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체보기
블로그 전체검색

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삶에 숨결을 베푸는 말 한 마디



  봄에는 봄노래를 듣습니다. 봄노래란 무엇인가 하면 봄에 듣는 노래로, 봄에 찾아오는 제비가 들려주는 노래라든지, 새봄에 새로 깨어난 개구리가 우렁차게 부르는 노래입니다. 봄에 부는 바람도 봄노래를 들려줍니다. 겨울과 다른 바람결이기에 느낌과 결과 무늬가 모두 다른 봄바람입니다. 봄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도 봄노래입니다. 새봄에 깨어나는 겨울눈과 봄꽃을 봄바람이 살랑살랑 간질이는 소리도 봄노래예요.


  철마다 새로운 노래를 듣습니다. 철마다 새로운 목숨이 깨어나니, 언제나 새로우면서 맑은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만, 도시에서는 새로운 철에 새로운 노래를 듣기에 만만하지 않다고 할 만합니다. 언제나 똑같이 흐르는 자동차 소리라든지, 텔레비전이나 손전화 소리라든지, 온갖 기계가 내는 소리에 휩싸이다 보면, 철 따라 다른 ‘철소리’나 ‘철노래’하고 멀어질 만합니다.


  시골에서는 밤하늘 별빛을 철마다 새롭게 누릴 수 있습니다. 낮하늘 구름결도 철마다 새롭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살더라도 밤하늘이나 낮하늘을 느긋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흙을 쪼면서 들일을 하지 않고, 비닐이나 농약을 만지면서 일을 해야 하면 하늘을 볼 겨를이 없습니다. 기계를 부려서 흙을 갈거나 엎거나 닦자면, 하늘뿐 아니라 밭둑에 돋는 풀꽃을 볼 틈이 없습니다.


  아무리 배기가스나 매연으로 매캐한 도시라 하더라도, 내 마음이 곱게 눈을 뜰 수 있다면, 손바닥만 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별빛과 구름빛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바람은 시골에만 불거나 도시에는 안 불지 않습니다. 바람은 지구별을 골고루 어루만집니다. 그러니, 먼 데에서 울리는 봄바람 노랫소리를 도시 한복판에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비록 제비가 서울 시내로 찾아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울 한복판에서 개구리 노랫소리나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기 어렵다 하더라도, 서울을 둘러싼 숲과 들과 바다와 냇물에서 퍼지는 곱고 보드라운 봄노래에 귀를 기울인다면, 마음 가득 넉넉하고 짙푸를 수 있습니다.


  미우치 스즈에 님이 빚은 만화책 《유리가면》(학산문화사,2010) 가운데 열둘째 권을 읽으면, ‘헬렌 켈러’를 다룬 연극 무대에서 배우가 외치는 말이 있습니다. 연극이기에 무대에 설 때마다 말(대사)이 조금씩 바뀌기도 하는데, 설리번 님이 헬렌 켈러한테 ‘말’을 가르치려고 하면서 외치는 이야기가 있어요.


  만화책에 나오는 연극 무대에서 한 번은 “난 너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거야! 이 땅의 모든 것을! 언어란 빛에 비추면 오천 년이나 옛날의 것도 볼 수 있단다! 우리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알고 있는, 그것을 전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언어 속에 있는 거란다! 단 한 마디의 말로써 넌 그 손으로 세계를 움켜잡을 수 있게 되는 거야(126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을 보다가 한참 멎었습니다. 다음 쪽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이 이야기를 오래도록 되읽었습니다. ‘말이라고 하는 빛(말빛)’으로 비추면 어제와 오늘이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우리가 알 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말 한 마디’로 갈무리해서 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찬찬히 돌아봅니다. 말 한 마디를 터뜨릴 때에 온누리(세계)를 두 손으로 움켜쥘 수 있다는 이야기를 가만히 되씹습니다.


  만화책을 조금 더 읽으면, “우리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알고 있는 것, 그것을 주고받을 수 있는 방법이 언어 속에 있는 거야. 언어만 있으면 인간은 암흑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 무덤 속에 남아 있지 않아도 되는 거란다. 단 한 마디의 언어로, 넌 그 손에 세상을 움켜잡게 되는 거야(152쪽).” 같은 이야기도 흐릅니다. 설리번 님이 헬렌 켈러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앞 대목하고 몇 군데가 다르지만 줄거리는 같다고 할 만합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는 ‘느낌과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길을 여는 실마리’가 ‘말 한 마디’에 있다고 밝힙니다. 이러면서, ‘말을 손에 쥔’ 사람은 ‘무덤에 갇히지 않는다’고 덧붙입니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말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싱그럽게 삶을 누린다’는 뜻이 됩니다. 말을 하기에 살고, 말을 못 하기에 죽는다고 하겠습니다.


  바람이 불어서 바람을 마십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람을 마십니다. 들짐승과 바닷짐승도 바람을 마십니다. 깊은 바닷속에서도 바람을 마십니다. 바닷물에 녹아든 바람을 마시지요. 바람이 없으면 뭍짐승뿐 아니라 물짐승 모두 죽습니다. 더욱이 풀과 꽃과 나무도 바람을 마셔야 삽니다. 바람이 없으면 풀과 꽃과 나무도 몽땅 죽습니다.


  바람이 있기에 지구별이 푸르다고 할 만합니다. 바람이 있으니 하늘과 바다가 파랗다고 할 만합니다. 바람은 이 지구별에 푸르면서 파란 숨결로 흐릅니다. 사람을 비롯한 뭇목숨은 바람을 맞아들이면서 온몸을 푸르면서 파란 넋으로 가꿉니다.


  몸을 살리는 숨결이 바람이라고 한다면, 마음을 살리는 숨결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몸이 새롭게 거듭난다면, 말을 먹고 나누면서 마음이 새롭게 거듭난다고 느낍니다.


  말이 있기에 생각을 짓습니다. 말이 있어서 생각을 마음에 심습니다. 말이 있으니 생각을 마음에 심어서 삶을 이룹니다. 말이 있기 때문에 생각을 마음에 심어 삶을 이룬 사람이 사랑을 꽃피워 아름답게 하루를 누립니다.


  만화책 《유리가면》은 연극을 하는 삶길을 걷는 두 아이가 나오는 줄거리를 보여줍니다. 두 아이 가운데 한 아이(마야)는 ‘보랏빛 장미로 찾아오는 사람’을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고, ‘보랏빛 장미로 찾아오는 사람’도 마야라고 하는 수수한 아이를 마음으로 넓게 사랑합니다. 연극을 이루는 바탕은 ‘말’과 ‘말로 지은 몸짓’입니다. 사랑을 잇는 끈은 ‘마음’과 ‘마음을 담은 말’입니다.


  우리가 읽는 책은 ‘글을 종이에 얹어서 빚’습니다. 글이란 ‘말을 옮긴 그릇’입니다. 그러니, 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는 ‘말을 읽는다’는 셈이요, 말을 읽는다고 할 적에는 ‘삶을 갈무리하고 아우른 이야기’를 ‘말빛’으로 비추어서 스스로 받아먹는 셈입니다. 책읽기는 글읽기이면서 말읽기요, 말읽기는 삶읽기입니다. 삶읽기는 생각읽기나 마음읽기나 사랑읽기입니다.


  바람이 있기에 모든 목숨이 숨을 쉬면서 새롭게 하루를 맞이합니다. 말이 있기에 모든 사람이 눈을 뜨면서 귀를 열고 머리를 가꿉니다. 말 한 마디로 생각을 지어서 온누리에 아름다운 삶이 드리우도록 북돋웁니다. 바람 한 줄기가 흐르는 봄날에, 말 한 마디를 새삼스레 읊습니다. 4348.5.10.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유리가면 12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
대원 | 2010년 05월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