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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여름부터 푸른책(청소년책)을 꾸준하게 펴내면서 한국땅 푸름이와 교사와 어버이한테 ‘삶을 읽는 길동무가 되는 책’을 나누는 ‘양철북’ 출판사가 있다. 아주 작은 일터로 처음 문을 연 뒤, 어느덧 열두 일꾼이 책짓기를 하는 책터가 되었는데, 출판사 대표 조재은 님(47)은 어릴 적 시골에서 감자묻이·밀사리를 하고 땔나무를 하며 고구마 빼때기를 하던 일을 즐겁게 되새긴다. “대밭골에 가서 대를 자르고 사카린 네 동가리 나눠서 타고, 막대기 꽂고 뒤안에 갖다 놓으면 시골이 참말 춥거든요. 대나무가 꽝꽝 얼어서 갈라지는데, 하루 자고 이듬날 소죽 쑬 때 갖다 넣으면 바깥만 떨어지고 안만 남아서 쏙 나오는데, 그게 아이스크림이에요. 얼마나 추운지 볼과 손이 빨간 거야. 그리고 소죽에 손을 담그면 때가 불어서 둥둥 뜨는데 소는 그걸 맛있다고 잘 먹어요.” 하는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는데, 이 같은 이야기를 그림책이나 청소년소설로 빚으면 퍽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2006년부터 인문책을 차근차근 펴내고 푸른책을 나란히 펴내면서 한국땅 사람들한테 ‘삶을 사랑하는 길벗이 되는 책’을 나누는 ‘철수와영희’출판사가 있다. 처음부터 작은 일터로 열었고, 오늘도 작은 일터로 살림을 꾸리는데, 출판사 대표 박정훈 님(44)은 ‘일하는 사람들이 슬기롭게 사랑을 나누면서 생각을 꽃피울 수 있는 책’을 꿈꾼다. 뚜벅뚜벅 걷는 한 걸음이 모여 천 리 길이 되고, 천 리 길이 만 리 길로 이어지면서 이 나라 골골샅샅 아리따운 이야기 살포시 감돌 수 있으리라. 삶은 사랑으로 누리고, 책은 사랑으로 빚는다.

 


  숲사람 이야기 4 - 사랑으로 빚는 책
  즐겁게 책을 빚는 사람들

 


  책 한 권 읽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책을 읽는 사람’ 모습은 차츰 사라지지 않느냐 싶다. 신문에서도 방송에서도 정부에서도 스마트폰이라 하는 손전화 기계를 널리 알리거나 파는 데에 생각을 기울일 뿐이고, 삶을 다루는 책은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초·중·고등학교 교과목은 잔뜩 늘어났고, 대학교 학과는 수없이 생겼다. 그런데, 초·중·고등학교에서나 대학교에서나 교과서와 교재로 지식과 정보를 가르치려 할 뿐, 교과서를 넘는 책이나 교재를 아우르는 책을 밝히지는 않는다.


  교과서와 교재는 ‘온누리를 밝히는 책’ 가운데 알맹이를 간추렸을까.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교과서와 교재만 달달 외우면 슬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교과서로 시험공부를 하고 ‘논술에 도움 될 몇 가지 문학책과 인문책’을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는 굴레로 열두 해를 보낸 다음, 더 커다란 회사나 공공기관에서 연봉을 더 많이 받을 만한 자리를 살피도록 등을 떠미는 대학교 네 해를 보내는 아이들은 마음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까. 오늘날 아이들은 교과서를 읽으며 무엇을 배울까. 오늘날 아이들은 교과서를 살짝 내려놓고 읽는 문학책과 인문책으로 무엇을 느낄까.


  글 한 줄에 서린 넋을 읽으라는 말을 흔히들 읊지만, 정작 제도권 기본교육 열두 해를 거치는 동안, 아이들 스스로 ‘책 한 권 글 한 줄’ 느긋하게 읽으면서 마음 깊이 아로새기도록 풀어놓지 않는다. 글 한 줄을 읽으면서 삶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사랑을 깨우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1년 평균 독서량’은 대수롭지 않다. 노래꾼 ‘싸이’가 한 해에 한 권조차 안 읽는다고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다. 그렇다면, 한 해에 책을 100권이나 1000권쯤 읽는 이들은 얼마나 훌륭하게 삶을 갈고닦는가. 한 달에 책을 10권이나 30권쯤 읽는 이들은 얼마나 아름답게 사랑을 꽃피우는가. 한국에서 똑똑하다는 이들은 얼마나 착하고 참답게 이웃사랑을 하는가. 한국에서 가방끈 길다 하는 이들은 얼마나 어여쁘고 슬기롭게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는가.

 

  책이란 무엇인가


  한 사람은 하루에 책을 몇 권쯤 읽을 수 있을까. 하루에 책 한 권씩 읽을 수 있을까. 여느 책이라 하면 한 권 읽는 데에 너덧 시간이나 대여섯 시간 걸린다고들 말하지만, 책에 따라 다 다르기에, 어느 책은 5분만에 읽을 수 있고, 어느 책은 다섯 해에 걸쳐 읽을 수 있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는 어버이라면, 날마다 그림책 스무 권이나 서른 권씩 읽기도 한다. 같은 그림책 한 권을 하루에도 열 차례나 스무 차례 읽어 주기도 한다.


  아마, 통계에는 ‘어린이책 아이한테 읽히는 어버이’가 날마다 하는 ‘책읽기 부피’까지 담기지 않으리라 본다. 통계에는 안 잡힌다 하지만, 이 나라 숱한 어머니들은 집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참 많이 오래도록 읽는다. 다만, 어머니 스스로 ‘책을 읽는다’고 못 느낄 뿐이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아이들이 읽는 책’으로 잘못 알거나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림책을 쓰거나 동화책을 내는 이는 모두 어른이다. 어른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어린이책을 빚는다. 이 어린이책은 어른들이 책방에서 장만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린다. 그리고, 이 어린이책은 바로 어른들이 ‘먼저 읽’으며 아이한테 읽힐 만한가 살핀다. 어른들은 먼저 한두 번 읽은 뒤, 아이들한테 책을 읽어 준다. 곧, 어느 어린이책이라 하더라도 어른들은 ‘책 한 권을 백 차례쯤은 되읽는다’고 여길 만하다.


  그나저나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모든 어른이 읽는 책이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모든 어른이 느끼고 깨달으며 생각밭을 북돋우도록 이끄는 책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림책을 들고 아이한테 읽히면서 당신 스스로 ‘책을 읽는’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림책을 읽히면서 ‘당신 스스로 미처 못 느끼거나 모르던 새로운 누리’를 깨닫는다.


  여느 어버이라면, 아버지는 회사에서 돈 벌고 어머니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얼거리인데, 여느 아버지들은 회사에서 너무 오래 머무느라 막상 아이들과 ‘아름다운 어린이책을 함께 누리지’ 못하면서 책읽기하고 자꾸 동떨어진다고 느낀다. 나아가, 여느 아버지들은 집에서 아이들과 복닥이면서 ‘아이 삶 읽기’, 곧 ‘아이읽기’와 ‘삶읽기’ 또한 제대로 못 한다고 느낀다.


  책이란 무엇인가. 숲에서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에 잉크를 찍어서 실로 묶거나 본드로 붙여야 비로소 ‘책’일까. 누군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서 담아야 비로소 ‘책’일까. 따로 글을 안 쓰고 그림을 안 그리더라도 말로 조곤조곤 들려줄 때에도 ‘책’이지 않을까. 이른바 ‘입말, 이야기말(구비문학)’ 모두 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종이책은 안 읽는다지만,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이웃들과 어깨동무하며 풀과 나무를 보살피는 이라면 ‘책을 읽는’ 셈이리라.

 

  책에서 읽는 삶


  삶을 읽으며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며 삶을 읽는다. 아이들 눈빛을 바라보며 아이한테 서린 ‘하느님 넋’을 읽는다. 숲에서 나무를 쓰다듬거나 숲바람을 쐬면서 숲속에 고이 흐르는 ‘빛과 그림자’를 읽는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이들은 이제 할머니와 할아버지이다.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는 일찌감치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 일꾼이 되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며 시골을 지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당신 흙일을 당신 어버이한테서 몸으로 보고 듣고 배우고 익혔다. 어느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도 ‘농사짓는 길잡이책’을 읽지 않았다. 예나 이제나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는 ‘책으로 흙일을 배우거나 살피’지 않는다. 언제나 몸으로 흙을 부대끼고 만지고 밟고 쓰다듬으면서 흙일을 배우거나 살핀다.


  ‘모내기 하는 법’을 책으로 읽어야 책읽기일까. 모내기 하는 법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맨발로 무논에 들어가 배울 때에 책읽기일까. 김매기와 피사리는 ‘책으로 읽어’야 알아채거나 깨달을까. 낫질과 호미질과 쟁기질과 삽질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 책으로 엮어’야 비로소 이야기가 될까. 몸으로 보여주고 입으로 말할 때에, 그러니까 낫질을 몸으로 보여줄 때에는 어떤 이야기가 될까. 호미질로 풀을 캐는 삶을 굳이 글로 쓰거나 책으로 빚어야 할까.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바라볼 때면, 이분들 누구나 날마다 ‘책을 수십 권’ 읽는구나 하고 느낀다. 할머니들은 풀책을 읽는다. 할아버지들은 나무책을 읽는다. 할머니들은 해책과 달책을 읽는다. 할아버지들은 새책과 벌레책을 읽는다. 할머니들은 물책을 읽고, 할아버지들은 불책을 읽는다. 가을에 나락을 거두며 ‘나락책’을 읽는다. 수수를 털고 서숙을 까부르며 ‘수수책’과 ‘서숙책’을 읽는다. 서숙 한살이를 따로 책으로 써야 제대로 알거나 살필 수 있지 않다. 흙을 만지며 시골에서 한 해를 살면 몸과 마음으로 깊디깊이 서숙을 알거나 살핀다.


  봄에 찾아오는 제비는 ‘제비 그림책’이나 ‘제비 사진책’을 만들어야 제비 한살이를 깨닫도록 돕지 않는다. 제비가 둥지를 틀 만한 물 맑고 바람 좋으며 햇살 따스한 시골마을에서 흙집을 짓고 예쁘게 살아가면, 날마다 제비를 바라보고 인사하고 노래하고 마주하면서 ‘제비읽기’를 한다. ‘제비책’을 읽는 셈이다.


  요즈음 아이들은 손전화 기계에 푹 빠져 종이책은 잘 안 읽는다고들 한다. 그렇다. 종이책은 잘 안 읽겠지. 그러나, 손전화 기계를 징검다리 삼아 동무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 이야기는 덧없는 쪽글질이나 개구진 말놀이가 아니다. 요즈음 아이들 나름대로 ‘마음껏 뛰놀 흙땅’과 ‘걱정없이 뒹굴 빈터’와 ‘사이좋게 얼크러질 놀이터’가 없는 마당에, 손전화 기계라도 붙잡으면서 마음을 열거나 가꿀밖에 없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이책 읽고, 흙땅에서 흙책 읽으며, 동무들과 사이좋게 뛰놀면서 동무책을 읽어야 아름답게 자랄 수 있다.

 

  책은 어디에 있는가


  책은 사람들 가슴속에 있다. 책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책시렁에 있지 않다. 책은 사람들 가슴속에 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책시렁에는 ‘종이꾸러미’가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새책방이나 헌책방으로 마실을 다니면서 종이꾸러미를 돈 주고 장만한다. 저마다 장만한 종이꾸러미를 펼치면서 ‘삶을 읽으려’ 마음을 기울일 때에 책읽기가 된다. 스스로 장만한 종이꾸러미를 손수 넘겨 삶을 읽으려 할 때에 시나브로 ‘글마다 감도는 뜻과 꿈’을 살핀다.


  그런데, 글마다 감도는 뜻과 꿈을 살피자면, 종이꾸러미를 장만한 사람 스스로 가슴속에 뜻과 꿈이 있어야 한다. 내 가슴속에 사랑이 없다면 연애소설을 읽는다 하더라도 사랑이든 연애이든 알아채지 못한다. 내 가슴속에 꿈이 없으면 어떤 수필책이나 자기계발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앞으로 이루고픈 꿈이 무엇인가를 헤아리지 못한다. 박경리 님이 쓴 《토지》이든 펄벅 님이 쓴 《대지》이든 톨스토이 님이 쓴 《죄와 벌》이든, 아무나 이 작품을 ‘읽지’ 못한다. 종이꾸러미를 장만해서 줄거리를 살피거나 꿰뚫을 수는 있다. 그러나 아무나 책을 ‘읽어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책읽기란 ‘줄거리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읽기란, 책을 쓴 사람들이 살아온 나날마다 스스로 빚은 꿈과 사랑을 읽는 즐거움이다. 《토지》에 담긴 꿈은 못 읽고 줄거리만 욀 수 있대서 ‘《토지》를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대지》에 서린 사랑은 못 읽고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꿰찰 수 있대서 ‘《대지》를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죄와 벌》이라는 작품을 읽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주 쉽다. 우리 스스로 ‘《죄와 벌》을 읽을 만한 눈높이와 눈썰미와 눈길과 눈빛과 눈결을 갈고닦으면서 알차게 기르면’ 된다. 삶을 즐겨야지.


  성경책은 아무나 읽어내지 못한다. 불경책은 아무나 곰삭히지 못한다. 종이꾸러미에 찍힌 글자를 소리내어 말하는 일이야 누구나 하리라. ‘글자읽기’는 일곱 살 어린이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곱 살 어린이가 글자를 또박또박 읽는대서 ‘너 참 책을 잘 읽는구나’ 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글자를 잘 읽을’ 뿐이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한다는 ‘책읽기’는 책읽기라고 말하기 어렵다. 아직 너무 많은 사람들은 ‘글자읽기’에 머문다. ‘줄거리읽기’에서 맴돈다. 책을 읽으면서 삶을 읽어야 즐겁고, 책을 읽으면서 사랑을 읽어야 즐거우며, 책을 읽으면서 꿈을 읽어야 즐겁다. 다른 사람이 쓴 책을 하나 읽으며 내가 가꾸고픈 삶을 읽을 때에 즐겁다. 여러 사람이 온삶을 들여 쓴 책을 하나 읽으며 내가 아끼고픈 사랑을 읽을 때에 즐겁다. 숱한 사람이 기나긴 해를 바쳐 쓴 책을 하나 읽으며 내가 이루고픈 꿈을 읽을 때에 즐겁다.

 

  책을 짓는 삶


  양철북 출판사에서 펴낸 책을 하나씩 헤아려 본다. 2002년 7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하이타니 겐지로), 《아이들》(야누스 코르착), 《로빙화》(중자오정),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기너트), 《권력과 테러》(노암 촘스키), 《자라지 않는 아이》(펄벅), 《소녀의 마음》(하이타니 겐지로), 《꼬마 모모》(마쓰타니 미요코), 《사랑의 매는 없다》(앨리스 밀러), 《두 친구 이야기》(안케 드브리스), 《나무소녀》(벤 마이켈슨), 《산다는 것의 의미》(고사명), 《분홍바늘꽃》(질 페이턴 월시),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눈물나무》(카롤린 필립스), 《별을 헤아리며》(로이스 로리), 《지로 이야기》(시모무라 고진), 《안 뜨려는 배》(팔리 모왓), 《시타델의 소년》(제임스 램지 울만), 《반칙 선생님》(우다가와 유코), 《여우와 토종 씨의 행방불명》(박경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최종규),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이상석), 《청소년 인권 수첩》(크리스티네 슐츠 라이스), 《인간의 벽》(이시카와 다쓰조),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요시노 겐자부로),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진 리들로프), 《크리스티나에게 보내는 편지》(파울루 프레이리), 《덴코짱》(노다 미치코), 《원예반 소년들》(우오즈미 나오코), 《태평육아의 탄생》(김연희), 《첫사랑》(구드룬 파우제방), 《가르친다는 것》(윌리엄 에어스) 같은 책을 내놓았는데, 어느덧 150가지 남짓 된다. 이 가운데에는 무척 널리 사랑받는 책이 있고, 좀처럼 사랑받지 못하는 책이 있다. 사람들이 조금 더 눈여겨보는 책과 제대로 눈여겨보지 못하는 책이 있달 수 있는데, 어느 책이든 ‘한 사람으로서 사랑을 꽃피우는 삶에서 스스로 찾는 아름다운 길’을 들려준다고 느낀다.


  철수와영희 출판사에서 펴낸 책을 곰곰이 되짚어 본다. 2006년 8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우리는 말썽꾼이야》(양승완), 《철들지 않는다는 것》(하종강),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이득재),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박노자·전쟁없는세상·한홍구),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서경식), 《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안미선), 《길은 복잡하지 않다》(이갑용), 《10대와 통하는 불교》(강호진), 《정당한 위반》(박용현) 《동네 숲은 깊다》(강우근),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백남호), 《덤벼라 인생》(고성국·남경태), 《진보와 저항의 세계사》(김삼웅),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손석춘), 《우리 학교 텃밭》(노정임·안경자),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최종규), 《적을 삐라로 묻어라》(이임하) 같은 책을 내놓았는데, 이제 40가지 남짓 된다. 이 가운데에는 사람들이 여러모로 아끼는 책이 있고, 아직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책이 있달 수 있는데, 어느 책이든 ‘한 사람으로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삶을 누리며 꿈을 즐기는 예쁜 길’을 들려주는구나 싶다.


  책을 짓는 삶이란 무엇인가? 한 권이라도 더 많이 펴내는 삶인가,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히는 삶인가. 책을 즐기는 삶이란 무엇인가? 한 권이라도 더 읽으려는 삶인가,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으려는 삶인가. 책을 사랑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책을 많이 읽거나 건사하는 삶인가, 책을 읽으며 삶을 톺아보고 사랑을 나누는 삶인가.

 

  책으로 여는 꿈


  책에는 길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나, 책에서 길을 찾을 수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스스로 삶을 짓는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길을 찾는다. 스스로 삶을 짓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은 책을 수없이 읽어도 ‘줄거리 지식’과 ‘등장인물 정보’만 머리에 담을 뿐, 삶을 짓는 길을 느끼지 못한다.


  길을 찾고 싶으면 길을 찾으면서 책을 읽으면 된다. 스스로 가장 사랑하고 좋아할 만한 삶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길을 걷다가 책 하나 길동무로 삼으면 된다.


  책으로 꿈길을 열 수 있다. 내 하루를 가장 아름다운 무늬와 빛깔과 결로 보듬으면서 곱게 꿈을 꾸면 된다. 하루아침에 이루는 꿈이 아니다. 한결같이 누리면서 이루는 꿈이다. 오늘 하루 이루면 끝나는 꿈이 아니다.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꾸준하게 누리면서 이루는 꿈이다. 이를테면, 밥을 한 끼니만 잘 먹으면 되지 않는다. 밥은 날마다 잘 먹어야 한다. 끼니마다 잘 먹을 밥이요, 끼니마다 스스로 가장 맛나게 차리면서 한솥밥을 나눌 때에 즐거운 삶이다.


  삶은 하루만 잘 누리면 되지 않는다. 날마다 잘 누릴 삶이다. 어린이와 푸름이하고 즐거이 나눌 책을 짓는 책마을 일꾼은 ‘책 하나만 잘 지으’면 되지 않는다. 새롭게 내놓는 책마다 잘 지어서 내놓을 책삶이요, 차근차근 한 권씩 책살림 늘리면서 이 땅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언제나 살가우며 반가운 마음밥이 될 책밥을 지을 노릇이다.


  책으로 꿈길을 연다면 바로 이 대목에 있지 않을까. 한 번 읽고 나서 책꽂이에 얌전하게 꽂고는 오래도록 가슴이 촉촉히 젖도록 이끄는 책이 있으리라. 여러 차례 되풀이 읽느라 책상맡에 늘 두면서 두고두고 가슴이 해맑게 부풀도록 이끄는 책이 있으리라. 올해에 읽고 다섯 해 뒤에 읽으며 열 해 뒤에 읽고, 또 열다섯 해나 스무 해 뒤에 새삼스레 읽으면서, 내 발자국을 튼튼하게 어루만지는 길동무처럼 곁에 있는 책이 있으리라.


  책 한 권 웃으면서 빚는다. 어제도 오늘도 활짝 웃으면서 삶을 사랑으로 누린다. 오늘도 모레도 환하게 웃으면서 책을 사랑으로 빚는다. 웃음 가득한 사랑이 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는 사람은 웃음 어린 꿈을 마음밭에 심을 수 있겠지. (4345.10.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시민사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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