굴레에서도 생각을 빛내고 마음을 일으키며 사랑을 나누자고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씩씩하고 꿋꿋하게 있었다고 해요.


.. 내가 사람다운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희망이었다는 말을 절대로 잊지 않을 거예요.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내가 좋은 사람이 된다면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나는 거예요 ..  (259쪽)


  요시노 겐자부로 님은 중일전쟁이 한창일 뿐 아니라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키던 일본제국주의가 어린이와 푸름이를 망가뜨리는 꼴을 지켜보면서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물었어요. 또 둘레 어버이와 어른한테 똑같이 물었어요. ‘여보시오, 당신들 어떻게 살아갈 생각이오?’


  이 물음은 2012년 한국에서까지 이어집니다. 아마 2022년 한국에서도, 2032년이나 2112년 한국에서도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참말 오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어린이와 푸름이와 어른 모두 어떠한 생각을 일구고 어떠한 마음을 빛내어 어떠한 사랑을 꽃피울 때에 스스로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어떻게 살고 싶나요. 무엇을 하며 살고 싶나요. 어떤 꿈을 꾸고 싶나요. 어떤 길을 걷고 싶나요. 어떻게 웃고 싶나요. 내 고운 목숨을 어떻게 빛내고 싶나요. (4345.7.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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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nnydaler

    무얼하며 사는가하는 질문은 간단하면서도 깊은 질문 같네요

    2012.10.11 10:19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숲노래

      네, 가장 쉽고 가장 밑바탕이 되면서
      스스로 삶을 돌아보도록 이끄는 빛줄기 같은 이야기라고 느껴요..

      2012.10.1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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