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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은 예스24에는 없네 ..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62

 


서울 아닌 시골서 살아가는 독일사람
― 나는 영동사람이다
 유디트 크빈테른 씀
 생각하는고양이 펴냄,2012.9.1./12500원

 


  인천에서 태어나 살아가던 나는 작은아버지 댁에 가느라 서울에 식구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서곤 했습니다. 국민학생이던 1980년대 첫무렵, 온식구 함께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가는데, 길이 참 멀고도 멀었습니다. 요즈음은 인천과 서울 사이에 엄청나게 개발을 많이 해서 아파트가 어마어마하게 섰지만, 예전에는 논도 밭도 퍽 넓게 있었어요. 예전 전철역 둘레는 휑뎅그렁하기도 했고, 높은 건물은 거의 안 보였습니다. 전철을 타고 창문을 열어 바깥을 바라보면 꽤 멀리까지 탁 트여 시원했습니다.


  전철이 오류동을 지나고부터 차츰 높은 건물이 늘어납니다. 이제는 창문으로 바깥을 구경하는 재미가 없습니다. 온갖 건물이 눈길을 가로막습니다. 어쩌다 바깥을 조금 멀리 바라볼 수 있어도 끝없이 이어지는 시멘트 건물은 하나도 볼 만하지 않습니다.


  지하철로 갈아탄다며 신도림역에서 내리면,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을까 봐 손을 꽉 붙잡습니다. 아니, 어머니 손에 꽉 붙잡힙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잃지 않으려고 내 손 단단히 움켜쥐고는 사람물결을 헤칩니다.


  지하철로 한참 달려 어느 역에선가 내려 택시를 탑니다. 택시를 타고 달리는데 택시는 얼마 못 가 서고 또 섭니다. 택시미터기를 바라봅니다. ‘서울택시는 인천택시보다 훨씬 비싸네.’ 하고 느낍니다. 게다가 길에 자동차 너무 많고, 신호등도 자꾸 나옵니다. 걸어가느니만 못하다고 느낍니다. 오도 가도 못하는 택시에서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우리 걸어가요. 답답해요.” 하는 말을 자꾸자꾸 합니다.


  되게 비싼 찻삯을 치러 택시에서 내리니, 목아지 아프도록 올려다보아야 하는 높다란 아파트마을입니다.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고, 동 숫자를 읽기도 힘듭니다.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저희 집을 찾아내어 돌아다닐까 궁금합니다. 커다란 아파트마을 커다란 주차장에는 자동차가 빼곡합니다. 찻길에도 자동차가 넘치는데 주차장에도 자동차가 또 이렇게 많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옛날에 내게 한국은 그저 ‘서울’뿐이었다. 그리고 ‘서울’은 내가 매일 빠져서 헤엄쳐야 하는 바다였다. 사람, 차, 건물의 물결. 서울에서는 모든 것이 계속 그리고 너무 빨리 바뀌었다. 발전 속도는 참 무서웠다. 건물들이 끊임없이 부서지고 새로 지어졌다. 동네의 모습은 매년 달라졌다 … 서울사람들은 현대의 유목민같이 계속 또 다른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 한독 부부를 만나는 것이 처음이었으므로 난 관심이 많았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한국을 이미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독일인 아저씨에게 한국에서도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저씨가 한국에서 사는 것은 상상할 수 있지만 서울에서는 못 산다고 대답했다 … 서울에서 처음으로 혼자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갔을 때 나는 순간 겁을 먹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내가 중요하지 않고 불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졌다 ..  (14∼15, 62, 67쪽)


  2000년대로 접어든 어느 날,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아가며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어느 분 댁을 출판사 사장님과 찾아가는 길입니다. 서울 지하철로 여의도에서 내려 아파트마을 찾아갑니다. 낮인데 주차장은 가득합니다. 출판사 사장님이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있는 자동차는 ‘사모님(아줌마)’ 것이라며, ‘사장님(아저씨)’ 것은 아침에 다 나간다고 합니다. 한 집에 으레 자가용이 두 대나 석 대가 있는데, 웬만한 집들은 아저씨와 아줌마 것 두 대 있고, 대학생 아이가 있으면 석 대가 된다고 덧붙입니다.


  출판사 사장님 말을 들으며 생각합니다. 돈이 많이 있다면 자가용을 두 대나 석 대나 넉 대를 굴릴 수 있겠지요. 그런데 아파트마을 주차장에 ‘한 집 자가용 두 대나 석 대’ 있어도 다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어떤 일을 하기에 사람 머릿수대로 자가용을 굴려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서 살며 책 만드는 일을 하는 동안 만나는 분들 가운데에도 ‘자가용 두 대’ 굴리는 분이 퍽 많습니다. 아저씨가 당신 자가용을 굴려서 시내로 나와 술을 마시면, 밤에 아줌마가 이녁 자가용을 굴려서 아저씨를 집으로 데려가는 모습을 봅니다. 어느 날 몹시 궁금해서 술자리에서 넌지시 여쭙니다. 아저씨들이 술을 마실 때에 아줌마들이 자가용 몰고 나와서 집으로 데려가는데, 거꾸로 아줌마들이 술을 마시면 아저씨들이 자가용 몰고 나와서 집으로 데려가기도 하느냐고. 이 물음에 뽀죡하다 싶은 대답은 한 번도 못 들었습니다.


  또 어느 날에는 아줌마한테 슬쩍 여쭙니다. 한 집에 자가용 두 대나 석 대 있으면 세금도 많이 내야 할 텐데, 나가는 돈이 많겠다고. 아줌마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간 아이들 집으로 데려오려면 ‘아줌마 자가용’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요즘 사회가 워낙 뒤숭숭해서 유치원이나 학교로 자가용을 몰고 가서 아이들 태워야 마음을 놓는다고 말씀합니다. 아이들 생각하면 세금은 아무것 아니라고들 합니다.


.. 어머니는 “그래, 안 가면 후회할 수 있으니까 가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야. 만약에 한국 생활이 싫어지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잖아.”라고 말하셨다. 어머니는 내게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을 하라고 하신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 나는 아주 신기한 서울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카메라로 열심히 기록하고, 이런 사소함을 독일에 있는 가족에게 보냈다 … 큰 도시에 살면 TV를 통해서만 자연을 본다. 나는 자연 없이 사는 것도 큰 스트레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을 떠나면 내 마음과 몸이 평정을 잃는 것 같다. 영동지역으로 이사 오면서 나는 갑자기 계절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계절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여름에는 항상 에어컨을 켜 놓고 살고, 겨울에는 난방이 잘 된 집에 하루 종일 머문다. 서울에서 나는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 갔을 때만 날씨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시골에 살면 날씨를 온몸으로 느낀다. 서울에서는 계절 차이가 온도 차이일 뿐이지만, 시골에서는 공기, 식물, 냄새, 소리, 기분, 모든 것이 다 계절에 따라 바뀐다 … 날씨가 따뜻해지면 하루 종일 바깥에서 보낸다 … 장마철이 되면 우리는 구름 속에 산다 ..  (35, 65, 143, 157, 158쪽)

 

 


  아침부터 저녁까지 출판사에서 일한 뒤, 하루 일을 마치면 으레 책방마실을 합니다. 서울에는 좋은 책방이 동네마다 많아, 하루 일 마칠 즈음이면 어느 동네 어느 책방으로 마실을 갈까 하고 어림합니다. 서울에서 혼자 살아갈 적에는 날마다 두어 군데 책방을 다녔습니다. 책방 한 곳 들를 적마다 책을 열 권쯤 고르고, 책방 세 곳쯤 들르면 가방에 담고 손에 든 책이 쉰 권쯤 됩니다. 예순 권이나 일흔 권쯤 장만한 날에도 그저 책을 끈으로 묶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집까지 나릅니다. 책방에서 집까지 걸어서 한 시간 즈음 된다면 버스도 지하철도 안 타고 걷습니다. 그냥 책 들고 걸어가는 일이 좋았습니다.


  큰길은 시끄러우니 골목길로 걷습니다. 서울에서는 골목길이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워낙 많아서 시끄럽지만, 큰길을 생각하면 아주 호젓하다 할 만합니다. 큰길에서 벗어난 골목길을 걷다 보면, 동네마다 오래된 가게를 만날 수 있고, 오랫동안 뿌리내려 살아온 사람들 자취를 읽을 수 있습니다. 책방마실을 하면서 수많은 책을 만나는 일도 기쁘고, 집까지 책꾸러미 낑낑대며 나르는 동안 만나는 조그마한 집들 조그마한 동네 조그마한 사람들 모습을 마주하는 일도 기뻤습니다.


  내 저녁마실(책방마실)을 아는 출판사 사장님이 묻습니다. 얘야, 너 작은 자가용 한 대 있어야 하지 않겠니. 아니요, 저는 운전면허증도 없어요. 운전면허증 요새 한 주만 다니면 쉽게 따는데. 자가용 몰면 책을 못 읽어요. 서울은 가뜩이나 자동차 많고 길 많이 막히는데, 그런 데 자가용 몰고 다니면서 골이 아프기는 싫어요.


  책방 일꾼들도 나를 보면서 그렇게 큰 가방과 책꾸러미 들고 집까지 걸어가면 힘들지 않아요, 하고 묻습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합니다. 내가 읽을 내 고마운 책들이니, 집까지 즐겁게 날라야지요. 스스로 짊어지고 집까지 나를 수 없다면, 이 책들을 내가 읽을 수 없다는 뜻이에요. 가다가 쉬면서 책을 읽고, 또 가다가 쉬면서 책을 읽으면 돼요.


.. 한국에 온 지 한 달쯤 지나서 우리는 ‘다시’ 결혼식을 올려야 했다. 이번에는 ‘그냥’ 결혼식이 아니고 ‘훨씬 더’의 결혼식이었다. 우리가 독일에서 했던 결혼식에서보다 모든 것이 ‘훨씬 더’ 크고 많았다. 모든 것이 훨씬 더 형식적이고, 훨씬 더 비쌌다 … 이 한국 결혼식은 우리 둘에게 중요하다기보다는 왠지 다른 사람들에게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아 보였다 … 나는 혼자 생각했다. ‘손님들이 그냥 돈을 주고 밥을 먹고 가 버리네! 손님과 함께 얘기도 별로 나누지 못했잖아 … 독일에 있었을 때, 난 여러 해 동안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면 동물을 먹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햇빛도 못 보고 죽음만 기다리는 돼지나 소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독일에는 요즘 채식주의자들이 많이 생겨서 고기를 먹지 않아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생선도 안 먹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한국음식에 야채가 많지만 고기가 조금씩이라도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  (44, 48, 95쪽)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을 떠나 서울로 와서 산 지 아홉해 째 되던 날, 서울 아닌 시골에서 할 일이 생깁니다. 내 일터는 이제 서울 아닌 멧골자락이 됩니다. 충청북도 충주 무너미마을 멧골집에서 돌아가신 어느 분 글과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기로 하면서, 서울을 떠납니다. 서울에는 좋은 책방이 많아 날마다 두세 곳씩 나들이하는 기쁨을 누렸기에 여러모로 서운했지만, 엄청난 글과 책을 남기신 분 뒷자리를 갈무리하는 일도 ‘새로운 책’ 만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책방마실에서는 느끼거나 배우지 못하는 남다른 사랑을 배울 수 있으리라 여겼어요.


  두 해쯤 멧골과 서울 오가면서 지냅니다. 멧골에서는 멧골자락 품에 안겨 책을 만지고, 서울에서는 바지런히 책방마실을 하며 책을 만납니다. 서울로 가면 내가 할 일은 책방마실뿐이라고 느낍니다. 서울에서 갈 만한 데가 없고, 서울에서 쉴 만한 데가 없다고 느낍니다. 숲도 들도 냇물도 없는 서울에서 어디를 가야 쉴 만하겠습니까. 온통 아스팔트에 시멘트뿐인데다가, 끔찍하도록 넘치는 자동차물결인데요.


  책방마실을 하면 큰길하고 벗어납니다. 동네마다 조용히 웅크린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하면 골목 안쪽으로 접어듭니다. 조용한 데에 헌책방이 있습니다. 호젓한 곳에 헌책방이 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와 어수선한 불빛하고 동떨어진 조그마한 헌책방 책시렁에서 마음을 밝히는 빛줄기를 책에서 만납니다.


  도시내기로 살아가는 동안 생각합니다. 도시사람으로 살면서 나 스스로 사람됨을 헤아리자면 책방에 있어야 한다고. 책방에 있지 않고서는 나 스스로 내가 사람인지 느낄 자리가 없다고.


  밀리고 밟히며 치이는 전철이나 버스에서 나다움을 찾지 못합니다. 골목에서조차 자동차 빵빵거리는 소리에 귀가 멍한 서울에서는 나다움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술집과 옷집 끝없이 펼쳐진 큰도시에서 나다움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하늘 귀퉁이나마 올려다볼 구석이 없고, 별빛이나 달빛을 누릴 말미가 없는 데에서 나다움을 지킬 힘이 없습니다. 멧골자락에서 이태를 일하고 세 해째 되던 날, 모든 서울살림 탁탁 털고 멧골마을로 보금자리를 옮깁니다.


.. 한국은 ‘반짝반짝하지만 나를 지치게 하는 서울’만이 아니었다. 한국은 ‘서울보다 훨씬 더 큰 나라’였다.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모두가 한국에 서울보다 더 좋은 곳이 없는 것처럼 말했다. ‘다른 한국’이 존재한다는 진실은 내가 완전히 혼자 알아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느 예쁜 가을날에, 나는 시아버님, 시어머님, 남편과 함께 시아버님의 고향에 갔었다. 시아버님의 고향은 강릉 바로 옆의 어느 작은 마을이었다 … 새의 지저귐, 귀뚜라미의 소리, 소나무의 향은 나에게 오랜만에 따뜻하게 포용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느낌은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때 나는 내가 머물고 싶은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산의 품에 안겨 살고 싶었다 … 시끄러운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유난히 더 조용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일상생활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더 침착하고, 더 건강하고, 더 평화로운 방향으로 ..  (102∼103, 109쪽)

 

 


  시골에서 살아가며 자전거를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시골은 도시와 달리 비탈이 퍽 가파릅니다. 시골에도 자동차는 꽤 많지만, 시골길은 도시길처럼 반듯하거나 판판하게 펴지 않습니다. 그냥 길을 내고 그저 아스팔트를 뿌립니다. 자동차라면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오르내리는 길이나, 자전거로는 허벅지가 터질 듯한 오르막이 되기 일쑤입니다. 거꾸로, 자전거 멈추개가 안 잡힐 만큼 쌩 소리 내며 달리는 내리막이 되지요.


  시골에서 지내며 시골버스를 타면, 젊은이를 못 만납니다. 시골마을에서 읍내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더러 볼 뿐입니다. 아기나 아이를 데리고 시골버스 타는 사람은 더더구나 못 만납니다. 아직 시골에서 살아가며 아기를 낳는 젊은이 있다면 어김없이 자가용을 몰아요. 아기를 낳았대서 더 큰 자가용으로 바꾸어요.

  나한테는 자가용이 없고 자가용을 장만할 마음도 없으니, 멧골마을에서 군내버스 타는 데까지 한참 걷습니다. 저자마실이라도 하는 날이면 군내버스에서 내려 멧골집까지 돌아오기까지 땀 솔찬히 쏟으며 걷습니다. 등에 큰 가방 메고 어깨에 천바구니 낀 채 아기를 품에 안습니다. 엉금엉금 기듯 천천히 걷습니다. 아기가 깨랴 천천히 걸으면서 숲바람을 마십니다. 흙바람을 들이켜고 하늘바람을 먹습니다. 내가 흘리는 땀은 흙땅에 떨어져 스며듭니다.


.. 나는 밭에서 예초기로 풀을 자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나는 우연히 풀밭에서 꿩을 발견했다. 풀잎 사이로 웅크리고 있던 꿩은 흙더미처럼 보였다. 나는 예초기로 꿩을 거의 죽일 뻔했다 … 나는 꿩이 왜 도망가지 않는지 궁금했다. 자세히 살펴본 후, 나는 꿩이 알 위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꿩은 알을 보호하고 싶어 했다 … 바로 그 순간, 우리 집이 내 눈에 들어왔다. 꿩집처럼 우리 집도 겸손하게 산속에 숨어 있었다. 우리 집도 꿩집처럼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집이 더럽고 불편하다고 생각해서 부수고 빨리 새 집을 지으려고만 하는 나에게 집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냐. 나를 보지 말고 빨리 가.” … 매일 밤, 잠자리에 누워 나는 옛날 사람들이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상상해 보았다. 옛날에 이렇게 어둡고 좁은 방에서 살면 사람들이 어떤 걱정을 했고, 또 어떤 기쁨을 가졌을까 ..  (123∼125, 126쪽)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는 멧골마을에서 떠나 서울이나 큰도시하고 훨씬 멀리 떨어진 두멧시골로 삶터를 옮깁니다. 첫째 아이와 살던 멧골마을은 이럭저럭 서울이나 큰도시하고 가까웠어요. 이러다 보니 둘레에 공장도 많고 자동차도 많았으며, 나날이 매캐한 바람 되어 하늘이 뿌옇게 바뀌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나도 옆지기도 자동차나 오토바이 소리 아닌 또랑물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기계소리 아닌 빗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개구리와 풀벌레가 어우러지는 숲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바람 따라 나부끼는 나뭇잎과 풀잎이 자아내는 푸른내음 가득한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시골에서 두 아이와 살아가며, 봄에는 봄을 느껴 좋습니다. 여름에는 여름을 누려 좋습니다. 가을에는 가을을 노래하며 좋습니다. 겨울에는 겨울이 오들오들 추워 좋습니다.


  시골에서 지내니 봄이 그야말로 봄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니 여름이 참말 여름입니다. 시골에서 아이들과 복닥이는 하루하루란, 고스란히 가을이고 겨울입니다.


  날마다 다른 삶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새로운 빛입니다. 구름이 흘러 그늘을 만들어 베풀 적에는 구름그늘 이토록 시원하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나뭇잎 우거져 나무그늘 드리울 때에는 나무그늘 이토록 푸르구나 하고 깨우칩니다.


  풀포기 뜯어서 맛을 봅니다. 풀포기 종아리를 스치며 내 몸을 간질입니다. 딱정벌레가 머리통에 내려앉습니다. 나비 애벌레가 팔뚝에 내려앉습니다. 파리와 모기가 달라붙기도 하지만, 나비와 잠자리가 살그마니 어깨에 내려앉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보는 꽃은 모두 들꽃이지만, 시골사람 어느 누구도 들꽃을 ‘들꽃’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들꽃을 그대로 ‘꽃’이라 말합니다. 시골사람은 들풀을 ‘들풀’이라 말하지 않아요. 그대로 ‘풀’이라 말합니다.


  그렇지요. 모두 그대로 ‘나무’요 ‘꽃’이며 ‘풀’입니다. 나무이자 꽃이고 풀일 뿐입니다. 수목원이 아니고 산림자원 아닙니다. 화초도 화분도 야생화도 아닙니다. 야생초도 잡초도 산야초도 아닙니다. 모두 나무이고 꽃이며 풀이에요.


  사람은 그대로 사람이지요. 아이는 그대로 아이예요. 할머니는 할머니일 뿐이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일 뿐입니다. 예부터 시골사람은 절름발이를 절름발이라고 했습니다. 놀리거나 비아냥거리거나 괴롭히거나 따돌리려는 뜻으로 절름발이라 하지 않습니다. 다리를 저니까, ‘저는 모습’ 그대로 ‘다리 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절름발이라 했을 뿐입니다. 앉은뱅이라는 이름도, 장님이라는 이름도, 벙어리라는 이름도, 모두 ‘차별·편견·소외’로 붙인 이름 아닙니다. 수수하게 바라보며 투박하게 붙인 이름입니다. 서로서로 살가운 이웃으로서 부른 이름입니다. 누군가 절름발이이듯, 나무는 나무입니다. 누군가 앉은뱅이이듯, 꽃은 꽃입니다. 누군가 장님이듯, 풀은 풀입니다. 시골에서는 절름발이와 나무가 똑같습니다. 아이와 어른이 똑같이 아름다운 목숨입니다. 벌레와 사람이 서로 아름다운 숨결입니다. 볏포기도 풀포기도 모두 고마운 이웃입니다.


.. 독일에서는 오래된 집일수록 인기가 많다. 독일사람들은 보통 오래된 집들이 현대적인 콘크리트 집보다 훨씬 더 예쁘고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오래된 집들을 함부로 부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우리 집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먼지와 거미줄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나무 기둥과 마루가 눈에 띄었다. 집짓기에 사용된 목재는 다 100년 전 어느 겸손한 목수가 손으로 직접 다듬은 것이다. 나무 기둥과 문들이 다 자연스럽게 휘어져 있다. 기둥을 만지면 이 집을 만든 사람의 꼼꼼한 손동작을 내가 다시 느낄 수 있다 … 집을 수리하면서 수많은 보물을 발견했다 … 이 집이 이렇게 예쁘게 변한 것은 이 집 자체가 원래 예뻤기 때문이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 우리가 한 일은 이미 존재하는 보물을 발굴해 낸 것뿐이었다 … 나는 요즘도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사람들은 왜 옛날 집들의 가치를 모르는 것일까? 닦지 않은 보물도 보물 아닌가? 옛날 집들을 조금만 돌봐 주면 귀중한 보석들이 막 쏟아져 나올 것이 확실하다 ..  (131, 133, 137쪽)

 


  유디트 크빈테른 님이 쓴 글을 모은 《나는 영동사람이다》(생각하는고양이,2012)를 읽습니다. 유디트 크빈테른 님은 독일에서 나고 자란 분인데, 강원도 삼척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살아갑니다. 이 책 《나는 영동사람이다》는 강원도 삼척에 있는 조그마한 출판사에서 조그마한 손길로 엮어서 태어납니다.


  독일에서 나고 자라며 학교를 다니다가 ‘독일로 배움길 떠난 한국사람’을 만나 그만 사랑에 빠져 둘이 함께 살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여겨 한국으로 왔다고 하는 유디트 크빈테른 님입니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살았다고 해요. 서울에서 일곱 해 살았다고 합니다. 이동안 유디트 크빈테른 님은 몹시 슬펐고, 매우 힘들었으며, 아주 고단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고 싶을 뿐이었지, ‘서울’이라고 하는 너무 크고 너무 시끄럽고 너무 고달프며 너무 어수선한데다가 너무 어지러운 곳에서 ‘시달리거나 들볶이’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고 해요.


  더할 나위 없이 괴로운 하루하루 보내던 어느 날 처음으로 ‘서울 아닌 한국’을 보았다고 해요. 당신이 이 땅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자면 ‘서울 아닌 한국’에서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우며 착한 살림 꾸려야 한다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독일사람 유디트 크빈테른 님은 ‘서울사람’ 아닌 ‘한국사람’이 됩니다. 아니 ‘한국사람’이라기보다 ‘삼척사람(嶺東)’이 되어요.


.. 한국어는 정말 고문 도구다! 설상가상으로 한자도 있다. 이것도 참 미스터리다. 세계에서 제일 효과적인 자모를 만든 국민이 세계에서 제일 복잡한 문자를 포기하고 싶지 않단 말인가 … 12년 동안 학생이 나를 비판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학생들이 나뿐 아니라 다른 교수들도 전혀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다른 교수들도 비판받은 경험이 거의 없을 것 같다 … 만약에 한국 학생이 교수의 말이 틀렸다고 말하면, 교수는 그 학생과 토론하고 논쟁하는 대신에 그냥 그 학생이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고 화를 낼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이 사실을 안다. 그러니 교수와 토론하는 것을 아예 시도하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해, 한국 대학교에서 교수의 말을 다 외우고 반대 한 번도 하지 않고 교수에게 선물도 주는 학생이 교수들 사이에 인기가 제일 많은 것 같다 … 만약 내가 선생님으로서 틀린 것을 가르친다면, 학생들이 나를 비판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학생과 나의 의견이 다른 경우에는 솔직하게 토론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닐까 ..  (212, 235∼236쪽)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들은 가끔 군내버스 타고 읍내로 마실을 다녀옵니다. 따로 닷새저자에 맞추지는 않습니다. 닷새저자에는 온 마을 할매 할배 저자마실 다니시느라 군내버스에 자리가 없어요. 앉을 자리는커녕 아이들 데리고 설 자리마저 없습니다. 닷새저자 아닌 날에 맞추어 읍내로 다닙니다.


  시골 군내버스를 타는 분은 하나같이 할매와 할배입니다. 그리고, 한국 시골로 시집을 온 동남아시아 아가씨입니다. 처음 고흥에 깃들어 만난 예쁘장하고 어린 동남아시아 아가씨가 한동안 안 보이더니, 어느 날 등에 아기를 업고 군내버스를 탑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으로 시집을 오는 동남아시아 아가씨들은 거의 시골로 와서 살아갑니다. 도시에서도 곧잘 살아갈 테지만, 시골로 시집을 오는 동남아시아 아가씨들 아주 많아요. 이들한테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서울’이 아닌 ‘시골’일 테고, 한국을 떠올리거나 살필 적에도 ‘서울 나라’ 아닌 ‘시골 나라’가 되겠지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커다란 도시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느낄까 궁금합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야 하는 수많은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랄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서로서로 어떤 사람이 되어 사랑할 때에 아름다울까요. 학교에서는, 집에서는, 마을에서는, 일터에서는, 어떤 사람다움을 보여주고 어떤 사람다움을 가르치는가요.


  어느 모습을 놓고 ‘한국’이라 할 만할까요. 서울이 한국일까요. 부산이 한국일까요. 서울과 함께 시골을 아울러야 한국일까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데는 어디인가요. 스스로 사람다운 착한 넋 돌보면서 참다운 삶길로 걸어갈 만한 데는 어디인가요. 4346.7.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을 밝히는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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