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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책밭 가꾸기

33. 책을 선물하는 마음



  나는 동무한테 책을 한 권 선물할 수 있습니다. 동무는 나한테 책을 한 권 선물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하고 책을 선물로 나눌 수 있고, 이웃이나 살붙이하고 책을 선물로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책을 선물할 적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이나 ‘내가 즐겁게 읽은 책’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잘 팔리는 책’이나 ‘오랫동안 꾸준히 읽힌 책’을 선물할 수 있어요. 그리고, 책을 선물로 받을 사람한테 물어 볼 수 있지요. “어떤 책을 읽고 싶니?” 하고 동무한테 여쭌 다음, 동무가 바라는 책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어떤 일인가 하면, 동무가 책을 선물하겠다고 하는데 한 권만 골라야 하고, 나는 두 가지 책이 마음에 듭니다. 두 가지 가운데 어느 책을 골라야 할는지 선뜻 뽑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두 권 다 선물해 달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뭐, 이런 일이 닥치면 한 권은 선물로 받고 한 권은 손수 장만하면 될 테지요. 이 길이 가장 빠르고 즐겁습니다. 그렇지만, 나한테 ‘책을 살 돈’이나 ‘쓸 돈’이 바닥이 났다면? 이때에는 한 권은 도서관에 신청해서 빌려서 읽으면 됩니다. 아니면, 부업이나 심부름을 해서 ‘책을 살 돈’을 벌면 되지요.


  요즈막에 저한테 책을 선물해 주겠다는 이웃님이 있어서 두 권을 추려 보았습니다. 한 권은 《시인의 집》이고, 다른 한 권은 《집에 가자》입니다. 《시인의 집》은 여러 나라 여러 시인을 돌아보는 여행길을 다룬 책이고, 《집에 가자》는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깃든 시집입니다. 한참 두 권을 놓고 저울질을 하다가 한 권을 골랐습니다. 한 권은 선물로 받고, 다른 한 권은 손수 장만하자는 생각을 하다가, 새로운 생각을 하나 더 해 보았어요. 선물로 받자면 두 권을 다 받거나, 아니면 내가 스스로 장만해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책 하나만 선물로 받자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을 읽을 적에는 눈에 뜨이는 모든 책을 다 읽으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책상맡에 언제까지나 올려놓으면서 틈틈이 되읽을 만한 책을 그야말로 자꾸 읽고 거듭 읽으려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책읽기는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모든 책을 다 읽으려 하는 책읽기’는 새로 나오는 책마다 샅샅이 눈길을 두려는 몸짓입니다. ‘책상맡에 놓고 꾸준히 되읽으려 하는 책읽기’는 어떤 책을 마음속으로 품든 날마다 스스로 새로운 넋이 되려는 몸짓입니다.


  1938년에 태어나 2010년에 숨을 거둔 사노 요코 님이 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사람입니다. 푸름이 여러분은 ‘사노 요코’라는 이름이 익숙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닐 무렵, 《백만 번 산 소양이》라든지 《산타클로스 할머니》라든지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라든지 《아빠가 좋아》라든지 《세상에 태어난 아이》라든지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 같은 그림책을 읽은 적이 있다면, ‘아하, 그 그림책을 그린 할머니!’ 하고 떠올릴 수 있어요.


  사노 요코라고 하는 할머니는 ‘할머니’ 이야기를 곧잘 그림책으로 그렸습니다. 그야말로 할머니 눈길로 그리는 그림책입니다. 그런데 그냥 할머니가 아닌 “산타클로스 할머니”이고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입니다. 뭔가 좀 다르지요?


  할머니도 산타클로스가 될 수 있습니다. 할머니도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할머니도 교장 선생님이 될 수 있고, 할머니도 대통령이라든지 시장이 될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뜨개질만 하거나 김치 담그기만 해야 하지 않아요. 할머니도 얼마든지 삶을 아름답게 가꾸거나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림책을 그리며 살던 사노 요코 님이 남긴 글을 묶은 《사는 게 뭐라고》(마음산책,2015)라는 책이 있어요. 죽음을 몇 해 앞두고 ‘마지막 삶을 실컷 누리면서 남긴 글’을 담은 책인데, “그렇다. 한국 드라마는 머리 쓸 필요 없이 마음만 움직이면 된다. 이따금 읽은 책이라고는 한국 관련 서적뿐이다. 덕분에 한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양반제도라는 구제 불능 제도를 접한 나는 조선인도 아니면서 조선이라는 나라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144쪽).”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습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나라를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던 ‘그림책 할머니’는 어느 날 ‘한류 연속극’을 하나 보았고, 그만 한류 연속극에 사로잡혔다고 해요. 병원에 누워서 연속극을 보고, 집에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속극을 보면서 아픔도 시름도 괴로움도 외로움도 달랬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궁금한 마음이 들어 ‘한국 역사나 문화를 다룬 책’도 읽었다는데, 이런 책을 읽다가 ‘양반’ 제도를 처음 알았다고 해요.


  한국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이라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양반’ 이야기를 어느 만큼 압니다. 사람 사이에 계급이나 신분으로 금을 긋고는, 한쪽은 우쭐거리는 권력자가 되고, 다른 한쪽은 짓눌리거나 억눌리면서 시달립니다. 양반 가운데 손수 흙을 일군 사람이 더러 있으나, 양반은 손에 흙 한 톨 안 묻히면서 권력을 휘둘러 밥을 먹기 마련이었어요. 계급이나 신분으로 짓눌리거나 억눌린 ‘시골사람’은 흙을 일구면서도 제값을 받지 못한 채 세금이나 소작료로 엄청나게 떼이면서 고단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옛날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사람 사이에 계급이나 신분을 들이밀면서 금을 그으면 몹시 괴로워요. 어른 사회에서는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으로 가르고, 학력에 따라서 일삯이 갈리는 얼거리가 있어요. 어른 사회에서는 대학교 졸업장에 따라 입사원서조차 못 내밀기도 해요. 양반 제도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새로운 계급 사회라고 할 만합니다. 학교에서 시험성적으로 학생을 줄세우려 한다면, 이때에도 ‘계급 학교’라고 할 테지요.


  《사는 게 뭐라고》를 읽으며 “또다시 옛날 엄마들은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궁리해서 만들었던 것이다(52쪽).”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참말 그렇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난하거나 쪼들리는 살림이어도 예부터 지구별 어느 나라 어머니이든 ‘철마다 맛난 밥’을 마련해서 아이들을 먹였어요. 그런데 요즈음은 어머니이든 아버지이든 ‘제철 밥’을 제때 마련해서 먹일 줄 아는 어버이는 드물어요. 집 밖에서 돈을 주고 사다 먹는 밥만 있을 뿐입니다.


  푸름이 여러분은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될 텐데, 집에서 ‘제철 밥’을 먹고 자란다면, 앞으로 푸름이 여러분이 어른이 되어 새로운 아이를 낳으면, 어버이한테서 배운 ‘제철 밥’을 지어서 먹일 수 있습니다. 집 밖에서 사다 먹는 밥에만 익숙하다면, 푸름이 여러분이 어른이 되어 새로운 아이를 낳을 적에 ‘스스로 겪고 배운 대로’ 집 밖에서 사다 먹이는 밥이 익숙해서 이대로 물려줍니다.


  책 한 권을 빌어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책 한 권을 선물하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집에서 함께 살거나 한마을을 이루며 같이 사는 사람들은 서로 사랑을 선물로 나눕니다. 책을 선물하듯이 사랑을 선물합니다. 책을 선물로 받듯이 사랑을 선물로 받아요. 어떤 책을 선물하거나 선물받을 적에 즐거울까요? 어떤 삶을 선물하거나 선물받을 적에 기쁠까요? 4348.8.7.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푸른 책과 함께 살기)



사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 저/이지수 역
마음산책 | 201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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