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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 쉼터와 후박나무길 (13.2.22.)
고흥 길타래 4―할매 할배는 자가용 안 몬다

 


  풍양면 송정리 냉정마을에는 팽나무 우람하게 한 그루 있습니다. 여러 백 해 묵은 팽나무까지는 아니지만, 논자락 한복판에 팽나무 한 그루 덩그러니 있어요. 어쩜 이렇게 팽나무 한 그루가 논자락 한복판에 있을까 알쏭달쏭한데, 논둑길 돌아 이 팽나무 앞에 서면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팽나무 앞에 돌로 세운 푯말 하나 있거든요.


  돌푯말을 읽으면, 1946년에 유박준 님이 당신 집 안뜰에서 자라는 일곱 해 된 팽나무를 당신 둘째 아들 유일성하고 지게로 짊어지고는 연못 뚝에 옮겨심었다고 해요. 너른 들판에서 한여름 땡볕 받으며 일하는 흙일꾼들이 쉴 나무그늘 하나 없었다 하는데, 이 팽나무 한 그루 무럭무럭 자라서 그늘을 드리우니, 이 언저리에서 일하던 흙일꾼은 연못 뚝 팽나무 그늘에 앉아서 느긋하게 쉴 수 있었다 합니다. 1990년에 경지정리를 한다며 구불구불 논을 반듯하게 펼 적에 팽나무를 치우면 논을 더 넓힐 수 있다고 말이 많았다 하는데, 이 팽나무 한 그루만큼은 오랜 나날 시골 흙일꾼한테 좋은 그늘 드리우는 쉼터요 벗이 되었기에 베지 말고 건사하자 해서 그대로 두기로 했다 해요. 돌푯말은 이무렵에 세웠다고 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고흥 곳곳에 너른 들판 제법 많습니다. 그러나 너른 들판만 있고 우람한 나무그늘 하나 없는 곳이 퍽 많아요. 갯벌을 메운 논자락에는 아예 나무그늘이 없습니다. 마을마다 정자나무는 으레 있지만, 논 언저리 나무그늘은 드물어요. 밭 언저리 나무그늘도 드물고요. 나무 한 그루 우람하게 서면 줄기 굵어지고 뿌리 뻗으며 논밭 몇 평쯤 줄어든다 할 테지만, 나무 한 그루 튼튼하고 굵게 서면 좋은 그늘이 되고, 꽃과 열매를 베풉니다. 팽나무나 느티나무뿐 아니라 감나무나 능금나무, 또 살구나무나 복숭아나무 한 그루씩 논둑이나 밭둑에 있어 흙일꾼 누구한테나, 또 길손한테까지 쉼터 구실을 하도록 마음을 기울인다면 더없이 좋으리라 생각해요.

 

 

 

 


  풍양면 동적·백석마을이랑 천등마을로 갈리는 세거리에 섭니다. 동적·백석마을 어귀 큰돌이 쓰러졌습니다. 지난해 큰바람 불 적에 쓰러졌을까요. 마을 어귀에 세우는 돌은 워낙 크고 무거우니 사람들 손힘으로는 다시 세우기 힘들 테니, 기계를 써야겠지요. 큰바람 몰아치며 무너진 집이나 울타리나 쓰러진 나무를 모두 되돌리지 못했다 하니, 아직 마을돌 하나 다시 세우지 못했겠지만, 마을에서 세우지 못하면, 군청이나 면사무소 일꾼들이 앞장서서 다시 세워 주면 좋을 텐데 싶어요. 큰돈이나 목돈이 들어야 해 주는 일이 아니라, 따사롭게 마음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보듬으며 아낄 수 있는 마을살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볕 좋은 자리 솔숲 사이 깃든 무덤을 바라봅니다. 뚜껑을 씌우지 않고 커다란 돌을 실어나르는 짐차를 바라봅니다. 정갈하고 아름다운 시골 모습을 보는 한편, 안타깝고 아쉬운 모습을 나란히 마주합니다. 저 짐차 일꾼은, 또 저 짐차에 큰 바위 실은 일꾼은, 또 고흥군청 공무원은, 저마다 어떤 마음이 되어 이곳에서 일을 하며 살림을 꾸릴까요. 서로를 얼마나 애틋하게 여기거나 아끼는 마음 되어 일을 하거나 살림을 일굴까요.


  천등산 끝자락과 맞물리는 조그마한 천등마을 바라봅니다. 넓게 펼쳐진 논자락 빛깔은 아직 노르스름합니다. 삼월 한복판에 접어들면 노르스름한 논자락마다 새해에 새로 깨어난 멧개구리 골골골 울 테고, 유채씨 뿌린 논에서는 푸릇푸릇 유채싹과 유채잎 오르다가 노란 물결 이룰 테며, 논갈이를 하고 나서 물을 대면 개구리알 신나게 까서 새로 태어난 개구리 노랫소리로 온 고을 가득할 테지요.

 

 

 

 


  군내버스는 별학산 따라 구비구비 돌다가 천등마을, 냉정마을, 영호마을 곁을 스칩니다. 조용한 시골자락 조용히 지나갑니다. 봄바람 일으키며 봄버스 달리고, 봄내음 물씬 풍기는 봄흙이 녹습니다.


  냉정마을에는 논자락 한복판에 팽나무 있으면, 영호마을에는 논자락 한켠에 빗돌이 섭니다. 누구를 기리는 빗돌을 이곳에 세웠을까요. 어떤 삶 누리던 사람이 이곳에 빗돌 하나로 남았을까요. 무덤 앞에도 빗돌이 서고, 마을 한켠과 논 한쪽에도 빗돌이 섭니다.


  길가에서 자라는 후박나무 줄기를 빙 둘러 시멘트가 덮습니다. 처음부터 시멘트 바닥이지는 않았으리라 봅니다. 후박나무 심은 흙땅에 시멘트를 부었구나 싶습니다. 길바닥 고르게 편다는 뜻이었을 텐데, 나뭇줄기 촘촘히 시멘트를 부으면, 나무가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을까 근심스럽습니다. 앞으로 나무가 자랄 나이를 헤아려 시멘트를 알맞게 깔든지, 나무 자랄 자리는 빼고 시멘트를 바르든지 해야 할 텐데요. 아니, 나무 자라는 자리에 왜 시멘트를 바르려 했을까요. 나무는 흙땅에서 자라고, 나무 곁은 여러 풀이 스스로 씨앗 내려 자라도록 하면, 이 길섶은 사람이 걷기에도 좋고, 큰비에도 쓸리지 않을 텐데요.


  풍남항 있는 남당마을에 닿습니다. 풍남초등학교 둘레로 양식일 하는 분들 공장에서 돌아가는 기계소리 무척 큽니다. 집집마다 커다란 전압기를 매답니다. 그만큼 전기를 많이 쓴다는 뜻일 텐데, 양식일 하느라 하루 내내 기계가 돌아가며 저렇게 커다란 소리를 내면, 여느 살림집 분들은 시끄러워 제대로 잠이나 들까 궁금해요. 돈벌이도 좋지만, 시끄러운 소리에 삶이 메마를 수 있겠다 싶습니다. 더 크거나 많은 돈을 바라기 앞서, 더 즐겁고 아름다운 삶을 바랄 때에 빛나는 하루가 되리라 싶습니다.

 

 

 


  남당마을 버스 타는 곳 앞에 섭니다. 버스 타는 곳 앞에 소나무 몇 그루 자랍니다. 남당마을 큰돌도 지난 큰바람에 쓰러진 듯합니다. 바람은 힘도 세지요. 큰돌도 쓰러뜨리고, 체육관 지붕도 벗깁니다. 그런데, 이 바람은 나무를 쉬 꺾지 못해요. 큰바람에 꺾인 나무도 더러 있지만, 훨씬 많은 나무들은 큰바람이 불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아요. 그리고, 들풀은 큰바람이 불거나 말거나 뽑히지 않습니다. 꽃송이가 바람에 떨어지기는 하지만, 풀포기는 제아무리 큰바람 몰아쳐도 흙땅에 단단히 버팁니다.


  남당마을에서 군내버스를 탑니다. 도화면 소재지로 갑니다. 중절모에 빨강 노랑 풀빛 깃털 꼽은 할아버지가 내 앞자리에 탑니다. 풍남항 지나가는 군내버스는 강동마을, 여의천마을, 이목동마을 곁을 스칩니다. 이목동마을 옆으로 난 조그마한 길을 따라 죽 올라가면  원도동마을과 전어포마을로 들어서는 가화리 멧길입니다. 가화리 멧길은 바다를 옆으로 끼고 숲 사이를 지나가는 고즈넉하며 예쁜 길이에요. 고즈넉하며 예쁜 숲길 곁에 보금자리 틀어 살아가는 분들은, 숲과 길과 들과 바다처럼 예쁘며 고즈넉한 삶 꾸리시겠지요.

 

 

 


  지등마을과 서오치마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는 도화면 소재지에 닿습니다. 버스에서 내립니다. 고흥읍에서 풍남항 거쳐 도화면으로 온 군내버스는 사동마을과 풍남항 거쳐 다시 읍내로 가겠지요. 마을 할머니 한 분 버스기사한테 길을 여쭌 뒤 버스에 오릅니다. 나는 면소재지 가게에서 먹을거리 몇 가지 장만하고는 조금 기다려, 신호리 동백마을로 들어가는 군내버스를 탑니다. 풍남항에서 도화면까지 1100원, 또 도화면에서 동백마을까지 1100원. 느긋하고 한갓지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마을 저 고을 천천히 거치는 군내버스는 골골샅샅 할머니 할아버지 태우며 온갖 이야기를 실어나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군내버스에서 두런두런 이야기꽃 피웁니다. 마을회관에서도 당신 보금자리에서도 도란도란 이야기숲 돌보실 텐데, 버스에서 이웃을 만나고 면내나 읍내에서 동무를 만납니다. 자가용을 모는 분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더 빨리 한달음에 갈 수 있을 테지만, 자가용에서는 이웃도 동무도 만나지 못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지도 못합니다. 마을과 마을 사이 시골길을 천천히 거닐면 들판과 멧숲을 느끼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고, 군내버스 타고 구불구불 여러 마을 지나노라면, 먼 데 사는 이웃과 동무를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즐겁습니다. 고흥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도 군내버스로 고흥 곳곳 돌아다니다가 어느 한 곳에 내려 한두 시간쯤 거닐며 이웃마을 느끼다가,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들이를 해 보면, 고흥 시골마을을 조금 더 깊이 마주하며 헤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6.3.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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