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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따스하고 너그럽게



  겨울에는 추운 고장에 눈이 펑펑 내려서 쌓입니다. 추운 고장은 겨울마다 눈나라가 됩니다. 겨울이 되어도 따스한 고장에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습니다. 눈발이 비친다 싶어도 어느새 햇볕에 사르르 녹습니다.


  추운 고장은 추운 날씨를 견딜 수 있는 나무가 자랍니다. 따스한 고장은 따스한 날씨를 즐기는 나무가 자랍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추운 고장은 추운 날씨를 견딘다기보다 추운 바람을 즐기는 나무가 자란다고 할 만합니다.


  동백나무는 볕이 잘 들고 따스한 고장에서 잘 자랍니다. 춥거나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에서는 동백나무가 바람을 견디지 못합니다. 배롱나무도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합니다. 유자나무라든지 석류나무도 차가운 바람에 그만 죽기 일쑤입니다. 이러한 나무를 추운 고장에서 키우자면 몹시 어렵습니다. 그런데, 동백나무나 배롱나무나 유자나무나 석류나무를 제법 추운 고장에서도 키워서 돌보는 사람이 있어요. 이들은 어떻게 이러한 나무를 돌볼 수 있을까요.


  추운 고장이라 하더라도 마을마다 날씨가 다릅니다. 마을마다 날씨가 다르기도 하지만 집집마다 바람과 볕이 다릅니다. 마을에 나무가 우거져서 숲정이가 깊거나 넓다면, 이러한 마을에는 찬바람이 한결 적게 붑니다. 볕이 잘 드는 자리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나무를 알맞게 심은 다음 바깥바람을 가리도록 한다면, 이러한 보금자리는 추운 고장에 있어도 다른 데와 견주어 퍽 따스합니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없이 겨울바람을 고스란히 맞는 데에는 동백나무도 석류나무도 심을 수 없지만, 찬바람을 즐거이 맞아들이면서 자라는 나무를 바깥에 넓게 두르면서 안쪽에 여러 가지 나무를 알맞게 어우를 수 있으면, 안쪽에는 포근한 기운이 돌기에 따스한 고장에서 잘 자라는 나무도 심어서 돌볼 수 있어요.


  나무를 살피는 손길은 사랑스러운 손길입니다. 나무 한 그루를 알뜰히 살피는 눈길은 믿음직한 눈길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사랑스러운 손길로 돌보고, 믿음직한 눈길로 가르칩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스러운 손길을 받고 믿음직한 가르침을 물려받습니다.


  학교를 오래도록 보내야 잘 배우지 않습니다. 학원을 여러 군데 다녀야 제대로 배우지 않습니다.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따스히 돌볼 수 있을 때에 제대로 배웁니다. 삶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너그러이 안을 수 있을 적에 제대로 가르칩니다.


  서홍관 님이 빚은 시집 《어머니 알통》(문학동네,2010)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베푼 사랑을 알알이 엮은 시를 담고,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고이 아로새긴 노래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늙은 어머니를 흙으로 보낸 늙은 아이(아저씨가 된)는 문득 어릴 적을 돌아봅니다. “나에게도 꿈이 하나 있지. // 논두렁 개울가에 / 진종일 쪼그리고 앉아 // 밥 먹으라는 고함소리도 / 잊어먹고 // 개울 위로 떠가는 / 지푸라기만 / 바라보는 // 열다섯 살 / 소년이 되어보는(꿈).” 열다섯 살 어린이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나이 지긋한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된 시인은 어떤 꿈을 돌아볼까요.


  어머니한테서 받은 사랑을 알알이 가꾸어 내 아이를 낳아 돌봅니다. 어머니가 가르친 이야기를 고이 건사하면서 내 아이를 낳아 가르칩니다. 어머니가 베푼 사랑을 내 이웃하고도 나눕니다. 어머니가 가르친 이야기를 내 동무하고도 주고받습니다.


  ‘어머니 알통’을 되새기는 늙은 시인은 무덤 앞에 섭니다. 어머니 무덤일까요. 아는 이 무덤일까요. 이름을 모르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 무덤일까요. “무덤 앞에 비석조차 없어 / 누구를 사랑했는지 / 누구를 미워했는지 / 알 길도 없이 // 새소리만 들리는 것이 / 더더욱 맘에 들었네(무덤).”


  따스한 햇살이 봄을 부릅니다. 따스한 햇볕이 겨울바람을 다독입니다. 따스한 햇발이 새싹을 틔웁니다. 따스한 햇귀가 멧새를 깨워 아침노래를 엽니다. 차가운 바람은 봄을 부르지 않습니다. 차가운 바람은 겨울을 더욱 춥게 합니다. 차가운 바람은 나무마다 겨울눈이 더 웅크리도록 누릅니다. 차가운 바람은 멧새한테 오들오들 떠는 추위만 더 몰아세웁니다.


  차가운 손길을 받으면서 기쁠 사람은 없어요. 차가운 눈길을 받으면서 즐거울 사람은 없지요. 차가운 소리를 들으면서 기운이 날 사람은 없습니다. 차가운 미움을 받으면서 일어설 사람은 참말 없습니다.


  나한테 돈이 더 있어서 남을 돕지 않습니다. 나한테 사랑이 있어서 남을 돕습니다. 내가 돈을 많이 번 다음에 이웃을 도울 수 있지 않습니다. 오늘 나한테 돈이 없더라도 나한테 사랑이 있으면 이웃을 도울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이름이 높거나 힘이 세지 않습니다. 돈이 많아야 책을 사서 읽지 않습니다. 돈이 많아도 스스로 바쁘거나 고단하거나 사랑이 없는 사람은 책을 못 읽습니다. 돈이 없지만 스스로 즐겁거나 웃거나 노래하면서 사랑을 키우는 사람은 책방에 서서 책을 읽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든 헌책방에 가서 책을 장만하든 동무한테서 빌려서 읽든 합니다. 왜냐하면, 책은 스스로 마음을 일으켜서 읽기 때문입니다. 남이 읽으라고 해서 읽는 책은 가슴으로 스며들지 않습니다. 내가 읽으려고 하는 책만 가슴으로 스며듭니다.


  “큰아이 취학통지서를 받으니 / 어떤 엄마가 가슴이 철렁하더란다. // 아이 손을 잡고 입학식 가던 / 아침 이슬 같은 두근거림은 사라지고 // 수학은 어떻게 시켜야 할지, / 영어는 언제부터 시작해야 할지, / 중학교는 어디로 보내야 할지, / 논술은 어떻게 시켜야 할지(취학통지서).” 오늘 우리가 이곳에서 할 일은 내 삶을 손수 가꾸는 일이면서, 우리 아이들 삶을 아이들이 앞으로 손수 가꿀 수 있도록 가르치면서 돌보는 일입니다. 남한테 맡길 삶이 아닙니다. 손수 들여다보고 헤아리면서 북돋울 삶입니다. 밖에서 찾는 노래가 아니라 스스로 부를 노래입니다. 먼 데에서 찾는 여행이 아니라, 내 보금자리에서 이룰 마실입니다. 저마다 제 보금자리를 알뜰살뜰 일군다면, 이웃집 나들이가 즐거운 여행이 됩니다. 이웃집을 오가는 길이 즐거울 수 있으면, 마을살이가 아름답습니다. 마을살이가 아름다우면 두레와 품앗이는 저절로 이룹니다.


  따스하고 너그럽게 나아가는 길이 즐겁습니다. 따스하고 너그럽게 내미는 손길이 사랑스럽습니다. 따스하고 너그럽게 일구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즐겁게 웃으면서 읽는 책이 가슴 깊이 새록새록 스며듭니다. 즐겁게 웃으면서 하는 일이 가슴 깊이 기쁘게 뿌리내립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햇볕이 있어서 환하고 따스합니다. 사람들 마음에도 해님 같은 사랑이 퍼질 때에 서로 돕고 아끼는 삶으로 거듭납니다. 4347.1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




어머니 알통

서홍관 저
문학동네 | 201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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