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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는 그랬다

 


  1996년 1월에 군대에서 처음 휴가를 받아 강원도 양구를 벗어난 뒤, 지오피 경계근무를 마치고 다른 산속으로 주둔지를 옮기고서 두 번째 휴가를 받았는데, 나를 아끼던 고참 한 분이 한 가지를 부탁했다. 〈이등병의 편지〉 노랫말을 알고 싶은데 바깥에 나가면 알아보아 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하나 장만하고, 노랫말을 종이에 옮겨적어서 부대로 돌아갔다. 노랫말 적힌 종이를 고참한테 건네고, 그러니까 이이는 전역을 곧 앞둔 병장이었는데, 더듬더듬 노래를 불러 주었다.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니었지만, 고참은 노랫말을 새기고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김광석이 아닌데 내가 부르는 이 노래로도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는구나.


  고참은 테이프를 받아 이 노래를 몰래 한참 들었다. 김광석 님은 군부대로 공연을 다니시기도 했지만, 내가 있던 부대로 위문공연을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있을 무렵뿐 아니라 내 앞에 다른 이들 있을 적에도, 강원도 양구에서도 한참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간 비무장지대 아닌 ‘완전 무장지대’에서도 영토가 남녘이 아닌 북녘 경계에 있던 우리 부대로는 참말 어느 누구도 위문공연을 오지 않았고, 그런 일도 없었다 한다. 우리 부대에서는 ‘위문공연’이라는 말조차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김광석 님 노래는 부대에서 ‘불온노래’였고, ‘반입금지 물품’ 가운데 하나가 김광석 님 노래테이프였다.


  언젠가 그 고참이 이 노래테이프를 듣다가 하사관한테 걸려서 빼앗겼다. 노래테이프를 부대로 갖고 들어온 나까지 하사관한테 불려갔다. 한참 꾸지람을 듣고 얼마 뒤, 하사관이 이 노래테이프를 들어 보았는지, 아무 말 없이 돌려주었다. 불온노래요 반임금지 물품 목록에 든 노래태이프였지만, 아무 말썽이 없이 지나갔다.


  이 노래테이프는 여러 사람 손을 거치면서 우리 중대에서 그야말로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돌아갔다. 이등병에서 일등병이 되고, 어느덧 병장이 되고 여섯 달 뒤에 전역할 무렵, 내가 아끼는 후배한테 이 노래테이프를 물려주었다. 이 노래테이프는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너무 늘어져서 못 듣게 되었을까.


  그때에는 그랬다. 이 노래테이프가 걸릴까 걱정한 고참들은 겉에 붙은 스티커를 박박 벗겼다. 이렇게 하면 안 걸릴까 싶어. 그런데, 내무반검사를 하는 행정보급관이나 중대장이나 하사관은 ‘스티커를 벗긴 노래테이프’를 오히려 더 의심하고 빼앗는다. 참말, 그때에는 그랬다.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살아서 바깥으로 돌아가려고 노래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4347.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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