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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이름 짓기
[말사랑·글꽃·삶빛 39] 우리 집 둘째 ‘산들보라’

 


  이름은 어버이가 아이한테 지어서 선물합니다. 내 이름은 내 어버이한테서 받은 선물입니다. 내 어버이도 나처럼 갓 태어난 아기였을 적 당신 어버이한테서 이름을 선물받았습니다. 나도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내 아이한테 이름을 선물합니다. 앞으로 내 아이도 씩씩하게 자라 어른이 되면, 저희끼리 고운 짝꿍을 만나 어여쁜 이름을 선물할 테지요.


  내 이름은 내 삶을 보여줍니다. 내 어버이가 나한테 선물한 이름은 내 어버이가 나를 사랑한 삶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즐겁고 씩씩하게 살아가며 나한테 새롭게 붙일 이름을 생각합니다. ‘내가 나한테 선물할 새 이름’을 가만히 곱씹습니다.


  내가 갓난쟁이로 태어나 어린이가 되고, 푸름이를 지나, 어른이라는 자리로 삶자리를 바꾸는 동안, 내 곁으로 찾아오는 어여쁜 동무들이 있습니다. 내 동무들은 나한테 새로운 이름을 선물처럼 붙여 줍니다. 나는 내 동무들한테 이녁 새 이름을 선물처럼 붙여 줍니다. 동무들은 서로서로 새 이름을 붙여 주며 저마다 사랑을 선물합니다.


  한자말로 적어 본다면, ‘본명·필명·별명’쯤 될 수 있을 텐데, 쉽게 한국말로 적어 본다면, ‘내 이름·글 이름·다른 이름’쯤 되기도 하지만, 그저 ‘이름’입니다. 어버이가 붙인 이름이고, 내가 붙인 이름이며, 동무가 붙인 이름이에요.

  나와 옆지기는 아이 둘을 낳아 함께 살아가면서 두 아이한테 저마다 다른 이름을 붙여 줍니다. 두 어버이가 사랑으로 낳은 아이라는 넋을 담는 한편, 아이 스스로 이 땅에서 사랑스레 살아갈 길을 곱게 밝히기를 바라는 꿈을 담습니다. 첫째 아이한테는 ‘사름벼리’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사름’과 ‘벼리’를 더한 이름입니다. 아버지 성은 ‘최’이고, 어머니 성은 ‘전’이지만, 우리 두 아이는 아버지 성이나 어머니 성을 받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어머니 성이란 ‘어머니를 낳은 아버지 성’입니다. 홀가분하게 어머니 성이지 않아요. 아버지 성도 ‘아버지를 낳은 아버지 성’일 뿐, 홀가분한 아버지 성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와 옆지기는 ‘아버지 핏줄로만 잇는 성’은 우리 자리에서 끝내기로 했어요. 비록 호적이나 주민등록에서는 이렇게 못하지만, 우리는 우리 삶을 누리는 만큼, 법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는 법 아닌 삶을 사랑합니다.


  첫째 아이 ‘사름벼리’는 ‘사름’이라는 낱말로 ‘흙과 풀을 사랑하는 넋’을 밝힙니다. ‘벼리’라는 낱말로 ‘물과 바다를 사랑하는 얼’을 밝힙니다. 이 땅 지구별에 환한 사랑 드리울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리라 믿는 꿈을 ‘사름벼리’라는 이름에 담습니다.


  둘째 아이한테는 ‘산들보라’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산들’과 ‘보라’를 더한 이름입니다. ‘산들’은 산들산들 부는 산들바람을 일컫기도 하지만, 산과 들을 일컫기도 합니다. 산뜻한 숨결을 들이켜는 너른 가슴을 일컫기도 합니다. ‘보라’는 무엇보다 ‘내 마음속에 깃든 하느님을 보라’를 일컫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입니다.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 하느님입니다. 풀과 나무와 꽃 또한 하느님입니다. 냇물과 해님과 무지개와 바람 또한 하느님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면서 이웃과 동무 모두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나 스스로 아끼며 섬길 수 있을 때에 나를 둘러싼 풀과 나무와 숲과 온누리를 아끼며 섬길 수 있어요. 곧, 참마음을 보라는 뜻입니다. 참삶을 보고 참사랑을 보라는 뜻입니다. 참길과 참꿈을 보라는 뜻이에요. 이러면서 맑은 보라빛을 일컫고, 눈보라 꽃보라처럼, 산들산들 맑은 바람이 따사롭게 ‘산들보라’를 이룬다는 이야기를 일컬어요.


  아이들 이름을 지으며 무척 즐겁습니다. 두 아이가 하루하루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뿐 아니라, 두 아이한테 날마다 이름을 수십 수백 차례 불러 주면서 즐겁습니다. 큰아이가 작은아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즐겁고, 앞으로 작은아이가 더 커서 누나 이름을 이쁘장하게 부를 적에는 이 소리를 들으며 더욱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이름은 처음 붙이면서 즐겁습니다. 삶을 누리는 동안 언제라도 부르면서 즐겁습니다. 내가 내 이름을 종이에 연필로 꾹꾹 눌러 쓰면서 즐겁습니다. 내 동무가 나한테 글월 한 장 띄운다면서 내 이름을 봉투에 곱다시 적바림할 적에 즐겁습니다.


  이 땅 누구나 어버이한테서 가장 빛나고 가장 맑으며 가장 슬기로운 이름을 선물로 받았으리라 느껴요. 이 땅 어린이와 푸름이 누구나 맑고 슬기롭게 빛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먼 뒷날 새삼스러운 즐거움을 가슴에 듬뿍 안고 새 이름을 새 아이들한테 예쁘게 붙일 수 있으리라 느껴요. 4345.1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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