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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 책넋 돌보기

39. 새로 읽는 책, 다시 읽는 책



  누구나 저녁을 맞이하고, 누구나 밤을 보내며, 누구나 새벽을 맞이합니다. 누구나 아침을 열고, 누구나 한낮 햇볕을 쬐며, 누구나 하루 내내 바람을 마십니다. 흐르는 시간을 멈춘 채 잠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흐르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똑같이 흐르는 시간을 타면서 하루하루 지내요.


  똑같은 하루는 없습니다. 해와 달과 날이 늘 다릅니다. 언제나 다르게 흐르는 하루이고, 늘 다르게 찾아오는 아침이자 낮이며 저녁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같을 수 없고, 오늘과 모레가 같을 수 없어요. 우리는 노상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면서 삶을 꾸린다고 할 만합니다.


  똑같은 하루는 없지만, 똑같은 하루인 듯이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달력에 적힌 날짜는 다르지만 어제와 오늘 이곳에서 하는 일이 똑같기 때문입니다. 철마다 날씨가 달라도 봄이건 여름이건 똑같은 일을 똑같은 때에 똑같은 곳에서 해야 한다면, 철이 달라도 달라지는 줄 못 느낄 수 있어요. 이를테면,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어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한 해 내내 똑같은 기계를 손에 쥐고 똑같은 물건을 찍어야 합니다. 버스나 기차를 모는 사람도 한 해 내내 똑같은 길을 몰아야 합니다. 비나 눈이 온다면 날씨가 다를 뿐, 해야 하는 일은 똑같아요.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어떠할까요? 학교를 오가는 하루는 날마다 똑같을까요? 날마다 똑같은 수업이고 똑같은 공부이며 똑같은 시험일까요? 똑같은 시험문제를 똑같이 외워서 똑같이 ‘안 틀리고 다 맞히도록 몸을 길들이는’ 하루를 보내는가요?


  리 호이나키 님이 에스파냐에서 ‘카미노 걷기’를 한 이야기를 담은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달팽이,2010)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걷기’는 오늘날 온 지구별을 두루 가로지르면서 퍼지는 ‘문화’가 됩니다. 한국에서도 제주 올레길 같은 시골길을 ‘오직 두 다리에 기대어 걸어서 다니는 나들이(여행)’를 아름다운 문화로 여기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아무래도 오늘날에는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 매우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걷기 여행’이 따로 생겼다고 할 만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예전에는 여행이든 마실이든 누구나 으레 두 다리로 걸으면서 다녔거든요. 멧등성이를 타거나 봉우리를 오를 적에도 스스로 걸어서 다녔고, 옆마을에 가든 먼 곳까지 가든 마땅히 걸어서 다녔어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경제생활이다. 어쩔 수 없이 자동차를 타야 하고, 그럼으로써 대지는 파괴된다. 또 그런 자동차에 실어 나르는 것에 의지하면 할수록 땅은 점점 더 황폐해진다. 이것에 대해서 좀 다르게 생각할 수 없을까? 한정된 자연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152쪽)?” 같은 이야기를 짚어 봅니다. 자동차를 타기 때문에 나쁠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두루 타는 오늘날 ‘따로 걸어서 다니는 여행이나 운동’을 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자동차만 타서는 여행이나 운동이 안 되는 줄 알아차리는 사람이 생겼다고 할까요. 자동차는 이곳에서 저곳까지 내 몸을 빠르게 옮겨 주는 구실을 톡톡히 하지만, 이곳과 저곳 사이에 있는 수많은 삶을 찬찬히 바라보지 못하도록 막는 구실까지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동차는 ‘교통’으로서 빠르게 다니도록 돕지만, 빠르게 다니는 만큼 삶읽기하고는 동떨어지는 셈입니다. 자동차를 타면 탈수록 이웃하고 멀어집니다. 자동차를 달리면 더 먼 곳까지 오갈 수 있으나, 바로 옆에 있는 이웃하고 만날 틈은 없어요. 자동차를 타면 한식구가 어디이든 수월하게 다닐 수 있으나, 막상 자동차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는 어려워요. 자동차에서는 ‘서로 얼굴을 마주볼’ 수 없으니까요.


  “텔레비전은 사람들이 직접 할 수 있는 것에서 멀어지게 설계되어 있다. 그런 계략 때문에 당신이 직접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고 듣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텔레비전이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아닐까 한다(83쪽).” 같은 이야기를 짚어 봅니다. 텔레비전과 손전화가 있어서 우리는 누구나 ‘내 방에 앉아’ 온갖 일을 할 수 있고, 온갖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굳이 집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도 텔레비전과 손전화만 있으면 걱정이 없어요.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남 이야기’만 들여다보느라 ‘내 이야기’를 손수 짓는 길하고 멀어져요. 손전화를 켜서 목소리만 주고받는 사이, 내 동무와 이웃하고 숨소리를 느끼면서 바람과 햇살과 하늘과 땅을 함께 살피는 길하고 멀어집니다.


  “새로 지은 최근 건물들은 모든 것이 엄격하게 표준화되어 있다. 공장에서 생산된 것이다. 하지만 옛 건물들을 인간의 손으로 직접 지은 것이다 … 오늘날 임금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건축 자재들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 그러나 예술적 재능과 상상력을 겸비한 옛날 장인들은 끊임없이 돌 하나하나를 짜 맞춰 하나의 전체를 만들어 냈다(438∼439쪽).” 같은 이야기를 짚어 봅니다. 학교에서 모든 교실은 똑같이 생깁니다. 다르게 생긴 교실이 없습니다. 학교에서 입히려는 옷은 모두 똑같습니다. 크기만 다를 뿐 모든 학생은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머리카락 길이마저 똑같이 맞춥니다. 가슴에 붙이는 이름표는 다를 테고, 얼굴 생김새나 살빛은 조금씩 다를 테지만, 멀리서 보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요새는 너나 할 것 없이 ‘흰 살결’이 되려고 애씁니다.


  우리한테는 똑같은 하루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한 해 삼백예순닷새는 모두 다른 날이고, 한 해가 지나면 새로운 해가 찾아옵니다. 열세 살 나이는 꼭 한 번이고, 열여섯 살 나이도 꼭 한 번입니다. 어른도 서른 살이나 마흔 살이나 쉰 살은 꼭 한 번만 누립니다. 우리 모두 어느 하루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다니는 길은 서울이나 부산이나 거의 똑같이 생깁니다. 학교와 회사와 가게도 어디나 거의 똑같이 생깁니다. 교과서와 텔레비전과 손전화에 나오는 이야기도 어느 고장이든 다 똑같습니다. 아파트도 똑같이 생기고, 자동차도 똑같이 생겨요. 고속도로도 똑같이 생기고, 책방도 똑같이 생기며, 빵집이나 찻집이나 닭집조차 ‘똑같은 이름이 걸린 가게’만 퍼집니다. 빵집지기마다 다 다른 손맛을 살려서 빚는 빵을 찾아보기 어려운 오늘날입니다.


  예전에는 시골이나 도시 모두 ‘다 다른 길’이었습니다. 마을사람이 손수 닦은 골목이나 고샅은 마을마다 다 다른 모습이며 얼거리였어요. 시골 논밭도 땅에 따라 다 다른 모습이었고, 살림집과 마당과 꽃밭도 사람마다 다 달리 가꾸었어요. 오늘날에는 시골 논밭을 거의 똑같은 네모난 틀로 짜맞추었고, 집을 손수 짓는 사람이 거의 사라져서, 건설업자가 똑같이 만든 집을 돈만 치러서 장만하거나 빌립니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이 스스로 조금씩 깨닫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숨결이고 사람인데, 학교와 사회와 마을 어디에서나 ‘똑같은 틀’로 우리를 가두려 한다고 느낍니다. 이리하여 여행을 다녀도 자동차나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먼 곳을 훌쩍 다녀오는 틀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천천히 걸으려 합니다. 누군가는 더 빨리 걸을 수 있고 누군가는 더 느리게 걸을 수 있어요. 걷다가 끝까지 못 갈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저 걷고, 걷는 만큼 느긋하게 둘러보면서, 아늑하게 생각을 키우려 하지요.


  똑같은 책은 없습니다. 모든 책은, 이 책을 손에 쥐어 읽는 사람들 마음씨와 눈길과 생각에 따라 ‘다 다르’면서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가 됩니다. 새롭게 읽으면서 새롭게 살고, 다시 읽으면서 내 넋을 다시금 가꿉니다. 4348.4.1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청소년과 함께 책읽기)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

리 호이나키 저/김병순 역
달팽이출판 | 201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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