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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왜 자꾸 읽는가



  어떤 사람은 책을 자꾸 읽습니다. 왜 자꾸 읽을까요. 자꾸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꾸준히 읽습니다. 왜 꾸준히 읽을까요. 꾸준히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새롭게 읽습니다. 왜 새롭게 읽을까요. 새롭게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안 읽습니다. 안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멀리합니다. 책을 멀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등집니다. 등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겉보기로는 똑같을는지 모르지만, 속보기로는 사뭇 다릅니다. ‘자꾸’ 읽을 때와 ‘꾸준히’ 읽을 때와 ‘새롭게’ 읽을 때에는 참으로 다릅니다. 같은 책을 열 차례 읽는데, 그저 ‘자꾸’ 읽는다면 무엇을 얻을까요? ‘꾸준히’ 읽을 때하고 ‘새롭게’ 읽을 때에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책을 안 읽더라도 그냥 ‘안’ 읽을 때하고 ‘멀리할’ 때하고 ‘등질’ 때는 더없이 다릅니다.


  누군가는 경상도 밀양 송전탑 이야기를 모르쇠로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멀리합’니다. 누군가는 ‘등질’ 테지요. 경상도 밀양에는 송전탑 때문에 말썽이 있으나, 전국 곳곳에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와 골프장과 온갖 나쁜 것들 때문에 말썽이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터지는 온갖 아픈 일들에 우리는 얼마나 마음을 기울일까요? 어느 한 곳에만 마음을 기울이면 될까요? 몇 군데에만 마음을 쓰면 될까요? 내가 사는 곳하고 가까운 곳이라든지, 내가 아는 사람이 돕는 일만 마음을 두면 될까요?


  어떤 모습을 가르치거나 일깨우려고 다시 되풀이하는 삶이 있습니다. 한자말로는 ‘윤회’라고 합니다. 윤회란 쳇바퀴질입니다.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가 똑같이 달릴 수밖에 없듯이, 사람도 쳇바퀴에 갇히면 똑같이 살기를 되풀이합니다. 쳇바퀴질을 멈추면 바깥으로 나올 수 있으나, 다람쥐도 사람도 바르게 살피지 못하니 깨닫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터라 삶을 바꾸지 못합니다.


  날마다 늘 새롭게 피어나면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될 때에 비로소 ‘삶’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삶이 될 때에는 책읽기가 언제나 ‘새롭게 읽는 삶’입니다. 삶이 될 때에는 노래하기가 언제나 ‘새롭게 노래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삶을 찾고 삶을 이루는 사랑을 느껴서 밝히는 빛이로구나 하고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지식으로만 머릿속에 넣는 책읽기라면 쳇바퀴질하고 똑같습니다. 회사나 예배당을 그저 다니기만 하는 모습도 쳇바퀴질하고 똑같습니다. 4347.8.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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