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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쓰는 뜻) 곁님·10살 아이·7살 아이하고 함께 살림을 짓고 시골에서 살며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일을 하는 사내(아저씨)입니다. 시골 폐교를 빌려서 도서관학교로 가꾸면서, 우리 집 두 아이는 제도권학교 아닌 ‘우리 집 학교’에서 즐겁게 가르치고 함께 배웁니다. 어버이로서 두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살림입니다. 밥·옷·집을 손수 지으며 누리고 나누자는 마음으로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익히려는 사랑을 길어올리려 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아이키우기(육아)·살림(평등)·사랑(평화)’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으로 사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여성혐오’도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길도 아닌, 새로운 사람길을 밝혀 보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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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조차 못 끓이던 아버지
[남자도 여자도 아닌 3] 반토막 사내 아닌 오롯한 사람 되기


  어릴 적에는 마을 아주머니가 저한테 “쟤는 여자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하고 들려주는 말이 ‘폭력’이 되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아주머니가 사내 아이한테 들려주던 이런 말은 ‘사내는 집일이나 살림을 몰라도 되고, 안 배워도 된다’로 읽혀 버릴 수 있어요. 거꾸로 ‘가시내는 마땅히 집일이나 살림을 알아야 하고, 꼭 배워야 한다’로 읽힐 수 있습니다. 사내는 집에서만 머물러도 집일을 안 해도 된다거나, 가시내는 집 바깥에서 일을 많이 해도 집일까지 도맡아야 한다는 뜻이 될 수 있어요.

  가부장 권력은 아저씨(사내)가 윽박지르는 몸짓이나 목소리로만 퍼지지 않아요. 아주머니(가시내) 스스로 뿌리깊이 받아들이면서 물려주는 셈이 되기도 해요. 아저씨는 스스로 생각을 열어서 스스로 집일을 살펴서 함께 할 줄 알아야 하고, 아주머니는 스스로 기운을 내어 사내가 집일을 함께 하도록 이끌 수 있어야지 싶어요.

  어린 날을 더듬어 보면, 어머니는 하루 내내 집에서 수많은 집일을 도맡고 집살림을 꾸리셨어요. 어머니는 한 해 내내 집을 비울 수 없었고, 집을 비울 틈이 없었다고 할 만해요. 밥이며 빨래이며 청소이며, 꽃그릇을 건사하고 곁일을 하고 두 아이 숙제를 보아주고, 새벽부터 밤까지 쉴 겨를이 없습니다. 이동안 아버지는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을 합니다.

  아주 드물게 어머니가 한동안 집을 비워야 하는 일이 있곤 합니다. 아침 일찍 나가셔서 밤 늦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일이 생깁니다. 아마 어머니네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일이 생겨서 서둘러 다녀와야 하는 일이었겠지요. 어떤 일 때문에 바삐 다녀오셔야 했는지는 얘기를 들려주지 않으셔서 모릅니다만, 어느 일요일이었어요. 이날은 아버지가 두 아이 끼니를 챙겨 주어야 했어요.

  열세 평짜리 작은 집이건만 아버지는 부엌이 낯섭니다. 이 조그마한 집에서조차 아버지는 부엌으로는 거의 걸음하지 않았어요. 칼이 어디에 있는지 도마는 어디에 있는지, 밥솥은 어디에 있고 쌀은 어디에 있는지 하나도 모르십니다. 수저가 어디에 있는지마저 모르십니다. 저하고 형은 으레 어머니를 곁에서 도왔으니 이것저것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이것은 여기에 있고 저것은 저기에 있다고 알려 드립니다.

  그러나 막상 아버지는 쌀이며 밥솥이며 조리이며 다 찾았어도 어떻게 밥을 지어야 하는가를 모릅니다. 아버지는 끝내 ‘밥하기는 두 손 들어’요. 밥은 아무래도 못 하겠다고 여긴 아버지는 라면을 끓이기로 합니다. 그러나 라면이 또 어디에 있는지 모르시지요. 형하고 제가 라면이 어디 선반에 있다고 알려줍니다. 냄비는 어디에서 꺼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아버지는 라면 봉지 뒤쪽에 적힌 ‘라면 끓이는 법’을 한참 읽습니다. 그러나 한참 읽으시다가 ‘라면 끓익기도 두 손 들어’요.

 “얘들아, 우리 중국집에 시켜서 먹자.”

  아버지가 밥도 라면도 아닌 중국집에 짜장면을 시켜서 먹자고 들려준 말씀은 썩 반갑지 않았습니다. 쌀도 있고 라면도 있는데, 딱히 시켜서 먹어야 할 일이 없는데 굳이 시켜서 먹어야 하니 내키지 않습니다.

  이날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설마 오늘 하루 내내 시켜서 먹어야 하나?’

  아버지는 형이나 저한테 ‘라면을 어떻게 끓이니?’ 하고 묻지 않았습니다. 형하고 저는 라면을 퍽 잘 끓였어요. 어머니가 집에 안 계셔도 형이나 저는 스스로 라면을 끓여서 먹어요. 더구나 형도 저도 압력밥솥으로 밥을 할 줄 알아요. 이무렵 형은 국민학교 6학년이었고, 저는 국민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1984년에 국민학교 6학년이나 3학년이라는 나이는 ‘압력밥솥으로 밥하기’를 실과 수업에서도 배우지만, 집에서도 늘 어머니 곁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물을 맞추고 불을 살피며 줄여서 끈 뒤에 뜸을 들이고 나서 김을 빼어 뚜껑을 여는 일까지 하나하나 할 줄 알기 마련입니다. 압력밥솥을 설거지를 할 적에는 꽤 힘들었지만 어떻게 부시고 어떻게 말려야 하는가도 알았어요.

  1984년에 마흔 언저리였던 우리 아버지는 밥도 라면도 할 줄 몰랐습니다. 부엌 살림이 어떻게 있는지 모르시니 설거지도 할 줄 몰랐습니다. 그 뒤 서른 몇 해가 지난 오늘날 우리 아버지는 라면은 끓일 줄 아시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몇 해 앞서 슬쩍 여쭌 적이 있는데, “라면은 끓일 줄 알지.” 하고 말씀하셨으나 왠지 미덥지 않았어요. 어쩌면 이제는 끓일 줄 아실 수 있을 테고, 아직 라면을 못 끓이실는지 모릅니다.

  라면도 못 끓이느냐고 따질 수 있지만, 어쩌면 라면 끓이기란 ‘쉬운 듯하면서 안 쉬울’ 수 있어요. 해 보지 않는다면, 라면 봉지 뒤쪽에 적힌 ‘끓이는 법’대로 따라하기가 너무 어려울 뿐 아니라,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못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집 바깥자리에서 큰 이름을 드날린다고 하더라도 집 안자리에서 살림을 거느리지 못할 적에는 반토막이 된다고 느끼며 자랐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밥하기도 배우시고 김치 담그기도 배우시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으나, 그보다 저 스스로 이런 안살림을 차근차근 잘 익혀서 해 보고 나서 말씀을 여쭙자는 마음입니다. 우리 아버지도 언젠가 온몸으로 ‘이제라도 배우자’고 생각하시겠지요. 저는 오늘 우리 아이들한테 먼저 밥살림을 즐겁게 물려주려고 합니다. 함께 짓고 함께 먹으려고요. 함께 살피고 함께 가꾸려고요. 2017.5.6.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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