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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말) 곁님·10살 아이·7살 아이하고 함께 살림을 짓고 시골에서 살며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일을 하는 사내(아저씨)입니다. 시골 폐교를 빌려서 도서관학교로 가꾸면서, 우리 집 두 아이는 제도권학교 아닌 ‘우리 집 학교’에서 즐겁게 가르치고 함께 배웁니다. 어버이로서 두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살림입니다. 밥·옷·집을 손수 지으며 누리고 나누자는 마음으로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익히려는 사랑을 길어올리려 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아이키우기(육아)·살림(평등)·사랑(평화)’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으로 사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여성혐오’도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길도 아닌, 새로운 사람길을 밝혀 보고 싶어요.


우리는 ‘아이 성 새로 짓기’를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5] ‘어버이 성 안 쓰기’를 하는 마음


  어릴 적에 동무들은 흔히 저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야, 넌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니? 넌 참 다르다, 달라!” 

  요즈막에 이웃들은 으레 저한테 이렇게 얘기합니다.

  “최종규 씨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해요? 참 다르네요.” 

  어릴 적에 동무들한테는 이렇게 대꾸했어요.

  “거참, 너는 왜 안 다르니? 너하고 다른 동무는 안 다르니? 너하고 나는 안 다르니? 우리는 모두 달라. 다 다르니까 다를 뿐이야. 여기에 너하고 똑같은 사람이 어디 있니? 너도 참 달라.” 

 요즈막에 이웃들한테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에요.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으면 살 수 없어요. 숨조차 쉴 수 없어요. 풀밭에 자라는 풀도 다 같은 풀이 아니라 다 다른 풀이에요. 얼핏 보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풀밭에 납작 엎드려서 바라보면 다 다르게 생겼고 크기도 달라요. 모든 사람은 다 다르기 때문에 다 다르게 아름다워요.”

  저는 어릴 적에 저한테 붙은 성인 ‘최’를 좋아했습니다. 이러면서도 왜 저한테는 ‘차’라는 성이 안 붙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제 성인 ‘최’는 우리 아버지 성입니다. 저한테 안 붙은 ‘차’는 우리 어머니 성입니다.

  어릴 적에도 어딘가 아리송했어요. 아니 왜 ‘아버지 성’만 써야 하나 싶더군요. 나는 ‘최’도 ‘차’도 함께 쓰고 싶었습니다. 이때가 1980년대 첫무렵입니다.

  1980년대 첫무렵에 ‘어버이 성’을 함께 쓰자고 생각한 분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때 저는 어린이였으니 둘레에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나, 틀림없이 있으리라 믿었어요. 다만 동무들한테 이런 말을 하면 하나같이 벙뜬 얼굴로 “야, 그게 말이 되니? 어떻게 두 가지 성을 다 써?” 하고 대꾸하더군요.

  어릴 적에 처음에는 아버지 성도 어머니 성도 함께 쓰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던 어느 날 한 가지를 깨달아요. 우리 어머니 성은 ‘우리 어머니를 낳은 아버지한테서 받은 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를 낳은 아버지’하고 성이 달라요.

  이 대목을 깨달으면서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아아, 이건 뭐야? 그러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는? 또 자꾸자꾸 거슬러 올라가는 숱한 어머니들은? 할머니들은?

  2008년에 우리 집 첫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이러한 생각이 머리에서 어지럽게 춤추었습니다. 그리고 이 어지러운 생각을 곁님이 아주 손쉽게, 참으로 슬기롭게,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게, 여기에 매우 곱게 실마리를 풀어 주었어요. 2008년에 태어날 우리 첫 아이를 맞이하기 앞서 곁님하고 이런 얘기가 오갔어요.

  “여보, 우리 아이한테는 성을 새로 지어 주면 어때요?” “응? 성을 새로 지어 주자고? 안 돼. 법으로는 그렇게 안 되어.” “법으로 안 된다고요? 무슨 법이 그래? 성 하나를 새로 지어서 쓸 수 없다고? 한국에서 사람들이 성을 쓴 역사가 얼마나 된다고 성을 새로 못 지어?”

  곁님이 마지막으로 물은 말에는 저로서는 차마 대꾸할 수 없었습니다. 이 대목을 이제껏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제 머리는 ‘현행 법 틀’만 헤아렸을 뿐, ‘현행 법이 슬기롭지 못한 틀’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악법도 법이다’라는 생각에 멈춘 제 모습이었어요.

  곁님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새로운 생각을 들려줍니다.

  “그럼 이렇게 하기로 해요. 아이들 성을 새로 짓기는 하되, 법(주민등록)으로 등록할 때에는 그 법대로 하기로. 다만 우리 집에서는 법으로 등록한 성을 안 쓰고 우리가 지은 성을 쓰기로 해요.”

  저는 이 말을 듣고 곁님을 꼬옥 안았습니다. 법이 어떠하든 우리는 ‘법이 없이 즐거우며 아름답고 사랑스레 사는 길을 걸으면 되는 살림’이라는 대목을 깨달았어요. 아이 성은 주민등록에서는 ‘아버지 성’으로 올리되(곁님은 굳이 ‘어머니 성’으로 하지는 말자고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언제나 ‘우리 두 사람, 곧 아이 어버이인 우리가 지은 새로운 성’을 쓰기로 합니다.

 사름벼리
 산들보라

  2008년에 이어 2011년에 둘째 아이가 찾아옵니다. 둘째 아이한테는 둘째 아이한테 알맞을 새로운 성하고 이름을 생각하여 사랑으로 지어 줍니다. 둘째 아이도 첫째 아이하고 똑같아요. 법으로는 ‘아버지 성’을 올립니다만, 집에서는 언제나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사랑으로 지어 준 성’만 쓰지요.

 사름(성) + 벼리(이름)
 산들(성) + 보라(이름)

  저희는 ‘어버이 성 안 쓰기(부모 성 안 쓰기)’를 합니다. 아이들한테는 아이들한테 걸맞을 새로운 성하고 이름을 하나하나 지어서 주기로 합니다. 저희는 아이들한테 ‘가부장 흐름에 따라 이어주거나 이어받는 성’이 아니라 ‘아이들이 앞으로 스스로 새롭게 가꾸며 펼칠 꿈이 스며드는 성’을 주기로 합니다.

  다시금 따져 본다면, 저희가 하는 일은 ‘아이 성 새로 쓰기’입니다 ‘아이 성 새로 짓기’이기도 해요.

  아이들이 나중에 스무 살이 되면, 아이들 나름대로 어버이가 지어 준 성이나 이름이 아닌, 저희 깜냥껏 새로운 성이나 이름을 슬기롭게 지어서 쓸 수 있어요. 아이들은 ‘최 사름벼리’나 ‘전 산들보라’처럼 이름을 쓸 수도 있겠지요. 아이들 마음이니까요.

  아이들한테 어버이로서 이름을 지어서 물려준다고 할 적에는 ‘지나온 길(옛 역사)’을 이어받기를 바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길(아이 스스로 지을 역사)’를 스스로 찾아서 스스로 펼치고 스스로 이루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평등하게 아버지 어머니 성을 ‘함께 쓰기’를 하는 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여기에서 하나를 더 생각해 본다면, ‘어버이 성 함께 쓰기’는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새로운 짝꿍을 만날 적에 몹시 골치가 아플 만합니다. 아이들 성은 하루하루 자꾸자꾸 길어지면서 어지러워질 테니까요. 아버지나 어머니 가운데 어느 쪽 성을 앞에 쓰느냐를 놓고도 골치가 아플 테고요.

  사내도 가시내도 아닌, 사내나 가시내를 넘어선, 오롯이 서는 사랑이라는 사람으로서, 우리 아이들이 즐거운 살림을 물려받기를 바랍니다. 사내랑 가시내라는 성별을 모두 가슴으로 품으며, 우리는 모두 그저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다 같이 홀가분한 숨결로 씩씩하게 서기를 바라요. 2017.5.18.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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