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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25 세면서 생각하다



  ‘세다’라는 낱말은 소리값이 같으면서 여러 갈래로 씁니다. 먼저 “머리카락이 세다”처럼 쓰고, 다음으로 “얼마나 있는지 세다”처럼 쓰며, 마지막으로 “힘이 세다”처럼 씁니다. 이 가운데 “얼마나 있는지 세다”는 움직씨이고, 이를 이름씨로 바꾸면 ‘셈’이 됩니다. ‘세다’에서 ‘셈’으로 꼴을 바꾸면, 이 낱말은 “콩알을 셈하다”뿐 아니라 “값이 맞는지 셈을 하다”나 “네 셈이 맞는구나”라든지 “너희 셈이 깊구나”라든지 “셈을 옳게 따지다”라든지 “씨앗을 심고 갈무리하는 셈이 잘 들다”처럼 쓰임새가 늘어납니다. ‘세다 → 셈’인데, ‘셈’에서 다시 ‘셈하다’가 나오기도 합니다.


  ‘세다’와 ‘헤아리다’는 뿌리가 같습니다. ‘헤아리다’는 ‘헤다·혜다’에서 갈린 말입니다. 이 낱말들 ‘세다·헤다·혜다·헤아리다’는 밑뜻이 “어느 만큼 있는지 보다”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만큼 있는지 보기에, 숫자가 얼마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다·헤다·혜다·헤아리다’는 내 앞에 있는 것을 똑똑히 보거나 또렷하게 보는 모습을 나타내려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똑똑히 보거나 또렷하게 보기에 ‘제대로 가를’ 수 있고 ‘올바로 살필’ 수 있지요.


  이리하여 이 낱말은 ‘생각’이라는 낱말이 태어나게 이끕니다. ‘생각’이란 우리가 머리를 써서 마음속에 그리는 이야기일 텐데, 이는 ‘그릴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지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느끼고 보고 하나하나 가르거나 살피면서 생각이 태어난다’는 얼거리입니다.


  ‘셈’이라는 낱말은 “씨앗을 심고 갈무리하는 셈이 잘 들다”처럼 쓰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셈’은 ‘슬기’와 같습니다. ‘슬기’는 바르며 알맞고 또렷하게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보고 제대로 알아서 제대로 생각할 수 있으면 ‘셈·슬기’가 드는 흐름입니다. 아무것이나 머리로 지어서 마음에 생각을 그린대서 셈이 들거나 슬기가 들지 않습니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알아서 제대로 생각할 때에, 비로소 셈이나 슬기가 듭니다. 생각하는 사람일 때에 철이나 셈이 들지만, 생각을 바르며 알맞고 또렷하게 할 때에 철이나 셈이 들어요.


  올바로 생각하는 사람이 철이 듭니다. 올바로 생각해서 철이 드는 사람이 삶을 짓습니다. 옳고 바르고 헤아리는 사람이 셈이 듭니다. 옳고 바르게 헤아려서 셈이 드는 사람이 삶을 지을 길을 또렷하게 그립니다.


  ‘컴퓨터’라는 것이 한국에 들어올 적에 적잖은 이들은 이를 ‘셈틀’이라는 이름으로 쓰자고 했습니다. 조선일보라는 신문에서는 ‘컴퓨터’ 이름을 새로 짓는 ‘국민 설문조사’를 정부와 함께 했고, 이때에 나온 ‘국민 공모’ 이름은 ‘슬기틀’이었습니다. 말밑을 찬찬히 살피면 ‘셈틀 = 슬기틀’이고, ‘슬기틀 = 셈틀’입니다. 어느 이름을 쓰든 똑같습니다. 다만, ‘셈틀’은 컴퓨터라는 것을 처음 들여올 적에 과학자와 기술자가 손수 지은 이름이고, ‘슬기틀’은 신문사와 정부가 엄청나게 광고와 홍보를 해서 애써 지은 이름입니다. 이 가운데, 여느 자리에 있던 여느 사람이 지은 ‘셈틀’이라는 낱말은 아직 목숨을 잃지 않고 이럭저럭 이 낱말을 듣거나 아는 사람이 있으나, ‘슬기틀’이라는 낱말은 거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부에서 아무리 이 낱말을 퍼뜨리려고 하더라도 뒷받침하는 힘이 없습니다.


  하나를 세고 둘을 세면서 너와 나를 제대로 봅니다. 너와 나를 제대로 볼 줄 아는 눈길이기에, 이 눈길은 차츰 자라서 깊거나 너른 생각으로 뻗고, 이 생각을 가다듬고 추스를 때에 셈·슬기·철로 자랍니다. 4348.2.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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