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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2] 어른읽기

― 무엇을 보여주고 가르치는가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나옵니다. 햇볕이 따사로운 날, 이웃마을과 논둑길을 천천히 달리다가 면소재지로 옵니다. 면사무소에 살짝 들르는데, 큰아이가 면내 초등학교를 보더니 “놀이터 가자!” 하고 외칩니다. 갈까? 큰아이는 혼자 외치고는 혼자 씩씩하게 초등학교 쪽으로 달립니다. 초등학교 울타리를 따라 놀이터가 있거든요. 큰아이가 앞서 달리고 작은아이가 뒤따릅니다. 미끄럼틀을 타고 시소를 탑니다. 너희는 참 잘 노는구나 하고 속으로 말합니다. 아이들 놀이터이기에 나는 아무것도 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여럿 한꺼번에 올라가도 무너지지 않으니 어른도 올라가서 놀아도 되겠지 싶으나, 그래도 아이들 놀잇감을 어른이 건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끄러미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놀이터와 시골 초등학교를 둘러싼 나무를 살펴봅니다.


  하늘 높이 쭉쭉 뻗은 나무가 있습니다. 정원사가 했을는지 교사가 했을는지 학교지기가 했을는지, 반듯반듯하게 가지치기를 한 나무가 있습니다. 남쪽 바다 가까이 있는 시골에서 흔히 보는 가시나무가 이곳에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가시나무가 가시나무답지 않습니다. 둥그스름하게 가지치기를 했고, 위와 아래에 동그라미를 둘 만든다면서 억지로 가지를 베고 없앤 티가 또렷합니다.


  내 어린 날 다닌 국민학교를 문득 떠올립니다. 그래요, 1980년대에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서도 이처럼 ‘동그랗게 깎은 나무’를 늘 보았습니다. 학교나 관청 같은 건물에 으레 이런 ‘동그랗게 깎은 나무’가 있습니다. 늘 이런 나무를 쳐다보면서 학교를 다니다 보니, ‘나무는 이렇게 동그스름하게 생긴’ 줄 알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동그란 나무’가 끔찍하게 가위질을 받은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가까이에서 가시나무를 들여다보니, 잎이며 꽃망울이며 가지이며 생채기투성이입니다.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적에 ‘동그스름한 모양새가 예뻐 보이도’록 하자니, 이렇게 잎과 꽃망울과 가지 모두 다칠밖에 없습니다. 마치 다 다른 아이들을 똑같은 교실에 집어넣고 똑같은 교과서만 가르치면서 틀에 따라 자르고 늘리고 하는 꼴이랑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늘 평균을 말합니다. 더도 덜도 아닌 평균만큼 하라고 말합니다. 잘나지도 못나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도 어른들도 잘나지 않고 못나지 않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제 결대로 살아갑니다. 잘 달리는 아이가 있고, 잘 걷는 아이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호미질을 잘 할 테고, 누군가는 낫질을 잘 할 테지요. 누군가는 글을 잘 쓸 테고, 누군가는 밥을 잘 지을 테지요. 누군가는 손놀림이 좋고, 누군가는 발놀림이 좋습니다. 누군가는 키가 작고, 누군가는 덩치가 큽니다.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빛을 뽐내면서 활짝 웃습니다. 다 다른 아이를 다 같은 틀에 끼워맞출 수 없습니다.


  학교에 두는 나무를 죄다 똑같은 틀에 따라 깎고 자르고 다듬는 모습은, 다 다른 아이를 이렇게 깎고 자르고 다듬는 모양새를 보여준다고 느낍니다. 몇몇 나무는 가까스로 쭉쭉 뻗으며 자라지만, 웬만한 나무는 우듬지가 없습니다. 머리가 뎅겅 잘립니다. 소나무는 옆으로 눕히고, 이리저리 휘어지게 합니다. 나무가 나무답게 자라지 못하면서 아픕니다. 나무가 나무다움을 잃으면서 앓습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학교를 다닐까요. 아이들 마음에 무엇이 깃들까요. 아이들이 아픈 소리는 누가 듣나요. 아이들이 앓는 모습은 누가 알아채나요.


  어른들은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어떻게 자라기를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사회를 바보스레 어지럽히면서 아이들을 죽음터로 내몰지 않나 궁금합니다. 여느 자리 여느 때 여느 마을 여느 학교 모양새가 바로 어른들 모습이지 싶습니다. 여느 자리 여느 때에 억지스러운 틀을 짜기에, 아이들은 제 빛을 잃으면서 ‘틀에 박힌 붕어빵’과 같은 넋이나 몸짓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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