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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과 (4346.1.2.)
― 전남 순천 〈형설서점〉
061-741-0228 전남 순천시 저전동 230-2번지

 


  ㄱ. 책들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헌책방 〈형설서점〉으로 찾아가면, 전라남도 곳곳 이야기 깃든 책을 만납니다. 지난날 지자체에서 내놓은 간행물도 만나고, 전라남도 곳곳에 있는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에서 묵은 책이라면서 내놓은 책도 만납니다.


  인천에서 살아가며 인천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에 갈 적에는 인천 지자체에서 내놓은 간행물이라든지, 인천에서 크고작게 꾸리던 모임에서 엮은 책자를 만나곤 했습니다. 서울에서 지내며 서울 곳곳에 있는 헌책방에 갈 적에는 서울 지자체에서 내놓은 간행물을 비롯해서, 서울 곳곳에서 크고작게 잇던 모임에서 엮은 책자를 만났어요.


  부산에서 태어나 전남 순천으로 시집을 가며 ‘돼지 키우기’를 하는 김수자 님이 시골살이를 적바림한 산문책 《김수자-돼지일가》(범우사,1990)를 봅니다. 순천에서 시골살이를 하며 쓴 글을 엮은 책이라, 순천에 있는 헌책방에서 이 책을 만난 셈일까요.


.. 며칠 전에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시할머니께서 생전에 쓰셨다는 작은 밥상 하나를 4000원 주고 고쳐 왔다. 여느 때 같으면 땔감 정도로 내다버렸을 것이지만 할머니께서 아껴 쓰시던 밥상이라 그 손때와 체취가 묻어 있는 듯하고, 할머니를 가까이서 뵙는 것 같아 버릴 수가 없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할머니지만 당신의 인간적인 삶과 고뇌, 죽음 등등이 나의 것인 양 가깝게 느껴져 이 밥상을 보면서 한 인간의 자취를, 당신의 생전의 모든 것을 존경하고 싶어진 것이다 ..  (19쪽)


  부산 헌책방에서는 부산 책을 구경합니다. 제주 헌책방에서는 제주 책을 구경합니다. 삶터에 따라 사람들 삶이 다르고,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은 다 다른 이야기 되어 다 다른 책으로 태어납니다.


  ‘현암신서’로 나오던 《김운학-신라불교문학연구》(현암사,1976)를 보고, 《이원섭 역주-신역 列子·管子》(현암사,1978)를 봅니다. 이제 헌책방에서만 만나는 ‘현암신서’입니다. 요즈음에도 여러 출판사에서 저마다 다른 빛깔과 무늬로 인문책 내놓는데, 지난날에는 이렇게 ‘신서’ 같은 이름으로 동서양 아우르고 옛날과 오늘날 어우르는 인문책 퍽 많이 나왔어요.


.. 따라서 형벌을 아무리 자주 준대도 백성이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 영은 시행되지 않을 것이며, 많은 사람을 죽인대도 민심이 복종치 않으면, 마침내는 군주의 자리가 위태롭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군주는, 앞에 말한 백성들의 네 가지 욕구를 충족시켜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먼 고장으로부터도 백성들은 찾아올 것이다. 이와는 거꾸로, 고생·가난·재앙·멸망을 백성들에게 강요한다면, 측근자로부터도 배반당할 것이다. 따라서 주는 것이 취하는 것이 되는 줄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치의 비결임이 분명하다 ..  (280쪽)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할 때에 아름다운 정치와 행정이 되듯, 사람들이 찾아서 읽도록 할 때에 아름다운 책이 되겠지요. 그런데, 사람들 스스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때에 아름다운 정치나 책이 태어납니다. 숲과 들과 멧골과 바다가 참으로 아름답다 하더라도, 사람들 스스로 아름다움 느끼는 가슴이 없다면, 숲에도 들에도 멧골에도 바다에도 깃들지 못해요. 곧, 아름다운 책이 있기에 사람들이 아름다운 책 알아보지는 않아요. 아름다움 생각하는 마음과 아름다움 꿈꾸는 사랑이 있어야, 사람들 스스로 아름다운 책 알아보며 아름답게 읽습니다.


  현암신서로 나온 《김정희/최완수 옮김-추사집》(현암사,1976)을 고릅니다. 《문정희-젊은 날의 고뇌와 사랑》(관동출판,1976)을 살핍니다. 서른 해쯤 묵은 이 책들은 서른 해쯤 앞서는 반딱반딱거리던 새책이었을 테지요. 오늘 이곳에서 반딱반딱거리는 새책도 앞으로 서른 해쯤 지나면 묵은 헌책이 되겠지요.


  갓 태어나서 곧바로 읽힐 때에도 새책이요, 태어난 지 오래되었으나 나중에라도 즐겁게 읽히면 새책이 되리라 느낍니다. 오늘 태어난 책을 오늘 읽어도 아름다운 책이요, 어제 태어난 책을 모레 읽어도 아름다운 책입니다.


  《신정일-낙동강역사문화탐사》(생각의나무,2003)라는 책을 봅니다. 출판사 사라지면서, 저절로 책방에서 사라진 책입니다.


.. 구미공단을 끼고 돌아가는 낙동강의 모래사장은 새까맣게 물들어 있다. 어디선가 흘러온 폐유 때문일 것이다. 위천과 구미공단 그리고 대구 근처에서 낙동강에 접어드는 금호강을 받아들이며 낙동강은 완전히 구제 불능의 상태에 이른다는 말을 강을 바라보며 실감할 수 있을 듯싶다 ..  (272쪽)


  2003년에 새까맣게 더러워진 낙동강은 2013년에는 어떤 모습일까요. 정치지도자가 밀어붙인 4대강사업은 낙동강이 어떤 모습 되도록 했을까요. 공장과 공단은 그대로 둔 채, 냇둑을 시멘트로 쌓고 냇바닥을 시멘트로 덮으면 깨끗한 냇물 될까요.


  곰곰이 생각합니다. 냇물로 흘러드는 작은 물줄기가 모두 깨끗할 때에 냇물이 깨끗합니다. 냇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야 냇물이 깨끗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도, 삶을 일구는 사람도, 다 함께 깨끗한 마음 될 때에, 한 나라가 깨끗하고, 책마을이 깨끗하며, 사회도 정치도 문화도 모두 깨끗할 수 있습니다.


  ㄴ. 고흥 졸업사진책


  오늘은 고흥에 있는 학교에서 마련한 졸업사진책 만납니다. 2011년에 전남 고흥으로 살림을 옮기면서 전남 순천에 있는 헌책방과 처음으로 사귀었는데, 순천 〈형설서점〉을 이태 동안 마실하면서 오늘 드디어 ‘고흥 학교 졸업사진책’을 만납니다. 기쁘게 한 권 두 권 살핍니다.


  《녹동국민학교 43회》(1985) 졸업사진책은 흑백사진입니다. 저는 국민학교를 1980년대에 인천에서 마쳤는데, 제 졸업사진책도 흑백사진입니다. 1980년대까지는 빛깔사진 쓰기 어려웠겠지요.


  《고흥동국민학교 81회》(1993) 졸업사진책은 빛깔사진입니다. 봄소풍으로 금탑사를 가고, 가을소풍으로 탑성꼴을 갔군요. 1993년 이무렵, 봄소풍을 어떻게 갔을까요. 고흥 읍내에서 포두면 금탑사까지 걸어서 갔을까요. 군내버스를 타고 포두면 소재지까지 간 뒤, 면소재지부터 걸어서 갔을까요.


  제 어릴 적 돌아보면, 인천 신흥동3가에 있던 작은 국민학교부터, 인천 송도유원지까지 으레 걸어서 소풍을 갔어요. 아침 일찍 학교 운동장에 모여 학년과 반에 따라 줄을 맞추어 두 시간 즈음 걸어서 갔어요.


  《봉래종합고등학교 6회》(1988) 졸업사진책을 보면, 비탈진 언덕받이에 새로 지은 자취가 드러납니다. 기념사진을 마을 곳곳 다니며 찍은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그래요. 시골마을 시골학교는 시골아이 다니는 곳이에요. 이렇게 졸업사진책 기념사진에 대여섯씩 예닐곱씩 마을 곳곳 찾아가면서 ‘이곳이 우리가 살던 마을이야’ 하고 남기는 사진 찍으면 한결 빛납니다. 바닷가에서도 찍고, 포구에서도 찍을 수 있어요. 학생들은 동무네 집 앞에서 찍을 수 있고, 교사들은 관사 앞에서 찍을 수 있어요.


  《고흥여자중학교 29회》(1997) 졸업사진책을 보니, ‘학교 전경’으로 나오는 사진은 맨 처음 지은 건물 모습 같습니다. 기념사진 뒤로 새로 짓는 건물 모습 살짝 보입니다. 2010년대 고흥여중 건물은 1997년에 새로 지은 건물일까요. 옛 건물은 헐고 없을까요.


  3.5인치 디스켙 넣던 컴퓨터 보이는 교무실입니다. 요즈음 졸업사진책에서 교무실 모습 찍으면 남다르다 싶은 이야기 나오겠지요. 소풍 사진을 보니 바닷가입니다. 영남면 남열 바닷가일는지, 도화면 발포 바닷가일는지 궁금합니다. 고흥 아이들이니 이렇게 고흥 바닷가 깨끗하고 눈부신 바닷가로 나들이를 와서 한갓지며 신나게 놀 수 있으리라 느껴요. 바닷가를 홀로 차지하며 마음껏 놀 수 있어요.


  ㄷ. 책에서 읽는 이야기


  《혼다 야쓰하루/강무홍·박정선 옮김-김희로, 나의 전쟁》(춘추원,1991)이라는 책을 봅니다. 머리말을 읽습니다. 이와 같은 책을 한국사람 아닌 일본사람이 썼고, 일본에서 먼저 나온 책을 한국말로 옮겼군요.


.. 1968년 2월 20일 밤, 전에 없는 폭설을 맞은 스마다 계곡 산중의 한 여관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다. 범인은 40대 초로에 접어든 한 조선인 사내. ‘조센징 바가야로’ 발언을 한 시미즈 서 고이즈미 형사로 하여금 NHK TV 방송을 통해 사죄하게 하라는 요구를 내건 이 인질극은 전 일본 사회를 향해 커다란 파문을 던졌다. 소위 ‘김희로 사건’이 바로 그것이었다. 40여 년, 낯설기만 한 이국땅에서 온갖 수모와 차별과 억압의 세월을 견뎌 온 이 조선인은 마침내 가슴을 저미던 회한의 세월을 뿌리치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선언하며 홀홀단신, 전 일본 국가를 상대로 ‘단독전쟁’에 나선 것이다. 일제 치하 36년, 굴욕의 세월을 보냈던 재일 조선인들에게 일본 항복의 대가로서 주어진 것은 그들의 범죄에 대한 반성과 참회가 아니라, 36년을 숨소리조차 죽이며 견뎌야 했던 ‘조센징’들에게 가해진 또 다른 학대와 굴욕이었다 ..  (옮긴이 말)


  일본 사회가 재일조선인 억누르는 얼거리는 오늘날이라고 그닥 나아지지 않습니다. 재일조선인은 아직도 ‘지문을 찍어야’ 합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도 아직 우리들은 지문을 찍어야 해요. 신분증에 지문 찍는 한국사람은 일본에서 지내는 재일조선인이 ‘지문 찍는 푸대접’을 받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잘 느끼지 못합니다. 이뿐 아니라, 어떤 푸대접이 있는지, 이들 푸대접이 마음을 얼마나 망가뜨리면서 뒤흔드는지, 잘 느끼지 않습니다.


  해방을 맞이하고 민주주의 찾는다 하는 한국 사회는 얼마나 ‘신분 해방’을 이루고 ‘참된 민주’를 누린다 할까요.


  2011년 3월에 새롭게 한국말로 나온 《石川達三/육순복 옮김-人間의 壁》(보성사,1962) 중편과 후편을 봅니다. 일본 사회 교육 문제를 다룬 《인간의 벽》은 1950∼60년대 일본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모습을 한국 사회에 비추면, 한국 사회는 거의 조금도 나아지지 못하거나 거듭나지 못했구나 싶어요. 교육소설 《인간의 벽》에서 짚거나 다루는 안타깝거나 슬픈 모습 가운데 이런 대목 저런 대목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고스란히 이어지거나 되풀이돼요.


  묵은 책에서 묵은 이야기 아닌, 오늘날에도 똑같은 이야기 읽습니다. 묵은 책 읽으며, 지난날부터 오늘날까지 슬프게 이어지는 아픈 이야기 읽습니다.


  《김운학-한국의 차문화》(현암사,1981)를 들여다보고, 《유진 매카디/황의방 옮김-미국 민주주의의 딜레머》(현암사,1980)를 들여다봅니다. 《도서지》(내무부,1973)라 하는 아주 두꺼운 정부간행물 한 권 봅니다. 전국 섬을 두루 살펴 자료를 그러모은 정부 간행물입니다.


  전라남도 대목을 넘깁니다. 전라남도에서도 고흥군 대목을 넘깁니다. 고흥에 있는 여러 섬 가운데 ‘첨도’를 한 번 봅니다.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오취리에 있는 섬이라 하는데, 모두 열한 집에 쉰여덟 사람이 산다 나오고, 석 집은 지붕개량을 했고 여덟 집은 풀지붕을 이었다고 나옵니다. 배는 날마다 한 차례 다니고, 마을우물은 두 군데 있으며, 국민학교 한 곳 있는데 학생은 모두 열셋이라 합니다. 이밖에 트랙타, 경운기, 동력분무기, 발동기, 양수기 같은 통계에다가, 신문 구독자와 텔레비전과 라디오 있는 숫자까지 살핍니다. 이무렵 첨도에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하나도 없고 라디오만 여섯 대 있다고 나옵니다. 전기 시설은 아직 없다고 나와요.


  참 구석구석 샅샅이 통계를 내고 조사를 벌였구나 싶습니다. 이런 통계 모으고 저런 조사를 한다며 시골사람 되게 들볶았겠다 싶습니다. 우리는 으레 북녘 사회만 꽉 막힌 사회라고 일컫지만, 바로 우리들 남녘 사회도 꽁꽁 막히거나 닫히거나 갇힌 채 ‘누군가 뒤에서 몰래 지켜보는’ 무시무시한 ‘감시 사회’였다고 느껴요.


  어느 책이든 삶이라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고운 삶이든 아픈 삶이든, 삶을 담아서 보여줍니다. 어느 책이든 삶이라는 대목을 건드립니다. 빛나는 삶이든 어두운 삶이든, 삶을 다루고 건드립니다.


  처세와 경영에 쓴다는 책도 삶을 보여줍니다. 깊고 너르며 아름다운 삶은 아니지만, 그때그때 돈벌이와 이름날리기에 휘둘리는 삶을 보여줍니다.


  인문책은 어떤 삶을 보여줄까요. 어린이책은 어떤 삶을 보여주나요. 어른들은 인문책을 읽으며 어떤 삶을 살피고, 어떤 삶을 느끼며, 어떤 삶을 일구려고 할까요. 아이들은 어린이책을 읽으며 어떤 삶을 배우고, 어떤 삶을 생각하며, 어떤 삶을 사랑하려고 할까요.


  책을 짓는 어른들은 책에 어떤 삶 담을 때에 아름다울까요. 책을 지어 사고파는 어른들은 책으로 어떤 삶 나눌 때에 즐거울까요.


  책방마실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갑니다. 순천에서 고흥으로 시외버스를 달립니다. 고흥 읍내에서 도화면 동백마을로 군내버스를 달립니다. 고흥군 도화면 시골마을에서 순천 시내 헌책방을 다녀오자면 세 시간 찻길에 이만 원 가까운 찻삯 듭니다. 시간도 품도 많이 들지만, 내 둘레 아름다운 이웃 헤아리는 책읽기를 누립니다. 시간과 품을 많이 들여, 내 삶을 되짚고 내 이웃들 삶을 헤아립니다. 책으로 삶을 읽으면서, 내 삶을 빛내는 길을 차근차근 생각합니다. 4346.5.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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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샨티샨티

    순천에 형설서점이라는 헌책방이 있군요. 송광사 갈 때면 순천에 들렀는데 지금은 그곳도 걸음하지 않으니 순천이 점점 멀어려가고 있는데 다시 한번 마음 내어 그곳을 찾아 보렵니다. 오는 길에는 형설 서점에도 놀러 가고요. 애잔한 추억이 샘물처럼 솟아나게 하는 앨범 속 풍경입니다.

    2013.05.21 08:59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숲노래

      저전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어요. 전화번호 잘 챙겨서 전화해 보시면, 터미널에서 어떻게 찾아가는지 알려주신답니다 ^^

      2013.05.21 10:06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