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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저무는 제비춤

고흥 길타래 11―시골마을 고운 벗님

 

 

  한여름 무더위가 지나가는 전남 고흥 시골 들판에 제비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닙니다. 전깃줄에 줄줄이 앉아서 하늘바라기를 하다가는, 우루루 날갯짓하면서 들판을 이리저리 휙휙 춤을 추듯 날아다닙니다.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 제비 무리를 만납니다. 제비들은 찻길에 무리지어 앉아서 쉬다가, 또는 찻길에서 몸을 덥히는 풀벌레를 잡아먹다가, 자전거가 지나가니 한꺼번에 날아오릅니다. 이쪽에서 한 무리, 이 다음에 또 한 무리, 그 다음에 다시 한 무리,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한 무리 더. 이들 무리는 저마다 한식구일까요. 아니면 서로 마음이 맞아 함께 다니는 무리나 동무일까요.


  우체국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비 무리를 다시 만납니다. 논둑에는 고들빼기꽃이 하얗게 피고, 달개비꽃이 파랗게 핍니다. 고들빼기는 하얗게 피운 꽃이 지면 열매를 알뜰히 맺어 씨앗을 퍼뜨리겠지요. 가을논 나락베기를 앞두기까지 고들빼기도 바지런히 씨주머니 터뜨려 온 들판에 새끼들을 내려놓아야 할 테지요.


  유월뿐 아니라 칠월과 팔월 여름날 가문 날씨였으나 나락은 씩씩하게 잘 자랐습니다. 벌써 이삭이 패어 고개를 숙인 나락이 있고, 이제 막 이삭이 패려는 나락이 있습니다. 얼마 앞서까지 푸른 물결 논은 차츰 노르스름한 물이 듭니다. 제비들은 들판이 노랗게 물들 무렵 배를 한껏 채우고 먼 바닷길 가로질러 따뜻한 새터로 떠나리라 봅니다.


  메뚜기도 먹고 방아깨비도 먹습니다. 사마귀도 먹고 거미도 먹습니다. 잠자리도 나비도 먹습니다. 파리와 모기도 함께 먹습니다. 이 너른 들에 제비 무리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제비한테 먹이가 될 풀벌레와 날벌레가 크게 줄었을 테니, 제비도 살아가기 만만하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먼 옛날을 돌아봅니다. 우리 옛이야기에 나오듯이, 흥부네 집은 처마 밑 제비집을 알뜰히 아꼈을 뿐 아니라, 다리 부러진 제비를 고치려고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흥부라는 사람으로 빗댄 이야기는, 시골사람이면 누구나, 또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이면 모두, 제비를 살가이 아끼며 사랑했다는 뜻을 보여준다고 느낍니다.


  제비가 있어 새벽을 함께 열어요. 사람도 제비도 일찌감치 일어나서 늦봄과 첫여름 새벽을 엽니다. 한여름에는 한결 일찍 새벽을 열고, 늦여름으로 접어들고 첫가을에 이르면 조금 느즈막히 새벽을 열어요. 들일을 나가면 제비도 들판 누비며 새끼들 먹일 밥을 찾습니다. 들일을 쉴 무렵, 제비도 나뭇가지에 앉아서 쉬었어요.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무렵, 제비도 하루를 마무리하며 째째 노래하면서 시골집 처마 밑으로 돌아가요.


  시골사람이면 예부터 흙과 풀과 돌과 나무로 집을 짓습니다. 흙집입니다. 시골사람하고 이웃하는 제비는 흙과 지푸라기로 집을 짓습니다. 사람집도 제비집도 예부터 모두 흙집입니다.


  제비가 있어 들판에서 여러 풀벌레와 날벌레를 잡아 주었습니다. 먼 옛날부터 시골 흙일꾼은 제비를 살뜰히 아끼면서 곁에서 동무로 삼을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제비가 이 나라를 떠나 먼 바다 가로질러 따스한 나라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곧 가을 지나 겨울이 닥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가을일 바지런히 마무리짓습니다. 봄을 밝히고 여름을 빛내며 가을을 누리면서 겨울을 맞이하는 네 철을 또렷이 보여주면서 이끄는 시골벗 제비입니다.


  자전거를 세웁니다. 한손으로 자전거를 끌면서 아이들과 들길을 거닐며 제비를 바라봅니다. 제비들이 한껏 들판 날아다닐 적에는 한참 논둑에 서서 물끄러미 제비를 쳐다봅니다. 저 작은 몸으로 먼 바다를 잘 날아왔구나, 저 조그마한 몸으로 다시 먼 바다를 씩씩하게 날아가겠구나, 생각하면서, 우리 아이들도 작고 튼튼한 몸 씩씩하게 크기를 바랍니다.


  제비 무리 노는 들판을 지나면서 다시 자전거를 달립니다. 이웃마을 나팔꽃 흐드러진 논둑을 구경합니다. 바람이 선들선들 시원합니다. 구름이 하얗습니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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