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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22 휘파람·바람·파람



  예부터 한겨레는 바람을 잘 읽었습니다. 흔히 뱃사람만 바람을 잘 읽은 줄 잘못 여기는데, 뱃사람뿐 아니라 뭍사람이나 멧사람이나 들사람 누구나 바람을 잘 읽어야 합니다. 바람을 잘 읽지 못하면 씨앗을 심거나 뿌리지 못합니다. 바람을 잘 읽지 못하면 애써 빨래를 해서 옷가지나 이불을 널었다가 죄 소나기에 흠뻑 적시고 맙니다.


  바람을 읽는 사람은 구름을 읽습니다. 구름을 읽는 사람은 비를 읽고, 아침과 저녁을 읽습니다. 손목시계나 괘종시계가 있지 않아도, 바람을 읽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때를 읽습니다. 바람을 읽기에 이 지구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아차립니다.


  바람을 읽지 못하면 옛사람은 아마 모두 죽었을 테지요. 이를테면, 모든 숲짐승과 풀벌레는 바람을 매우 잘 읽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바람을 못 읽으면 ‘내 몸내음’을 바람에 실려 퍼뜨리니, 큰 짐승이나 벌레가 나를 잡아먹고 말아요. 범이나 이리나 늑대한테서 살아남으려고 할 적에도 바람을 읽어야 합니다. 예부터 숲길이나 멧길을 다닐 적에는 맞바람으로 다녔지, 등바람으로 다니지 않았습니다.


  바람이란 무엇일까요? 바람은 모든 냄새를 실어 나릅니다. 바람은 모든 물기를 실어 나릅니다. 바람은 모든 숨결과 기운을 실어 나릅니다. 그래서 바람을 읽는 사람은 숨결과 기운을 읽는 사람입니다. 바람을 읽는 사람은 나한테 밥이 될 것을 읽을 뿐 아니라, 내 둘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차립니다. 버섯도감을 펼쳐야 ‘먹는버섯’인지 아닌지 알아채지 않습니다. 바람을 읽을 적에, 코와 온몸으로 버섯 기운을 느껴서 ‘먹는버섯’인지 아닌지 알아챕니다.


  어떤 목숨이든 바람을 마실 적에 숨결을 잇습니다. 바람을 목으로 넘겨야 숨이 살지요. 들과 숲에서 흐르던 바람은 내가 스스로 기운을 내어 맞아들일 적에 내 숨결이 되고, 내 목숨을 이룹니다. 내가 스스로 바람을 맞아들이지 않는다면, 바람은 그냥 떠도는 기운일 뿐입니다. 내가 스스로 바람을 맞아들이기에, 바람은 내 숨결이 되면서 내 목숨을 이루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 보금자리를 닦기 마련입니다. 저마다 제 마음이 맞는 자리에 삶터를 짓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늘 새롭게 마실 만한 바람이 흐르는 곳에 제 보금자리나 삶자리나 일자리나 놀자리를 이룬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삶은 어떤 바람을 마시려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라 하겠습니다.


  바람을 몸으로 받아들이면, 아주 빠르게 온몸을 돕니다. 바람 한 줄기는 빛과 같은 빠르기로, 또는 빛보다 더 빠르다 싶은 움직임으로 우리 몸을 휘돕니다. 우리 몸을 휘돈 바람은 다시 밖으로 나옵니다. 바람이 들고 나는 움직임이 얼마나 빠른지는 사람들 스스로 깨닫거나 헤아리지 못합니다. 다만, 바람이 아주 빠르게 들고 나기에 우리는 모두 살아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 몸밖(살갗)을 휘감던 바람 가운데 내가 스스로 기운을 내어 맞아들인 바람이 우리 몸속(내장과 뼈와 살)을 휘돌면서 빠져나옵니다. 바람은 늘 바람입니다. 산소도 이산화탄소도 아닙니다. 바람은 늘 바람입니다. 이 바람을 어느 만큼 내 몸이 맞아들여서 삭일 수 있느냐에 따라 내가 낼 수 있는 힘이 달라집니다. 바람을 오롯이 맞아들여서 온몸을 활활 태울 수 있으면 엄청난 힘이 솟습니다. 바람을 제대로 맞아들이지 못해 온몸이 불타오르지 못한다면, 아파서 앓아눕는 모습이 되지요. 아파서 드러누운 사람은 누구나 숨을 제대로 못 쉬어요. 아픈 사람은 바람을 제대로 못 마십니다. 튼튼한 사람은 숨을 아주 빠르게 거칠게 신나게 재미나게 기쁘게 많이 들이마십니다. 우리는 ‘밥’이 아닌 ‘바람’으로 움직이는 몸입니다. 바람이 있어야 헤엄을 치고 일을 하며 연장을 다루고 손을 놀리고 생각을 짓습니다. 잘 모르겠다면 운동선수를 보셔요. 운동선수는 운동하는 사이에 밥을 먹지 않습니다. 땀을 많이 흘려 물을 마시기는 하지만, 운동선수는 바람을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운동량이 달라집니다. 여느 일꾼도 이와 같아요. 숨(바람)을 어떻게 골라서 한꺼번에 힘을 모아 연장을 다루느냐에 따라 일매무새가 달라집니다. 시골에서 호미나 삽이나 괭이로 땅을 쫄 적에도 숨(바람)을 찬찬히 골라야 정갈하면서 수월하게 논밭을 갈 수 있습니다.


  휘감던 바람이 휘돌며 나올 적에 휘파람이 됩니다. 바람에는 아무 빛깔이나 무늬가 없다고 할 만한데, 우리가 올려다보는 하늘은 늘 파랗습니다. 바닷물은 하늘빛을 받아들여 하늘처럼 파랗습니다. 바람에는 아무 빛깔이나 무늬가 없다지만, 하늘을 이루는 기운이 바로 바람이기에, 바람빛은 파랑이라 할 만합니다. “파란 바람”을 마시는 몸이고, 우리 몸이 파란 바람을 마시다 보니, 우리 몸을 이루는 얼거리는 “파란 거미줄”과 같습니다. ‘파람’은 ‘휘파람’을 가리키는 옛말입니다.


  한겨레 뱃사람은 ‘새·하늬·마·높’이라는 곳이름(방향 낱말)을 썼습니다. 한국말로는 새(동)와 하늬(서)와 마(남)와 높(북)입니다. 어느새 이 한국말은 자취를 감추고 마는데, 이 한국말이 자취를 감추도록 ‘동서남북’이라는 한자말만 쓰게끔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이 내모는 까닭이 있으리라 느낍니다.


  네 갈래 바람 가운데 마녘(남녘)에서 부는 바람은 ‘마파람’입니다. ‘마바람’이 아닙니다. 왜 남녘바람만 ‘파람’일까요? 오늘날 사람으로서는 아주 오래된 낱말에 얽힌 수수께끼를 알 수 없지만, 남녘바람이 어떤 기운인가는 헤아릴 수 있습니다. 남녘바람이란, 그러니까 너른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란,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와서 여름과 첫가을을 밝히면서 보듬는 바람입니다. 이 땅에 따스하고 넉넉한 기운을 북돋우는 바람이 ‘마파람’입니다.


  휘파람은 무엇일까요? “노래가 되는 바람”이 휘파람입니다. 내가 스스로 받아들여서 내뿜는 바람을 노래로 바꿀 적에 ‘휘파람’입니다. 우리 삶터는 마파람을 마시면서 싱그러운 숲으로 피어나고, 우리 몸은 휘파람을 불면서 새롭게 깨어납니다. “파란 바람”이 들과 숲을 푸르게 가꿉니다. “파란 바람”이 우리 몸과 마음을 푸르게 짓습니다. 4348.2.2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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