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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17] 나무읽기
― 마을 이루는 바탕이란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늘 한 가지 아쉽다고 여겼습니다. 내 어버이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될 무렵 여러모로 돈을 그러모아 아파트를 마련해서 ‘우리 집’이라고 삼으셨지만, 나는 이 아파트가 참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왜 아파트가 ‘우리 집’이어야 할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 집’이라 한다면, 마당이 있고 꽃밭이 있으며 나무 자랄 흙땅 있어야 한다고 여겼어요. 누가 가르치거나 알려주지 않았지만, ‘우리 집’이라 하면 우리 식구 사랑하면서 아낄 나무와 풀과 꽃이 자랄 흙땅 있어야 비로소 ‘우리 집’이 된다고 느꼈어요.


  국민학교 다니며 동무네 집 놀러갈 적에 언제나 새삼스레 깨달았어요. 아파트 사는 동무네 놀러갈 적에는 따로 느끼지 못했지만, 아파트 아닌 단독주택이라 하는 여느 골목집에서 살아가는 동무네 놀러가고 보면, 아무리 손바닥만큼 작은 마당이라 하더라도, 이 집에서 살아가는 동무는 ‘내 나무’가 있어요.


  그래, 내 나무 한 그루 있구나, 참 좋네, 하고 생각하며 으레 나무줄기 쓰다듬고 우듬지 올려다보곤 했어요. 작은 골목집 작은 골목나무 한 그루인데, 이 나무 한 그루 있기에 이 조그마한 살림집이 환하게 빛나면서 푸르게 따스하구나 하고 느껴요.


  도시 떠나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살아갈 새 터 헤아리면서 나는 다른 무엇보다 ‘나무 심어 돌보기’를 생각했어요. 세 식구 깃든 충청북도 멧골집에서는 살구나무 두 그루 심어 앞으로 이 살구나무 무럭무럭 자라 우리 집이 ‘살구나무 집’ 되기를 꿈꾸었어요. 네 식구 되고 나서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로 옮겨 지내는 오늘날은 우리 집 둘레에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대추나무, 이렇게 세 가지를 두 그루씩 심으며 꿈을 꿉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 스무 살 즈음 될 무렵에는 제법 우람하게 자랄 이 나무들을 바탕으로 우리 조그마한 이 집이 ‘나무 집’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해마다 이 나무 저 나무 몇 그루씩 심어 온갖 나무 골고루 어여쁘게 어우러지는 ‘집숲’ 되기를 꿈꿉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마을이라 한다면, 사람들 모여서 살아가기에 마을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집집마다 ‘집나무’를 심어서 돌보고, 마을 테두리에서는 마을사람 모두 보듬을 만한 넓은 멧자락과 숲이 있고 냇물이 흐르며 들판 있을 때에 비로소 마을이라 일컬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모두 똑같아요. 멧자락도 숲도 냇물도 들판도 없이, 시멘트 층집, 그러니까 아파트만 우줄우줄 때려박는 곳을 ‘마을’이나 ‘동네’나 ‘고을’이라고는 가리킬 수 없다고 생각해요. 수천 수만 사람 바글바글거리도록 때려짓는 아파트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하도록 가두는 감옥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게다가, 이런 시멘트감옥 같은 데를 몇 억 원이니 하는 비싼값에 사고팔도록 하니, 더더욱 사람들을 바보로 짓누르는 셈 아닌가 하고 느껴요.


  나무 한 그루 심을 마당 한 뼘 누리지 못하는데 집값이 몇 억이라니요. 들나물 한 포기 뜯어서 먹을 기쁨 즐기지 못하는데 집값이 몇 억이라니요. 봄꽃 여름꽃 가을꽃 겨울꽃 철따라 다 다른 빛깔 맞이하지 못하는데 집값이 몇 억이라니요.


  나무가 자라 집을 지어요. 나무가 자라 바람내음 싱그러워요. 나무가 자라 새가 찾아들고 어여쁜 벌레가 깃들어요. 나무가 자라 열매를 베풀고 꽃을 나누어 줘요. 나무가 자라 그늘이 드리우고 햇살조각 눈부셔요. 나무가 자라 흙이 살아나고, 나무가 자라 아이들이 방긋방긋 웃으며 튼튼하게 함께 자라요.


  우리 집 나무를 떠올리다가 문득 하나 생각합니다. 역사를 밝히는 분들은 한겨레 발자취를 으레 단군 때부터 짚어 반 만 해를 말하는데요, 반 만 해 앞서 이 나라 삶터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천오백 해 앞서는, 오천 해 앞서는, 오천오백 해 앞서는, 또 육천 해나 칠천 해 앞서는, 구천 해나 일만 해 앞서는, 이 나라 삶터에 어떤 이야기와 숨결과 빛줄기 있었을까요. 단군이라는 님이 있기 앞서, 이 나라 시골마을 사람들은 어떤 삶 누렸을까요. 팔천 해 앞서 이 땅에서 살던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어떤 집을 지으며 어떤 옷을 나누며 살았을까요.


  씨족 우두머리나 제사 지내는 우두머리 아닌 사람들은 삶에서 무엇을 바라보거나 돌보면서 하루를 누렸을까요. 전쟁무기 없던 지난날 사람들은 서로 어떤 하루 맞이하면서 어떤 삶 지었을까요. 갖은 문명과 문화를 누린다는 오늘날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하루 맞아들이며 어떤 삶 짓는가요. 공무원이나 회사원으로서 다달이 어느 만큼 돈을 벌기는 하되, 정작 스스로 하루하루 새 삶을 짓는 길하고는 그만 동떨어지지 않나요. 어른인 한 사람으로서 누리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아이들이 누리도록 하는 삶은 얼마나 빛나는가요. 4346.4.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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