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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911) 생물학적 1 : 생물학적인 성장을 거쳐서


즉, 결코 각자의 생물학적인 성장을 거쳐서 이 시설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리엘 도르프만,아르망 마텔라르/김성오 옮김-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새물결,2003) 75쪽


 각자의 생물학적인 성장을 거쳐서

→ 저마다 어른으로 자라서

→ 저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 자기 나이를 먹어 가는 가운데

 …



  생물학이든 물리학이든 ‘-적’만 붙이면 ‘생물학적’도 되고 ‘물리학적’도 됩니다. ‘철학적’이나 ‘교육학적’이나 ‘문학적’도 되겠지요. 이처럼 ‘-적’은 한자로 이루어진 낱말 뒤에 아주 잘 들러붙습니다. 이런 쓰임새가 예부터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삶터에 이와 같이 두루 쓰인 때는 일제강점기부터이지 싶습니다. 이에 앞서는 우리 말글 어느 자리에도 ‘이런 적’이나 ‘저런 적’ 같은 말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적’을 붙이지 않고 생각과 뜻을 두루 펼쳤으며, ‘-적’이라는 씨끝은 아랑곳하지 않고 느낌과 마음을 골고루 나누었습니다.


  한국말이나 한겨레 말씨가 아닌 ‘-적’붙이인 터라, 귀로 듣거나 글에서 읽는 ‘-적’붙이 말투는 우리 삶이나 발자취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깊이 뿌리를 내려 하지만, 이 말투는 앞으로도 한겨레 말씨가 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예부터 지식인이 지식을 자랑하면서 쓰던 말투요, 이제는 신문과 방송과 책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는 말투일 뿐입니다. 그러면, 이런 말투를 왜 신문과 방송과 책에서 아무렇지 않게 쓸까요? 신문과 방송과 책을 지식인이 거머쥐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도 교과서를 지식으로 가르칠 뿐, 삶이나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아요. 학교에서는 입시교육을 할 뿐, 삶을 가르치거나 꿈이나 사랑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학교에서 한국말을 슬기롭게 가르치지 않으며, 우리 둘레 어느 곳에서도 한국말을 아름답게 주고받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생물학적 이론을 이용해서

→ 생물학 이론으로

→ 생물학 이론을 펼쳐

 생물학적 산소요구량

→ 생물이 살며 마시는 산소

→ 생물이 마셔야 하는 산소

 전직 대통령의 생물학적 죽음이 아닌

→ 죽은 옛 대통령이 아닌

→ 죽은 옛 대통령 이야기가 아닌

 12쌍둥이 임신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 열두 쌍둥이는 누구도 갖기 어렵다

→ 우리 몸으로는 열두 쌍둥이를 도무지 밸 수 없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생물학적’은 없습니다. ‘생물학(生物學)’만 올림말입니다. 이 낱말은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와 달리 ‘철학적’이나 ‘문학적’ 같은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실립니다.


  “생물학적인 성장을 거쳐서”와 비슷한 말꼴로 “철학적인 사유를 거쳐서”라고 말할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문학적인 숙성을 거쳐서”라고 말할 분 또한 틀림없이 있을 테지요. “윤리학적인 반성을 거쳐서”라고 말할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몸이 자라면서”나 “깊이 생각을 해서”나 “문학으로 곰삭혀서”나 “마음 깊이 뉘우쳐서”처럼 꾸밈없이 말을 하거나 쉽게 글을 쓰는 분들은 차츰 줄어듭니다. 지식인부터 지식을 자랑하듯이 글을 쓰고, 여느 사람은 지식자랑 말씨를 흉내냅니다. 학교에서 교사는 아이들하고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말을 나누지 못하며, 여느 어버이도 아이들과 고운 말을 좀처럼 못 나눕니다. 문학을 하건 철학을 하건 과학을 하건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기자라고 해서 남다르지 않고, 조용히 글쓰기를 즐기는 숱한 사람들 또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사람이지만 한국사람으로서 우리들은 스스로 한겨레 말투를 잊습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글투를 내버립니다. 우리 삶에서 우리 말이 뿌리내리도록 힘쓰지 못할 뿐 아니라, 가로막기까지 합니다. 몸뚱이는 커지고 지식은 늘며 돈은 가득가득 넘치지만, 커진 몸뚱이를 다루는 마음결이 밑바닥입니다. 지식을 가누는 넋이 모자랍니다. 돈을 간수하는 손길이 차디찹니다. 4340.6.22.쇠/4342.8.22.흙/4347.6.30.달.ㅎㄲㅅㄱ.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곧, 저마다 나이를 먹고 자라서도 도무지 이 시설을 떠날 수가 없는 셈이다


‘즉(卽)’은 ‘곧’이나 ‘그러니까’로 손보고, ‘결(決)코’는 ‘조금도’나 ‘도무지’로 손봅니다. “성장(成長)을 거치며”는 ‘자라며’나 ‘크며’로 다듬고,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는 “떠날 수가 없고 만다”나 “떠날 수가 없는 셈이다”나 “떠날 수가 없다”로 다듬어 줍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520) 생물학적 2 : 생물학적 아버지


물론 생물학적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없겠지만 아이의 어머니에게 남편에 대해 물어도 확실한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노 아야코/오근영 옮김-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리수,2009) 36쪽


 생물학적 아버지가 없는 아이

→ 아버지가 없는 아이

→ 저를 낳은 아버지가 없는 아이

→ 짝꿍이 된 아버지가 없는 아이

 …



  아프리카에서 살아가는 퍽 많은 아이들은 ‘어머니는 누구인지 알’지만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보기글입니다. 이리하여, 이 보기글에서는 이 대목을 더 뚜렷하게 말하려는 뜻에서 “생물학적 아버지가 없는”처럼 적었습니다.


 생물학으로 따지는 아버지

 생물학으로 나누는 아버지

 생물학에 따른 아버지


  그러니까, 생물학으로 보았을 때 남자와 여자로 나누니, “생물학으로 나누는 아버지”와 “생물학으로 나누는 어머니”가 있다는 소리로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나누는 말마디는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꼭 이와 같이 나누어야만 “네 참 아버지가 누구”이고 “너를 낳은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가리거나 밝히는 말마디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태어나게 한 아버지

 씨를 준 아버지

 씨를 뿌린 아버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예부터 “씨를 준” 사람을 놓고 사내라 했으니, 이 자리에서도 “씨를 준 아버지”라 하면 알맞으리라 싶습니다. 또는 “씨를 뿌린 아버지”라 할 수 있습니다. “씨를 남긴 아버지”라 해도 됩니다. 이런저런 꾸밈말 하나 없이 ‘아버지’라고만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2.8.22.흙/4347.6.3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마 저를 낳은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없겠지만, 아이 어머니한테 남편이 누구인지 물어도 뚜렷이 말을 못하는 때가 잦다


‘물론(勿論)’은 ‘뭐’나 ‘마땅한 소리이지만’이나 ‘아마’로 다듬고, “아이의 어머니에게”는 “아이 어머니한테”로 다듬습니다. “남편에 대(對)해 물어도”는 “남편이 누구인지를 물어도”나 “남편은 무얼 하는지 물어도”로 손질하고, “확실(確實)한 대답을 못하는 경우(境遇)”는 “뚜렷이 대답을 못하는 때”나 “제대로 말을 못하는 때”로 손질해 줍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684) 생물학적 3 : 생물학적인 형식


생물학적인 형식은 개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나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생물학적인 형식을 뛰어넘어 영혼의 교감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이루리-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북극곰,2014) 117쪽


 생물학적인 형식

→ 생물학에 따른 형식

→ 생물학 틀로 보면

→ 겉으로 보면

→ 겉모습으로는

→ 몸뚱이를 보면

 …



  이쪽은 개이고 저쪽은 사람이며 그쪽은 나무라 한다면, 이는 겉으로 바라보면서 나누는 틀입니다. 또는 눈으로 살피면서 가르는 모습입니다. 굳이 “생물학적인 형식”과 같이 어렵게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한 마디로 ‘겉모습’이나 ‘생김새’로 쓰면 됩니다. 쉽게 쓰면서 쉽게 생각을 나눕니다. 쉽게 쓰는 글에서 고운 빛이 흐릅니다. 4347.6.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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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면 개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나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과 믿음은 겉모습을 뛰어넘어 넋으로 사귀도록 이끕니다


‘형식()’은 ‘틀’이나 ‘모습’으로 다듬습니다. ‘하지만’은 ‘그러나’나 ‘그렇지만’으로 바로잡습니다. ‘진정(眞正)한’은 ‘참된’이나 ‘참다운’으로 손보고, “영혼(靈魂)의 교감(交感)을 가능(可能)하게 만듭니다”는 “넋으로 사귀도록 이끕니다”나 “마음으로 사귀도록 이끕니다”로 손봅니다. ‘우정(友情)’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믿음’으로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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