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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본 책
고든박골 가는 길

[도서] 고든박골 가는 길

이오덕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이오덕을 읽는다 13

 


숲과 어깨동무하는 마음
― 고든박골 가는 길
 이오덕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5.4.15

 

 

※ 책풀이 ※
시집 《고든박골 가는 길》은 죽음을 앞두고 시골에서 숲과 새와 벌레와 풀을 마주하면서 가슴으로 부른 울음노래를 담은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하루하루 목숨을 잇든 시로 노래를 불렀고, 이웃들 삶이 사랑스레 거듭나기를 바라는 꿈을 담아 시로 노래를 지었다. 시마다 쓴 날짜를 함께 달아 놓았기에, 죽음과 조금씩 가까이 다가서면서 어떤 넋으로 지구별을 그리는 노래를 불렀는가를 더 살가이 느낄 수 있다.


..


  동이 틀 무렵 멧새가 노래합니다. 일찍 동이 트는 여름에는 일찍부터 노래하고, 느즈막하게 동이 트는 겨울에는 느즈막하게 노래합니다. 여름에는 네 시 무렵이면 벌써 멧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겨울이면 새들이 몸을 녹이며 날갯짓하는 여섯 시 즈음부터 멧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멧새 노랫소리는 가만히 귀를 기울일 때에 듣습니다. 텔레비전을 틀면 새노래는 들을 수 없습니다. 경운기 탈탈거리고 지나갈 적에도 새노래는 파묻힙니다. 손전화 따라라 울려도 새노래는 잠깁니다.


  새는 낮은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풀벌레도 낮은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아이들도 낮은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이와 달리, 자동차와 기계와 어른들은 높은 목소리로 꽥꽥거립니다.


  우는 소리는 살그마니 노래가 됩니다. 새들 울음이란 새들 노래요, 풀벌레 울음이란 풀벌레 노래입니다. 아이들 울음은 곧 아이들 노래입니다. 어른들도 가끔 울지요. 슬픔에 잠기고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웁니다. 저기 밀양 송전탑 밑에서 울어요. 저기 제주 어느 마을에서 군부대 때문에 울어요. 고흥과 해남 바닷가에서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짓겠다는 소리에 울었어요. 푸대접과 따돌림을 받아 울어요. 짓눌리고 짓밟히며 울어요. 슬프며 아픈 울음인데, 슬픈 울음은 슬픈 노래 되고, 아픈 울음은 아픈 노래 됩니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터져나오면서 노래가 됩니다. 가슴에 사무치는 아픔이 찢어지면서 노래가 됩니다. 웃음꽃이 노래가 되기도 하고 이야기꽃이 말갛게 노래가 되기도 하니, 삶을 이루는 노래는 눈물과 웃음 두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밝은 햇볕에 눈을 뜹니다. 맑은 풀빛에 마음을 씻습니다. 고운 바람에 기지개를 켜고, 시원한 냇물에 머리끈 질끈 동여맵니다.


.. 아, 내가 멀지 않아 돌아갈 내 본향 / 아버지 어머니가 기다리는 곳 / 내 어릴 적 동무들 자라나서 사귄 벗들 / 모두 모두 기다리는 그곳 / 빛과 노래 가득한 그곳. / 그러고 보니 나는 벌써 / 그곳에 와 있는 것 아닌가 / 그곳에 반쯤 온 것 아닌가 / 나는 가네 빛을 보고 노래에 실려 ..  (빛과 노래, 2003.8.19.아침)


  바람 시원하고 볕 따뜻한 날, 시집 한 권 들고 너른 바다가 보이는 바닷가나 파랗게 빛나는 하늘이 보이는 멧골이나 푸르게 새잎을 낸 나무가 가득한 숲이나 들판으로 나가면, 마음을 탁 틀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입으로 읊는 시가 아니라 마음으로 새기는 시로 즐기고, 마음으로 새기기만 할 시가 아니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시로 노래합니다.


  볕과 바람이 아름답구나 싶은 날, 가방에 책 하나 넣고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가까운 바다나 골짜기로 마실을 합니다. 늦가을 지나면 물놀이하기에는 차갑다 싶지만, 철썩이는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모래밭에 그림 그리며 놀 수 있고, 골짝물 가만히 들여다보며 냇물고기 헤엄질 구경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 바라보다가 가방에서 책을 꺼내 땀을 식히며 몇 쪽 읽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 담은 책은 바다와 멧골에서 한결 싱그럽게 스며듭니다. 그리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 담은 책은 바다와 멧골에서 머리에 잘 안 들어옵니다.


  이런 책이든 저런 책이든 한동안 읽다가 덮습니다. 아이들이 부르니 더 읽지 못합니다. 아이들 곁으로 가서 모래밭 그림을 함께 그리고 골짝물에 나란히 발 담그면서 놀다가 생각합니다. 삶을 빛내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되겠다고.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굳이 책을 장만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굳이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겠다고.


.. 공장에서 나온 사료만 먹었으니 / 푸른 잎을 먹을 줄 모르겠지. / 마른 짚 같은 것이나 먹고 / 울안에 갇혀 살았으니 / 그 울안에서 풀려나 / 산과 들을 마음대로 다니게 되어도 / 어찌할 줄 모르고 / 눈부시게 아름다운 풀잎 나뭇잎들을 / 그 맛있는 것들을 / 입에 댈 줄도 모르는 / 괴상한 병신 짐승이 된 것이겠지. / 사람의 자식들도 꼭 이 괴상한 짐승처럼 되어 / 몸을 망치는 것만 한사코 먹어 대는 / 괴물로 죄다 바뀌었구나 ..  (염소, 2001.5.26)


  아이들한테 ‘착하게 살아라’, ‘공부 해라’, ‘좋은 책 읽어라’,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하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이렇게 말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어른들 스스로 언제나 곧은 마음으로 착하게 살면 됩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스스로 틈틈이 배우며 이웃을 사랑하면 됩니다. 어른들부터 언제나 좋은 책을 읽으면 되고, 언제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즐겁고 보람차게 살아가면 되지요. 아이들한테 훌륭하게 되라고 말하기 앞서, 어른들 누구나 훌륭하며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면 아이들은 이 모습을 따라가기 마련이고 배우기 마련입니다.


  학교를 보내거나 유학을 보낸다고 아이들이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아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가 살아가는 대로 아이들이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나쁜 짓을 일삼고 남을 괴롭히는 한편, 권력과 이름과 돈을 등에 업고 못된 짓만 하는 어버이 밑에서 착하고 깨끗하고 고운 딸아들이 자라기 어렵습니다. 궂은 짓을 거듭하고 이웃을 등치는 한편, 제 밥그릇 채우기에 바쁜 어버이 곁에서 참되고 맑으며 사랑스러운 아들딸이 크기 힘들어요.


  가만히 살펴보면, 오늘날 짐승우리에서 살아가는 돼지와 닭과 소는 사료 아니면 잘 못 먹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길들입니다. 사슴우리나 노루우리에서 사료 먹고 자라던 사슴과 노루도 울타리를 껑충 뛰어넘을 줄 모릅니다. 사슴고기나 노루고기 장사가 잘 안 되어 이들 짐승들을 울타리에 가둔 채 농장임자가 떠나 여러 날 사료를 주지 않아도 배를 쫄쫄 굶다가 그만 굶어죽기 일쑤입니다. 들짐승이 모두 ‘우리짐승’으로 길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떠한가요. 어른들은 돈을 안 벌면 바보스럽거나 미련하거나 쓸모없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안 다니면 아이답지 않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스스로 삶을 일구는 사람은 푸대접을 받습니다. 도시에서 정치를 하거나 경제를 하거나 스포츠를 하는 사람은 신문과 방송을 그득 채웁니다. 초·중·고등학교는 대학입시 지옥이 되었는데, 이런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 시험기계로 만들어야 비로소 마음을 놓는 요즈음 사람들입니다.


  어른들은 무엇을 먹는가요. 어른들은 먹을거리를 어떻게 장만하는가요. 어른들은 무엇을 만들어 아이들한테 주는가요. 어른들은 어떤 옷을 입는가요. 어른들은 스스로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하는가요. 어른들은 어떤 집에서 살아가는가요. 스스로 흙과 나무와 돌과 짚으로 집을 짓는가요, 아니면 돈을 벌어 시멘트집을 장만할 생각만 품는가요.


  싱그러운 들바람 마시려는 어른이 없어, 싱그러운 들바람 못 마시는 아이들입니다. 짙푸른 숲내음 마시려는 어른이 없어, 짙푸른 숲내음하고 멀리 떨어진 채 살아가는 아이들입니다. 농약과 비료에 기댄 곡식과 열매만 그득하니, 아이들은 곡식과 열매가 어떤 참맛인가를 모릅니다. 겉을 코팅해서 맨들맨들 반짝반짝 노랗거나 빨갛게 빛나도록 하는 능금이나 귤이나 배나 감을 가게에서 사다 먹을 뿐이에요. 능금나무 귤나무 배나무 감나무에 열매가 어떻게 맺히고, 열매에 앞서 꽃이 어떻게 피며, 꽃에 앞서 잎이 얼마나 푸른가를 헤아리는 어른도 아이도 없습니다.


.. 어머니들이 김치 된장 좋아서 즐겨 먹으면 / 아이들은 저절로 따라갈 것인데 / 어머니들이 걸핏하면 밖에 나가 서양요리 사 먹고 / 고기 즐겨 먹고 아이들도 그렇게 먹이니 / 부모들이 모두 아이들 죽이는 거지 ..  (산딸기 2, 2001.6.29)


  맛 좋은 능금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맛있는 배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싱그러운 딸기도, 소담스러운 감도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농약과 비료를 안 먹고 자란 곡식이나 열매로 무엇이 있을까요. 농약과 비료를 안 써서 투박하거나 조그마한 곡식과 열매를 애써 찾아나서는 어른은 몇이나 되는가요.


  농약과 비료를 안 쓰더라도 이제는 비닐집에서 키웁니다. 유기농 푸성귀나 열매라 하면서도 막상 비닐집 커다랗게 지어서 키웁니다. 햇볕을 쬐지 않고, 바람을 마시지 않으며, 빗물을 들이켜지 못하는 푸성귀나 열매를 똥오줌 거름으로, 이것조차 커다란 소우리와 돼지우리에서 사료 먹은 소와 돼지가 내놓은 똥오줌으로 삭힌 거름으로 짓는 유기농 푸성귀나 열매는 사람들 몸에 얼마나 이바지를 할 수 있을까요.


  진보를 외친대서 진보가 되지 않습니다. 평화를 외친대서 평화가 되지 않습니다. 목소리만으로는 진보도 평화도 되지 않아요. 삶이 고스란히 진보가 되어야 진보요, 삶이 온통 평화로울 때에 평화입니다.


  논문이나 책으로는 진보도 평화도 이루지 못합니다. 오직 삶으로 이루는 진보요 평화입니다. 교육이나 정치로는 진보도 평화도 얻지 못합니다. 스스로 흙을 밟고 만지며 사랑하는 삶을 작고 조용하게 일굴 때에 비로소 진보도 평화도 찾아옵니다.


.. 그런데 지금 이 동네엔 아이들이 없구나 / 겨우 몇 아이가 있어도 / 모두 학교에 가서 저녁 늦게야 돌아오고 / 학교 안 가는 날은 학원 차에 실려 / 읍내로 가 버리고 없지. / 그리고 그 아이들 / 이제는 대추 같은 것 / 먹을 줄 몰라. / 과자나 먹지 / 불쌍한 녀석들이야 ..  (대추를 털면서, 2001.10.25.)


  이 나라 어른들은 돈만 바라보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이 나라 아이들도 어느새 돈만 살피는 사람으로 달라집니다. 즐겁고 아름답게 일할 자리를 찾기보다는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가를 따지는 어른이 늘어납니다. 삶을 밝히거나 빛내는 일거리를 생각하는 젊은이는 줄어듭니다. 사랑스레 일하며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두레와 품앗이 누리려는 푸름이는 자라지 못합니다.


  오직 돈만 춤을 춘다면, 돈나라에 어떤 노래가 흐를까요. 오로지 돈만 펄럭인다면, 돈누리에 어떤 이야기가 감돌까요.


  집식구 옷가지를 빨래하며 생각합니다. 빨래기계에 맡길 수 있다지만, 빨래를 할 적마다 곁에 빨래기계 있는 줄 느끼지 못합니다. 빨래기계는 손빨래를 마친 젖은 옷가지 올려놓는 선반 구실을 합니다. 늘 빨래기계를 보지만, 이 녀석으로 빨래를 해야겠다고 느끼거나 생각하는 적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디를 다니든 풀이 돋은 모습을 보며 ‘저 녀석 뜯어먹으면 맛있겠네.’ 하고 생각합니다. 이와 달리 시골사람조차 집과 마을 어디에나 흔히 돋는 풀을 바라보며 ‘저 녀석 맛있겠구나.’ 하고 여기며 스스럼없이 뜯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곁에 있어도 못 봅니다. 함께 있어도 못 느낍니다. 우리 둘레 이웃 가운데 아프거나 힘든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테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웃을 제대로 못 보고 못 느낍니다. 코앞에 있어도 가슴에 와닿는 느낌이 없습니다.


  햇볕을 늘 받으면서도 햇볕이 얼마나 따사로운가를 못 느끼는 사람이 많아요. 도시를 흐르는 바람이 얼마나 매캐한가를 못 느끼는 사람이 많아요. 버스나 택시나 자가용에서 나는 호르몬 냄새와 플라스틱 냄새와 석유 냄새를 못 느끼는 사람이 많아요. 이리하여, 물과 바람이 맑은 시골로 찾아왔어도 바람이 얼마나 맛나고 고소하며 맑은가를 못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시원하고 맑은 냇물을 섣불리 못 마시는 사람이 많아요. 플라스틱병에 담은 물은 아무렇지 않게 마시면서도, 막상 시냇물과 우물물은 못 마시는 사람이 많습니다.


// 내가 말했다. /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요’가 아니고 / ‘뭘 하면 돈 벌까요’라니, / 그런 사람들 자꾸 더 망해야 된다. / 그렇잖으면 / 온 나라 온 땅이 다 망한다.” ..  (배추 이야기 2, 2001.11.9)


  시골이라기보다 멧골에 있는 조그마한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이오덕 님은, 서울 둘레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 여러 해 지내면서 뜻있는 일을 애써 하셨습니다. 그런데, 서울 둘레에서 아무리 뜻있는 일을 하더라도 안 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담이 높아요. 사람들 마음이 닫혔어요. 높은 담 앞에서 허우적거리고, 닫힌 사람들 마음 둘레에서 힘듭니다. 가뜩이나 튼튼하지 못한 몸인데, 여린 몸은 더 여린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이리하여, 서울 둘레에서 하던 뜻있는 일은 모두 접기로 합니다. 충청북도 멧골자락에 있는 아들 집으로 삶터를 옮깁니다. 몸을 쓰기 쉽지 않아 들일을 하지는 못하지만, 들바람을 쐬고 들내음을 맡으며 글쓰기에 마음을 기울이기로 합니다. 나중에는 바퀴걸상을 타야 하는 몸이 되었고, 자리에서 일어나기에도 어려운 몸이 되는데, 하루하루 숨결을 다스리면서 공책에 시를 꾸준하게 씁니다. 하루에 시 하나씩 쓰며 하루를 살아내는 보람을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고든박골 가는 길》(실천문학사,2005)이라는 책은 온몸을 바쳐 걸어온 길을 온마음을 쏟아 쓴 시가 모여 태어납니다. 이오덕 님이 흙으로 돌아간 뒤 이오덕 님 ‘시 공책’에 깃든 글을 그러모아 ‘삶을 노래하고 삶을 밝히며 삶을 들려주는’ 이야기를 갈무리합니다.


.. 그 항아리만큼 한 무 한 개가 / 60원이란 것은 / 그렇게 그 농사꾼을 생각해서 / 값을 쳐준 것이다. / 공짜로 가져가라고 해도 / 가져가는 사람이 없으니 / 무 값은 1원도 안 되는 것이다. / 이것이 모두 누구 탓인가? / 누가 잘못한 것인가? / 하늘이 잘못한 것인가? / 땅이 잘못한 것인가? / 아니다. 결코 아니다. / 하늘이 잘못한 것 아니다. / 땅이 잘못한 것 아니다. / 잘못한 것은 바로 사람이다. / 바로 그 농사꾼이다 ..  (무 이야기 2, 2001.11.14)


  1950년대부터 동시를 쓴 이오덕 님은 1966년 《별들의 합창》, 1969년 《탱자나무 울타리》, 1974년 《까만 새》를 펴냅니다. 멧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이오덕 님은 아이들이 저희 마음과 생각을 시원하게 털어놓는 한편, 아이가 아이답게 맑고 깨끗한 눈으로 온누리를 느끼고 바라보도록 하는 ‘글쓰기 교육’을 1950년대부터 합니다. 이 일은 이오덕 님 스스로 어린이문학을 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꾸밈없이 보고 느끼고 겪고 부대낀 대로 글을 쓰듯, 이오덕 님 또한 꾸밈없이 살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어깨동무하는 대로 동시를 쓰고 동화를 씁니다.


  그런데 이오덕 님은 1974년에 동시모음 《까만 새》를 낸 뒤로 돌아가시는 날까지 동시모음을 내지 않습니다. 1981년에 《개구리 울던 마을》을 펴내기는 했지만, 《개구리 울던 마음》은 그동안 쓴 시를 날짜에 따라 다시 묶으며 낸 ‘선집’이지 ‘새 창작집’이 아니거든요. 1987년에 《종달새 우는 아침》이란 동화책을 펴내기는 했지만, 이 책도 예전에 쓴 동화를 뒤늦게 묶은 책입니다.


  이오덕 님은 ‘글쓰기 교육’과 ‘어린이문학 창작’을 교사로 일하면서 함께 하겠노라 마음먹었고 이 길을 바지런히 걸었는데, 왜 1970년대 끝무렵부터 시쓰기를 끊었을까요?


  그 까닭은 바로 이 나라에 참된 어린이문학 ‘비평’과 ‘평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문학을 비평하고 평론하는 텃밭도 제대로 없었지만 오랜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에 시달리고 짓눌린 교육 얼거리를 바로보는 ‘교육비평’ 또한 없었어요. 그래서 이오덕 님은 스스로 아주 좋아하며 즐기던 ‘문학 창작’을 한동안 접기로 다짐합니다. 문학 창작을 할 만한 사람은 이 땅에 얼마든지 있고, 이즈음 권정생 님을 만나 문학 창작을 북돋았으며, 이오덕 님으로서는 문학 창작을 못하더라도 제대로 된 문학비평 텃밭을 일굴 수 있다면, 나중에 얼마든지 새롭고 젊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뜻을 품으며 어린이문학을 열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이리하여 이때부터 아이들이 쓴 글을 모은 《일하는 아이들》(1977)과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1979)를 펴냅니다. 교육비평인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1977)와 《삶과 믿음의 교실》(1978)을 써냅니다. 어린이문학 비평인 《시정신과 유희정신》(1977)까지 잇달아 내놓지요.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바쁘지만 밤잠까지 미루면서 여러 잡지와 신문에 글을 쓰셨고, 이 글을 다시 손질하고 그러모아서 봇물 터뜨리듯 ‘어린이 글쓰기 교육 열매’와 ‘어린이문학 비평’과 ‘교육비평’을 내놓습니다.


  이러면서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읽힐 책이 너무 없다는 생각을 했고, 전국 곳곳에 숨은 ‘어린이문학 작가’를 찾아내고 알아보는 일을 스스로 합니다.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시골 작가들 작품을 받아 서울에 있는 출판사로 가지고 가서 ‘이런 작가들 책을 내야 출판사도 살고 아이들도 산다’면서 어린이문학이 제대로 태어나 제대로 읽힐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려고 힘써요. 창비아동문고, 인간사 아동문고(인간사가 문닫은 뒤 산하아동문고로 옮김), 종로서적 아동문고, 사계절 아동문고 들이 바로 이오덕 님 손길을 받으며 이 땅에 하나둘 태어납니다.


  1980년대로 접어든 뒤에는 교육운동을 조용히 거드는 밑힘이 되어 줍니다. 이동안 《울면서 하는 숙제》(1983), 《어린이 시 지도》(1984),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1984),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1984), 《이 땅의 아이들 위해》(1986), 《우리 언제쯤 참선생 노릇 한번 해볼까》(1986), 《글쓰기 이 좋은 공부》(1986), 《삶 문학 교육》(1987), 《어린이는 시인이다》(1988), 《이오덕 교육일기 1·2》(1989) 같은 책을 꾸준히 내놓습니다. 교육운동과 어린이문학 비평과 글쓰기 교육 이야기를 쓰는 데에 모든 힘을 쏟습니다.


.. 지금 이 가물에도 담배와 고추와 옥수수는 / 싱싱 푸르게 자라나고 있다. / 그런데 옥수수도 사람 먹으라고 심은 게 아니다. / 축산 농가에서 정부보조금 받아 내려고 심었다는데 / 우리 속에 갇혀 있는 소들도 그 옥수수는 먹지 못한다. / 가을에는 옥수수가 보기 좋게 익지만 / 밭 주인은 옥수수를 거두지 않고 대궁이도 베지 않고 / 그대로 버려두어 겨울까지 / 비에 젖고 눈에 젖고 그러다가 썩어 / 더러는 까치와 비둘기들 그 밖에 / 온갖 새들 짐승들의 먹이가 되는 것은 / 차라리 다행이라 하겠지만 / 그 옥수수가 아까워 마을 사람들 지나가다가 / 몇 송이씩 꺾어 가려고 하면 / 왜 남이 농사지은 걸 가져가나 하고 / 밭 주인은 큰소리로 권리를 주장한다. / 내버려 두어 썩어 거름이 되더라도 / 남에게 주지는 않겠다는 이 심사는 / 어디서 배운 것일까? / 학교에서 읽은 교과서로 배운 것일까? / 점수따기 시험공부에서 익힌 것일까? / 텔레비전에서, 아니면 국회의원 /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서 깨달은 것일까? ..  (고든박골 가는 길 1, 2001.6.8)


  이오덕 님은 도시살이에서 지치고 고단해 시골로 돌아왔습니다. 물도 바람도 하늘도 사람마음도 푸근하고 깨끗한 시골로 돌아왔습니다. 글쓰기 교육과 교육비평과 어린이문학비평을 그토록 하고, 또 어린이책이 아름답게 태어나는 기틀을 닦느라 온힘을 쏟지만, 도시를 이룬 곳에서 사람들은 돈만 바라보는 버릇을 버리거나 고치지 못합니다. 이기주의가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물질문명은 나날이 깊이 찌들고 아프게 비틀립니다. 아픈 모습을 보며 똑같이 마음이 아프고, 슬픈 모습을 만나며 똑같이 마음이 슬픕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도 도시와 엇비슷한 모습을 봅니다. 어쩌면 도시보다 더 그악스럽거나 아픈 모습을 봅니다.


  시집 《고든박골 가는 길》은 아프며 슬픈 모습을 달래면서 쓴 이야기입니다. 안타까운 모습을 더 낱낱이 파고들어야겠다고 느끼며 쓴 이야기입니다. 몸이 아프다고 모르는 척할 수 없고, 멧골자락에 조용히 깃들었대서 등돌릴 수 없습니다. 안타까운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찬찬히 헤아립니다. 슬픈 모습을 풀어 기쁜 웃음으로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곰곰이 생각합니다.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길을 찾으려고 힘씁니다. 환한 이야기를 그리고, 밝은 꿈을 떠올립니다. 고운 사랑과 따사로운 믿음을 길어올립니다.


  시를 쓰는 마음은 언제나 사랑이에요. 오직 사랑으로 시를 씁니다. 웃음을 나누는 사랑이요, 눈물을 나누는 사랑입니다. 웃음을 퍼뜨리는 사랑이고, 눈물을 다독이는 사랑입니다.


  비평으로는 이 땅 이 사람들을 살리는 길이 될 수 없어요. 논문과 학문으로는 숲과 들과 냇물과 바다를 살리는 길이 되지 못해요. 문학으로, 삶에서 우러나오는 문학으로, 삶을 바탕으로 짓는 문학으로, 그러니까 삶이 문학이 되고 문학이 다시 삶이 되는 아름다운 길을 찾는 몸짓과 눈짓과 웃음짓과 눈물짓과 마음짓으로, 아름다운 사랑길을 열 수 있어요.


.. 그때 내가 사람이 개나 돼지 정도로라도 된다면 / 얼마나 좋겠나 했더니 / 더러는 어리둥절하게 / 더러는 고개를 갸웃거렸지. / 그렇다면 이런 걸 / 사진이라도 찍어 보여줘야 할까? / 정말 아름다운 꽃을 사진으로 찍어 / 아름답다고 보여주는 게 예술인가? / 왜 이런 걸 사진으로 그림으로 보여주지는 못하나? / 더러운 건 덮어두는 것이 사진이고 그림이고 / 예술이고 문학인가 ..  (고든박골 가는 길 2, 2001.6.9)


  이오덕 님은 2003년 8월 25일 새벽에, 조용하게 아주 부드럽게 눈을 감습니다. 더는 슬퍼 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아파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이 땅에서는 슬픈 일과 아픈 일이 이어집니다. 슬픈 일 못지않게 기쁜 일이 있고, 아픈 일 못지않게 아름다운 일이 있어요. 우는 사람 곁에 웃는 사람 있어요. 고단한 사람 곁에 씩씩한 사람 있어요.


  시 하나는 무엇일까요. 시 하나는 무엇이 될까요. 작은 시집에 깃든 이야기는 이 땅에 어떤 씨앗이 될 만할까요. 시골자락에서 마지막 숨 몰아쉬면서 고요히 잠든 할배 넋은 어떤 나비춤이 되어 온 나라 들과 숲을 날아다닐까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요. 사람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길은 참말 어렵거나 힘들까요. 사람이 슬기롭게 마음을 빛내며 온누리 따사롭게 돌보는 길이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가요.


.. 나는 본디 돌에 이름 새기는 것 / 시고 뭐고 돌에다 새기는 것 / 한 번도 좋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 임 선생 시는 좋구나 / 하지만 돌에다 새기는 것보다 / 가슴속에 새겨 두는 게 낫지 / 가슴에 새겨 두는 것보다 / 그렇게 살아가는 게 더 나을 텐데 ..  (임길택 선생의 홍시, 2001.10.22)


  사람들이 쓰레기를 짐차에 가득 싣고 골짜기 깊숙한 곳에 몰래 내다 버립니다. 논밭에서 일을 하며 짜장면을 시켜 먹은 뒤, 빈 그릇을 치우지 않고 그냥 아무 데나 팽개치듯 버려 놓고 떠납니다. 스티로폼 짜장면 그릇 곁에 소주병이 뒹급니다. 풀약을 치면서 이녁 논이나 밭에만 치지 않습니다. 이웃 밭둑과 논둑과 길가에까지 죄다 뿌립니다. 길이고 고샅이고 논밭둑이고 풀 한 포기 못 자라게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본 이오덕 님은 “사람이 개나 돼지 정도로라도 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고 한숨을 쉽니다. 개나 돼지는 이렇게 끔찍한 짓을 하지 않으니까요. 전쟁을 일으켜 서로를 죽이는 일을 하지 않으니까요. 이웃사람을 등치거나 거짓스럽거나 시커먼 짓을 저지르지 않으니까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도시에도 많고 시골에도 많습니다. 서울처럼 커다란 도시에서는 이웃에 있는 인천이나 다른 작은 도시에 쓰레기를 내다 버립니다. 커다란 도시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누는 똥오줌은 냇물을 거쳐 바다로 흘러듭니다. 공장에서 만드는 모든 물건은 이 나라 어딘가에 쓰레기로 파묻힙니다. 빈 깡통과 빈 유리병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비닐과 랩과 종이뭉치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 나라에는 헌옷이 남아돌아 다른 나라로 보내기도 한다는데, 헌옷뿐 아니라 새옷까지 남아돌지만 공장에서는 끝없이 옷을 새로 찍습니다. 자동차 공장에서는 자동차를 하염없이 만들어요. 고속도로는 자꾸자꾸 늘어나요. 골프장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기만 합니다. 시골은 도시사람 관광지로 개발합니다. 도시는 자꾸 커지니까 발전소가 모자라다며 새로운 발전소를 시골에 또 짓고 새로 짓습니다. 도시 아닌 시골에 발전소를 지으니, 우람한 송전탑을 시골 논밭과 마을 한복판에 거침없이 때려박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슬픈 흐름은 멈추지 않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멈추지 않고, 누가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가 되어도 그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흙 만지는 사람은 자꾸 줄어드는데,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도시로 떠나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 일꾼이 되려고 합니다.


.. 하늘을 찔러 / 가장 높이 솟은 / 우리 마을 제일교회 / 예배당 뾰족탑. // 하느님, / 조심하세요. / 제발 여기는 / 내려오지 마세요 ..  (교회당 뾰족탑, 1991.3.21)


  이오덕 님은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무척 자주 했습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이렇게 대꾸했지요. “선생님은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시면서, 왜 우리들보고는 책을 읽지 말라고 그러십니까?” 이오덕 님은 더 대꾸를 않으셨어요. 더 이야기를 한들 알아듣지 못할 테고, 그동안 숱하게 말했는데 또 물어 보니 씁쓸합니다.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까닭은, 그냥 무턱대고 책만 읽어댈 뿐 스스로 삶을 고치거나 바로잡기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 책이건 마냥 읽기만 하지 스스로 삶을 일구거나 가꾸지 않으니 책을 읽을 까닭이 없다고 말합니다.


  삶을 아름답게 고치거나 바로잡을 수 있다면 책이 없어도 됩니다. 스스로 삶을 일구거나 가꾸는 사람은 ‘남이 쓴 책’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책을 새로 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책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내 삶을 새롭게 일구거나 가꾸면서 내 이야기를 아름답게 갈무리해 ‘새로운 책’으로 태어나도록 할 때에 값지고 보람차며 사랑스럽습니다.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닌, 가슴으로 새기는 책입니다. 가슴으로 새기는 책이라기보다, 온몸으로 삶을 짓는 책입니다.


  지식만 쌓는다면, 책은 부질없습니다. 지식바라기로만 흐른다면, 책읽기는 덧없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려고 읽는 책입니다. 아름답게 살아가려고 짝꿍을 찾아 사랑을 속삭이며 아이를 낳습니다. 즐겁게 살림을 일구려고 일자리를 찾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가려고 아이들과 신나게 노래하고 놀면서 사랑을 가르치고 물려줍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하느님입니다. 나도 이녁도 모두 하느님입니다. 해님도 달님도 풀님도 벌레님도 모두 하느님입니다. 냇물님도 무지개님도 모두 하느님입니다. 그러니, 예배당을 지을 뿐 아니라 뾰족탑까지 세운다면, 내 안에 깃든 하느님이 이녁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과 만나지 못합니다. 서로 한마음으로 만날 때에 아름다운 나라가 됩니다. 다 함께 한넋으로 어깨동무를 할 적에 아름다운 마을이 됩니다.


.. 사람은 사람마다 / 입맛이 다르고 / 사람마다 버릇도 다르고 /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 저마다 먹고 싶은 대로 / 먹을 일이다 ..  (보리밥 먹기, 2001.6.11)


  숲과 어깨동무를 해요.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해요. 동무랑 나란히 어깨동무를 해요. 해하고도 비하고도 흙하고도 나무하고도 어깨동무를 해요.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숨결이에요. 우리는 누구나 푸른 숨결 뿜고 마시는 이웃이에요. 다 다른 자리에 있으면서 다 같은 사랑이에요. 다 같은 사랑이면서 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요. 이오덕 님은 고든박골에서 숨을 거두었고, 나는 동백마을에서 숨을 이어요. 같은 햇볕을 쬐고 같은 바람을 마셔요. 같은 냇물을 마시고 같은 흙을 밟아요. 4338.4.28.나무/4346.10.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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