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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빚기
― 언제 찍으면 좋을까

 


  필름사진기를 쓸 적에는 흑백필름을 참 많이 썼다. 이제 필름사진기를 더는 못 쓰면서 흑백필름 또한 안 쓰고, 흑백필름을 안 쓰다 보니, 디지털사진기를 쓸 적에도 흑백사진은 잘 안 찍어 버릇한다. 어쩌면, 굳이 흑백사진으로 찍어야 할 까닭을 찾지 못한다고 할 만하다.


  한여름 저녁 일곱 시 반에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태워 마실을 나온다. 면소재지 들러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여덟 시 십 분쯤 되고, 우리 시골마을에 어스름 찬찬히 드리운다. 해질녘이라 사진기를 집에 놓고 나오려다가 ‘그래도 사진 한 장 찍을는지 모른다’ 생각하며 목에 걸었다. 논둑길 사이로 천천히 자전거를 달리는데, 멧등성이 너머로 해가 넘어간 시골마을 모습이 퍽 애틋하면서 아련하다고 느낀다. 자전거를 세우고는 사진기를 손에 쥔다. 감도 100에 셔터값 1/5초로 찍는다. 안 흔들린다. 그동안 집에서 아이들 사진 찍으며 익숙해졌으니 이만 한 셔터값은 괜찮다. 다시 한 장 더 찍고, 여러 장 더 찍어 본다. 뒤를 돌아 아이들 모습도 찍는다. 그런데 아이들 모습은 감도 100으로는 너무 어둡다. 감도를 400으로 올려서 셔터값은 1/5초로 찍는다. 졸린 아이들 잠을 재울 뜻도 있어 느즈막히 나온 자전거마실이기에 큰아이는 “사진 그만 찍고 얼른 집에 가요.” 하고 말한다. 그래, 이제 그만 찍고 집에 가자.


  집에 닿아 대문을 활짝 열고 자전거를 들이려다가, 아직 해가 꼴깍 안 넘어갔구나 싶어 다시 사진 몇 장 찍어 본다. 이제 많이 어둡기에 감도를 800으로 올리고 셔터값은 그대로 1/5초로 찍는다. 아이들 태우고 사십 분 즈음 자전거를 탔더니 힘이 좀 빠졌을까. 사진이 흔들린다. 그래도 나는 좋다고 생각하며 이 사진을 기쁘게 건사한다. 한낮에 마실을 하면서 맑고 밝은 시골마을 짙푸른 빛깔을 무지개빛 사진으로 담아도 고우면서 좋은 한편, 이렇게 땅거미 내려앉는 시골마을 고즈넉한 모습을 디지털사진기로도 흑백으로 담으니 그윽한 맛이 나는구나 싶다.


  곰곰이 생각한다. 사진은 언제 찍으면 좋을까? 그래, 찍고 싶을 때에 찍으면 좋다. 낮이든 밤이든 아침이든 저녁이든 스스로 찍고 싶을 때에 찍으면 좋다. 이 사진기로든 저 사진기로든 스스로 찍고 싶은 마음이 샘솟을 때에 기쁘게 사진기를 손에 쥐고 찍으면 좋다.


  어떤 모습을 찍든 다 좋다. 어디에서 찍더라도 모두 좋다. 어떤 이야기를 담으려 하든 다 좋다. 스스로 찍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으면, 누구라도 참으로 아름다운 삶을 참으로 즐겁게 누리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사진 하나 빚을 수 있으리라 느낀다. 4346.7.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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