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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씨앗을 이렇게 심어요
[삶을 읽는 눈] 보금자리를 일구는 작은 손길


  바야흐로 봄을 맞이하면서 씨앗을 심습니다. 겨우내 이 봄날을 기다렸습니다. 즐겁게 우리 보금자리에 심을 씨앗을 헤아렸어요. 추위가 가시고, 땅이 녹고, 바람이 산들산들 불고, 볕이 따스한 봄날을 기다렸어요.

  시골에 살든 도시에 살든 밭을 가꾸는 분이라면 누구나 씨앗을 심어요. 그리고 저마다 스스로 좋아하는 결에 맞추어 씨앗을 심을 테지요.

  우리 보금자리에는 그리 넓지는 않으나 마당하고 뒤꼍이 있어요. 이 가운데 어제 하루 뒤꼍에 옥수수 씨앗을 심습니다. 그제는 비트 씨앗을 심었는데, 곧 다른 씨앗도 차곡차곡 심으려고 생각해요.

  저희는 서두를 마음이 없이 씨앗을 심습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움직이면서 씨앗을 심습니다. 어른 혼자서 심지 않아요. 먼저 어른이 호미질하고 낫질을 보여준 뒤에 아이들도 함께 호미질을 합니다. 다만 낫질은 아직 안 시키지만, 큰아이가 열 살이니 이제 큰아이도 곧 낫질을 익히도록 할 생각이에요.

  먼저 저희 보금자리에서 씨앗을 심는 몸짓을 간추려서 적겠습니다.


 ㄱ. 날씨를 살핀다. 날씨를 살펴서 씨앗을 언제 심어야 잘 자랄는가를 헤아린다.

 ㄴ. 땅을 살핀다. 어느 자리에 씨앗을 심으면 우리 보금자리에 한결 싱그러운 바람이 불는지 헤아린다.

 ㄷ. 씨앗을 고른다. 한 가지 씨앗만 잔뜩 심지 않는다. 작은 땅뙈기여도 여러 씨앗을 골고루 심는다. 알맞춤하게 심고, 한꺼번에 심지 않는다. 며칠 사이를 두고 나누어 심는다. 옥수수를 보기로 든다면, 서른 알을 심었으면 사나흘이나 너덧새 뒤에 다시 서른 알을 심고, 또 사나흘하고 너덧새 사이를 두고서 서른 알을 심는다. 한꺼번에 거두지 않게끔, 다시 말하자면 옥수수를 거둘 적에 늘 그때그때 가장 싱그러운 열매를 얻어서 먹도록 며칠씩 사이를 두어 심는다.

 ㄹ. 땅을 갈지 않는다. 씨앗을 심을 자리만 호미로 쫀다. 씨앗 자리에 풀뿌리가 깊으면 이때에만 풀뿌리를 뽑는다. 다른 풀은 그대로 둔다.

 ㅁ. 씨앗을 심고서 물을 안 준다. 씨앗을 심은 뒤에는 씨앗 자리 둘레에서 자란 풀을 낫으로 베어 빙 두르듯이 덮어 준다.

 ㅂ. 씨앗을 심기 앞서 씨앗을 손바닥에 얹고서 몇 분쯤 햇볕을 쬐어 주며 씨앗한테 말을 건다. 이 씨앗이 우리 보금자리에 기쁘게 깃들어 새롭게 깨어나서 우리 식구 몸을 아름답게 살찌워 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마음으로 속삭인다.

 ㅅ. 씨앗한테 우리 마음을 속삭였으면, 이 씨앗을 입에 머금는다. 다른 곳에서는 씨앗을 물에 불린다든지, 젖은 천이나 솜에 두어 싹이 트도록 할 텐데, 우리는 우리 몸에 있는 침으로 씨앗이 깨어나도록 북돋아 준다. 씨앗을 심을 적에는 ‘입에 머금은 씨앗’을 한 톨씩 뱉아서 심는다.


  먹을거리를 얻겠다는 뜻으로 씨앗을 심어요. 다만 먹을거리를 그냥 얻을 마음은 아니에요. 더 많이 얻으려는 뜻이 아닌, 늘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살림이 되기를 바라면서 씨앗을 심어요.

  그래서 저희 집에서는 땅에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습니다. 비늘을 씌우지도 않습니다. 밥찌꺼기하고 똥오줌을 땅한테 돌려줄 뿐입니다. 이밖에 다른 것을 더 주지 않으나, 저희가 우리 밭뙈기하고 씨앗한테 주는 것은 따로 있어요. 바로 우리 사랑을 주어요. 아이들은 밭뙈기이며 마당이며 신나게 넘낟들면서 뛰어노는 동안 웃음하고 노래하고 이야기를 씨앗한테 베풀어 줍니다. 저는 마당이나 뒤꼍 풀밭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씨앗하고 함께 있습니다. 씨앗을 심은 자리 둘레로 풀이 우거지려 하면 알맞게 낫으로 베어 땅에 덮어 줍니다.

  뿌리를 뽑지 않아요. 풀뿌리를 뽑으면 그만 흙이 갈 곳이나 힘을 잃거든요. 풀이 뽑힌 자리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흙이 쓸려요. 풀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두거나 위쪽 줄기를 베어서 덮으면 비가 아무리 드세게 내려도 흙이 안 쓸립니다.

  풀뿌리를 뽑지 않고 그대로 두면, 우리가 심은 씨앗은 다른 풀뿌리를 붙잡고 더욱 튼튼히 자랍니다. 다른 풀줄기를 잘 베어 땅바닥에 덮으면 햇볕이 아무리 뜨겁게 내리쬐어도 밭뙈기 흙이 안 말라요. 풀줄기는 마르면서 흙으로 돌아갈 뿐 아니라, 흙이 늘 촉촉하고 기름짇도록 북돋아요.

  저희가 그리 넓지 않다 싶은 땅뙈기를 이렇게 건사한다고 볼 수 있어요. 넓은 땅뙈기라면, 이른바 수천 평이나 수만 평이라면 저희처럼 건사하기 어렵겠지요. 저희는 저희 먹을거리만 얻으려 하니 알맞춤하게 작은 밭자락을 이렇게 건사할 만합니다.

  땅뙈기 한쪽은 나무가 자라서 시원스레 그늘을 베풀면 여름 내내 시원하면서, 이 둘레에서는 풀이 그리 높이 못 자랍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나무 열매를 베풀어 주고요. 다른 자리는 우리가 심은 씨앗으로 남새를 얻으면 이대로 즐거우면서 틈틈이 낫질을 해서 풀을 다룰 수 있고, 남새도 잘 돌볼 만합니다.

  차근차근 함께 심고, 조금씩 함께 돌보며, 즐겁게 함께 거둡니다. 봄날은 신나는 마당살림을 짓는 하루입니다. 2017.4.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짓기/살림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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