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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차돌 같은 아이들



  한겨울에도 아이들은 맨발로 놀기를 즐깁니다. 맨발로 얼음장을 밟고 싶습니다. 맨손을 찬물에 담가 놀고 싶습니다. 한겨울에 맨발과 맨손으로 놀다가 어느새 아이들은 손발이 꽁꽁 업니다. 빨갛고 차갑지요. 그런데 이런 손발로도 놀이를 그치지 않습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아이들은 때와 철을 가리지 않고 놉니다. 마냥 놉니다. 더워도 놀고 추워도 놀아요. 더운 철에는 온몸을 땀으로 적시면서 놉니다. 추운 철에는 온몸이 꽁꽁 얼어도 놉니다. 어른이 된 사람도 어릴 적에는 이렇게 놀았고, 오늘날 아이도 이렇게 놀며, 앞으로 태어날 새로운 아이도 이렇게 놀리라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아이들은 온몸으로 바람과 햇볕과 물과 바람과 흙과 풀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지식이나 말로 알려주어서 알거나 배우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몸을 움직여서 찬바람도 쐬고 땡볕도 받으면서 새롭게 배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언제나 놀아야 합니다. 추운 날에는 콧물이 얼어붙도록 놀고, 더운 날에는 땀에 젖은 옷을 하루에도 여러 벌 갈아입을 만큼 놀아야 합니다.


  전북 익산에서 조용히 삶을 짓는 문영이 할머님이 쓴 산문책 《내 뜰 가득 숨탄것들》(지식산업사,2014)을 읽습니다. 흰머리 할머니가 되어 지난날을 찬찬히 돌이키면서 쓴 글이 정갈합니다. 할머니는 “신접살이 어느 해였던가 그 집장 맛을 못 잊어 메주 한 덩이로 담그기 쉬운 찌엄장을 소꿉놀이하듯 담가 놓고, 고만고만한 아이들 손 잡고 봄마중 나물 찾으러 들에 나갔다. 옆집 아주머니는 우리 아이들은 고뿔 한 번 앓지 않는데서 ‘차돌’이라 불렀다(80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문득 그리운 낱말 ‘차돌’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요즈음에는 아이들을 가리켜 ‘차돌’이라 부르는 어른은 매우 드뭅니다. 아이들한테 ‘장군’이나 ‘공주’라고는 말해도, ‘차돌’이라 말하는 어른은 찾아볼 길이 없어요.


  도시이든 시골이든 길바닥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 보기 어려운 탓일까요. 이제는 흙으로 된 골목이나 고샅이 없어서, 그저 시멘트나 아스팔트만 있기 때문일까요. 아이들이 어디에서나 돌을 주워서 돌치기(비석치기)도 하고, 땅바닥에 돌멩이로 금을 긋도 온갖 놀이를 하던 즐거움이 사라졌기 때문일까요. 이쁘장한 돌은 주머니에 넣고 하루 내내 기쁘게 웃는 아이들이 사라졌기 때문일까요. 바닷가에 가야 비로소 조약돌을 구경할 수 있는 메마른 도시 문명 사회가 되었기 때문일까요.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수수합니다. 할머니는 이런 학문이나 저런 이론을 들먹이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오직 이녁 삶을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이든 어른이 젊은이와 어린이한테 이녁 슬기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글줄마다 알뜰합니다. “어느 해 산기슭에 박 한 붓을 놓고 늦가을에 가 보니 풀한테 잡혀 겨우 박 한 덩이가 열린 채 덩굴까지 말랐다. 그 박을 삶아 보니 예전에 보던 박처럼 결이 곱고 단단했다. ‘아하! 국수나무가 청정지역 지표수이듯, 바가지가 맑은 공기를 좋아하나 보다!’ 그래서 요즘 박은 겉은 고운데 속이 거칠어, 누구를 선뜻 부를 수가 없어 몇 해째 박 농사가 시들해졌다(91쪽).”


  할머니 이야기에 나오는 ‘박 한 붓’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아주 어릴 적에 이 말마디를 얼핏 들은 듯합니다. 그렇지만 한국말사전에는 ‘붓’을 가리키는 낱말이 없습니다. 글씨를 쓰는 연장을 가리키는 붓은 있으나, 박씨를 땅에 묻는 일을 가리키는 붓은 안 나옵니다. ‘박 한 붓’을 아는 할머니가 흙으로 돌아가면, 앞으로 이런 말을 쓰는 사람도 사라질 테고, 이러한 한국말이 있는지 떠올릴 수 있는 사람도 없겠구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박씨를 심어서 바가지를 얻을 수 있는 사람도 사라질 테지요. 바가지를 얻고 싶어서 박씨를 심을 사람도 사라질 테지요. 공장에서 찍는 플라스틱 조각만 바가지인 줄 아는 사람만 있을 테지요.


  할머니 이야기는 수수하면서 투박합니다. 흔하면서 너른 이야기입니다. 다만, 오늘날에는 더 흔하지 않은 이야기요, 이제는 그리 너르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손수 들이나 숲에 가서 꽃다지를 캐서 나물로 삼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만큼 아주 드물기 때문입니다. “꽃다지가 노래에만 있는 나물이 된 것처럼 이제 엉겅퀴마저 자취를 감추는가 싶어 애답다. 독일은 들에 난 풀 한 포기도 마음대로 손대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는다고 한다. 우리 나라도 보호할 나무와 풀을 정하고 지킬 일이라고 생각한다(175쪽).” 독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는 갯벌도 냇물도 바다도 땅도 숲도 나무도 모두 살뜰히 건사하려고 몹시 애씁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일자리 만들기’와 ‘경제개발’만 된다면 무엇이든 모조리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립니다. 4대강사업 한 가지를 들자면, 이런 뻘짓을 하느라 수십 조 원에 이르는 돈을 퍼부었는데, 이를 다시 바로잡자면 또 수십 조 원에 이르는 돈을 퍼부을 테지요. 오직 토목공사에만 이 같은 돈을 퍼붓습니다.


  돈을 바라보니까 오직 돈만 따지는 셈일 텐데, 돈을 바라본대서 돈이 우리한테 오지 않습니다. 삶을 알차게 가꾸면서 곱게 일굴 때에 비로소 삶이 살아나면서 돈은 돈대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공장을 잔뜩 지어서 다른 나라에 수십억 원어치 상품을 내다 팔면 언뜻 보기에는 경제성장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공장을 짓느라 숲과 들을 망가뜨리고, 공장을 돌리느라 매연과 폐수가 쏟아지며, 공장으로 원재료를 실어나르고 공장에서 물건을 옮기느라 찻길을 닦고 비행기를 띄울 테니, 다시금 들과 숲이 망가지면서 매연과 폐수가 쏟아집니다. 수십억 원어치 상품을 파는 동안 우리가 잃거나 잊거나 무너지는 삶터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와 달리, 다른 나라에 아무것도 팔지 않으면서 모든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지어서 누릴 때를 생각해 봅니다. 이때에는 경제성장은 없으나 수입도 수출도 없을 뿐 아니라, 무역에 기댈 까닭이 없는데다가, 맑은 물과 바람을 늘 마십니다. 몸이 아플 일이 없고, 우리 삶터는 아주 깨끗합니다.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없으나 튼튼한 몸과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언제나 즐겁지요. 튼튼한 몸과 아름다운 마음에서는 노래가 절로 샘솟고, 노래가 샘솟는 삶에서는 이야기를 기쁘게 지어요. 이 이야기는 문학이 될 수 있고 춤이나 연극이나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공장을 지어 경제성장을 하고 토목사업으로 일자리를 만든다고 할 적에는 아무런 문학도 문화도 삶도 사랑도 꿈도 없습니다. 그저 돈만 있습니다. 돈만 있는 나라에서는 매캐한 바람과 지저분한 물이 흐릅니다. 아이도 어른도 몸이 망가질 테고 병원에 기대야 할 테며 삶에서 웃음과 노래가 사그라질 테지요.


  삶을 짓는 어른이 차돌 같은 아이를 낳아서 돌봅니다. 삶을 사랑으로 가꾸는 어른이 차돌 같은 아이를 키우면서 웃습니다. 삶을 꿈으로 일구는 어른이 차돌 같은 아이한테 맑고 밝은 이야기를 물려줍니다. 4348.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지는 꽃도 아름답다

문영이 저
달팽이출판 | 200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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