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장 지오노는 이 작품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6년부터 쓰기 시작해서 1951년 마무리했다. 지오노 역시 3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두 번의 큰 전쟁을 경험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에는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은 유럽 작가와 지식인들은 인간의 악과 제국주의의 파괴성에  경악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1947), 장 폴 샤르트르의 『파리떼』(1943)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1956)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콜레라 파리와 까마귀가 등장한다. 이는 마치 샤르트르의 희곡 『파리떼』(1943)와 유사한다. 『파리떼』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엘렉트라」를 가져와 샤르트르 자신이 살리고 싶은 주제를 더해 비튼 것이다. 왕비 클리템네스트르와 정부 에지스트는 트로이전쟁에서 돌아온 아가멤논 왕을 죽이고, 권좌를 차지한다. 이때 파리떼가 나타나 도시 천지를 뒤덮는다. 마치 죄를 지은 왕비와 새 왕을 응징하려는 신의 계시일까. 희곡에 등장하는 신 쥬피터는 인간의 탐욕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시험한다. 아가멤논의 딸 엘렉트르와 아들 오레스트는 복수를 위해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마침내 두 사람을 살해, 원수를 갚는데 성공한다. 한편 오레스트는 이 모든 것이 신의 계략이었음을 간파하고 왕위를 내던지고 자유를 찾아 떠난다. 파리떼도 홀연히 사라진다. 사르트르가 말해고자 했던 것은 신이 파놓은 얄궂은 함정에서 벗어나는 길은 인간이 지닌 자유의지를 되찾는 것이다.

작품은 세 부로 나눌 수 있다. 1부는 마노스크 이전(1~5장), 2부 마노스크(6~9장), 3부 마노스크 이후(10~14장)다. 1830년대 이탈리아 피아몬테 사르데냐 왕국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다스리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통일 왕국이 아닌 도시국가 체제였다. 피아몬테는 스위스, 프랑스와 국경을 맞댄 이탈리아 최북단 지방이다. 주세페 마치니는 비밀결사조직, 카르보나리 당을 만들어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을 꿈꾸고 있었다. 1831년 소수의 비밀결사대가 혁명을 일으켰으나 실패, 대원들은 프랑스 스위스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안젤로가 프랑스  피신한 것은
 몸담고 있는 앙젤로는 남작을 살해하고 프랑스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도피했다. 

안젤로는 에지아 파르디 공작부인이 16살 때 낳은 사생아다. 
폴린은 리앙의 의사집안의 딸이었다. 어느 날 테위스 후작이 총을 맞고 쓰러져 있는 것을 아버지가 발견하고 집으로 옮겨 치료해 주었다. 이때


이 작품은 기병 시리즈의 연작이다. 전 이야기 『안젤로』(1958), 이후 이야기 『열광적 행복(1957) 등 삼부작으로 『지붕위의 기병』(1951) 작품이 맨 먼저 나왔다. 작품은 외형적으로는 콜레라를 매개로 전쟁과 폭력을 고발하며, 원초적인 인간의 공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장 지오노는 괴짜 의사를 통해 콜레라에 대한 심리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괴짜 의사는 13장에 등장한다. 가프로 향하던 앙젤로와 폴린은 이 이야기는 13장에 따르면 콜레라는 외부에서 전염되는 질병이 아니라 인간이 ‘멜랑콜리의 유혹’에 빠져 스스로 선택하는 병이다. ‘멜랑콜리의 유혹’이란 권태로운 삶의 고리를 끊는 단 한 순간의 강렬한 죽음의 유혹을 뜻한다.

앙젤로가 긴 여정에서 마주친 콜레라로 죽은 시체들은 세기병의 상징이었다. 무사태평한 태도, 멜랑콜리한 모습, 지겹다는 듯한 분위기, 남은 사람에 대한 경멸 등등. 이 대목은 자연스레 13장에 등장하는 괴짜 의사의 논리와 이어진다.

생디지에로 가는 길에서 마르세유 오페라의 클라리넷 연주자와 만났다. 60대 이른 나이였지만 튼튼하게 걷고 있었다. 연주자와 헤어진 뒤 너도밤나무 숲 달빛 아래 노숙하기 위해 자리에 누웠을 때 클라리넷 소리가 울려 왔다. “저건 모차르트의 독일 춤곡이에요.” 이 춤곡은 두 사람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전주곡이 된다. 곧 거칠게 천둥을 울리며 폭우가 내렸다. 비를 피하려 들어간 빈 집은 제법 온전히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벽난로에 불을 피운 둘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1832년만 해도 콜레라는 인도와 아시아 대륙 일부에 국한되어 존재했다. 1829년에 병은 맹렬하게 번져 아시아 대륙과 러시아를 휩쓸고 미국까지 들이쳤다. 1831년 여름에는 영국과 유럽 대륙까지 번졌다.

콜레라균은 장에 들어가 엄청난 속도로 불어난다. 100만 마리가 3~4일 만에 1조 마리로 늘어난다. 콜레라 균은 소장 내벽을 덮은 다음 장 세포 내부로 독소를 주입한다. 보통 소장 벽은 내보내는 물보다는 흡수하는 물이 더 많다. 하지만 독소에 공격당한 내벽은 그 비율이 역전된다. 콜레라에 걸리면 심할 경우 몇 시간 만에 몸 전체 수분의 30퍼센트까지 잃을 수 있다. 이때 소장의 상피세포 조각들이 함께 흘러나와 살뜨물 처럼 보인다.

박테리아는 상호간에 DNA 조각 일부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낯선 환경에 적응한 다른 박테리아의 능력을 전달받을 수 있어 환경 변화에 아주 빠르게 적응한다.

1832년 콜레라가 유행하던 당시 사람들은 감염설과 독기설을 놓고 논쟁했다. 감염설은 어떤 매개체에 의해 사람간 전파된다는 것이고, 독기설은 오염된 공기에 의해 전파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콜레라가 오염된 물을 통해 감염된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8년 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 감옥에 수감된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어떤 병을 앓고 있었다. 감옥 병원에서 차츰 회복기에 접어들 무렵 꿈을 꾼다.

“아시아 대륙에서 유럽을 향해 오는,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어떤 가공할 만한 전염병 때문에 전 세계가 희생될 운명에 직면했다. 극히 소수의 선택된 몇 사람을 제외하고 인류는 죄다 멸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인체에 파고드는 현미경적인 존재인 일종의 새로운 선모충이 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생물은 지능과 의지가 부여된 정령이었다. 그래서 그것에 걸린 사람들은 이내 귀신에 홀린 듯이 미쳐버리고 말았다.”

이 꿈은 상처 입은 자부심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 생각한 라스콜리니코프의 의식 상태를 보여준다.  『죄와 벌』은 1867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때 도스토옙스키가 인용한 콜레라 유행은 『지붕 위의 기병』과 배경이 거의 같다. 당시 콜레라는 1829년 아시아에서 유행해서 영국과 유럽까지 퍼졌다가 1832년 잠잠해졌다. 로쟈의 꿈은 선견지명이 있었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콜레라 유행이 두어 차례 더 생겨 수십 만 명이 사망하는 등 큰 피해를 보았다. 

도스토옙스키는 콜레라의 원인이 새로운 선모충이라고 짐작했지만, 정작 콜레라 균이 원인이라는 사실은 16년이 더 지난 1883년이었다. 당시 이집트에 발생한 콜레라의 역학 조사를 담당했던 로베르크 코흐가 발견했다.

물론 도스토옙스키는 콜레라 때문에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혀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배척하는 실상을 풍자하기 위해 뇌를 갈아먹는 선모충을 예로 들었을 것이다. 공포에 미쳐버린 사람들의, 예측하기 어려운 폭력 만큼 무서운 것이 있을까.

사람은 사나운 맹수, 지진이나 전염병 등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위협이나 재난을 만나면 공포를 느낀다. 이때 편도체가 활성화돼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부신피질에서 코티졸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방출해 동공이 커지고, 심장박동과 호흡수가 증가하며 근육과 신경계를 잔뜩 긴장한다. 평상시 같은 신피질이 합리적인 이성을 유지하도록 조절할 수 있지만, 위기의 상황에서는 파충류의 뇌가 이성을 억눌러 자신의 생존을 우선시하게 된다.

단 몇 시간 만에 죽음에 이르는 전격성 콜레라라면 인간에게는 치명적이다. 누구라도 공포가 극에 달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어렵다. 남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위협하고, 물과 먹을 것을 얻기 위해 폭력을 휘둘러 약탈하기도 한다. 자신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발 하라리는 전쟁과 같은 ‘극한의 경험’은 인간을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고, 인간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며, 세상에 대한 이해도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평상시라면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것도 막상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이라면 10분 만에 깨닫기도 한다. 

전격성 콜레라나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을까?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읽어야 할까? 콜레라나 전쟁 같은 재난은 언제 다시 닥칠지 모르는 중대사다. 막상 위기에 닥쳐 어찌할지를 몰라 우왕좌왕하기 보다 비용과 시간을 들여 미리 공부해 두면 생존에 유리하다. 무엇보다 책을 읽는 이유는 파충류의 뇌가 우선시 돼 인간 같지 않은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인간은 선과 악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지닌 선한 인간성이 활짝 꽃피어나게 할 수 있을까? 여기에 인문학 공부의 중요성이 숨어 있다.

『지붕 위의 기병』에 등장하는 괴짜 의사의 입장을 보자(도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안젤로에게 콜레라가 쉽사리 번지고, ‘격렬한 전염성’을 갖고 있는 건, 계속되는 죽음의 현존 앞에서 콜레라가 모든 사람 내부에 있는 예의 타고한 이기주의를 강화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괴짜 의사의 논리와 정반대 입장에 있는 인물이 바로 ‘작은 프랑스인’ 의사다. 그는 이타주의의 표본이고, 안젤로가 닮고싶어하는 롤 모델이다. 괴짜 의사는 아주 착한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용상 감동적인 대목은 12장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간 어느 집에서 앙젤로와 폴린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작품은 폴린을 테위스 성에 무사히 데려준 다음, 말을 타고 자유를 위한 투쟁을 위해 다시 이탈리아로 향한다. 작품은 이렇게 끝맺는다. “그는 행복의 절정에 있었다.”

“우리는 공포의 전염병을 갖고 있어요. 지금 내가 노란 완장을 콜레라라고 부르면서 1천 명에게 채워 주면, 이 사람들은 2주 이내에 죽을 거요.”(529쪽)

영화에서는 모험과 사랑이 메인 주제가 된다.

총 14장으로 구성된 긴 서사다. 장소 이동도 많고, 등장 인물도 다양하다. 이중 안젤로와, 친구 주세페, 여주인공 폴린 드 테위스, ‘작은 프랑스인’ 의사와 괴짜 의사 그리고 수녀 등 6명으로 압축할 수 있다.

피아몬테 사람들은 일제강점기 때 우리처럼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어 저항했다. 조선의 독립투사들이 때로 옹기장수로 변장했던 것처럼 그들은 숯장수(카르보나리)로 위장해서 자금을 대거나 밀지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카르보나리’였다 카르보나라 스파게티는 여기서 탄생했다. 어원 ‘카르보나리’는 본래 숯을 굽는 사람을 뜻했다. 카르보나라의 백미는 맨 마지막에 숯가루 같은 검은 후추를 뿌려 먹는 것이다.

폴린와 안젤로의 사랑은 죽음이 휩쓸고 간 땅 위에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것을 상징한다. 새로운 사랑은 새 생명을 잉태한다.

장 지오노는 『지붕 위의 기병』을 직접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고자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여러 감독이 영화화를 시도했으나 어느 하나 크랭크인에 이르지 못했다. 마침내 1995년 장 폴 라프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영화로 만들었다.

당시 라프노는 자기가 쓴 창작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날 다음 작품을 기획하던 그는 20대 시절에 읽고 깊은 감동받았던 『지붕 위의 기병』을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당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줄리엣 비노쉬가 폴린 역을 맡았고, 안젤로 역에는 신인이 맡았다. 당대 최고의 제작비를 들여 완성된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장 지오노의 작품 중 영화화된 20여 편 중 가장 대중적으로 예술적으로 높다고 평가 받았다.

조세프는 신기료 장수다. 신기료 장수는 헌 신이나 터진 곳을 고쳐주는 사람이다. 조선 시대 “신 기리오?”하고 다녔다고 해서 ‘신기료’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르데냐 왕국의 전신은 사보이 왕국이다. 사보이 왕국은 오늘날 프랑스 사보이 지역에 거점을 두고 있었다. 당시 스페인왕위계승전쟁에 참전하여 그 공로로 시칠리아 섬을 얻었다. 이후 시칠리아와 사르데냐(이탈리아 두번째 섬)를 교환하여 왕국 이름을 샤르데냐로 바꾸었다. 샤르데냐 왕국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역도 관할하고 있어 흔히 샤르데냐-피에몬테 왕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19세기 초반 샤르데냐 왕국은 북부의 작은 공국에 불과했으나 이후 이탈리아의 독립 전쟁과 통일을 위한 주역으로 맹활약하게 된다. 한편 샤르데냐 섬 해안에서 정어리가 많이 잡혔는지 오늘날 정어리(sardine)의 어원이 샤르데냐에서 나왔다.

지오노의 할아버지는 사르데냐 왕국의 독립을 위해 숯불당(carbonaro)에 들어가 싸우다 사형 선고를 받고 1832년 프랑스로 망명했다고 한다. 1832년 당시 샤르데냐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군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 아버지는 구두 수선공 일을, 어머니는 세탁소 일을 했다. 지붕위의 기병에 등장하는 앙젤로는 할아버지는 조제프는 아버지를 모델로 한 셈이다.

지오는 마노스크에서 태어나 자랐다. 16살 때 부친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돈을 벌기 위해 은행의 사환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유명해지고, 일하던 은행이 파산하자 집필에 전념했다.

1796년 나폴레옹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1814년 나폴레옹이 패하면서 되찾았다. 샤르데냐 왕국은 빈회의에도 참석했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죽었을 때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된 유명한 화가는 비애감에 젖어 죽음의 순간을 커다란 캔버스에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화가는 박사가 입고 있던 셔츠와 초록색 물무늬 멜빵 대신 중산모를 쓰고 까만 프록코트를 입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콜레라가 창궐하던 시대 신문 삽화가들이 중세 시대 페스트 시대의 의사들 모습을 패러디한 것을 본딴 것이다.

한편 조문객 틈에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있엇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일흔여섯이었으며, 여지껏 독신이었다. 그는 검은 색 프록코트를 입고 윙 칼라 셔츠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중산모를 쓰고 있었다. 지팡이로도 쓰이는 우산을 들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카리브 하천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마치 그는 고독한 영혼 속에서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누군가를 사랑해 오고 있었다.

마침내 장례식이 끝나고 미망인이 된 페르미나 다사가 장레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페르미나가 거실로 돌아왔을 때 플로렌티노가 홀로 앉아 있었다.

“페르미나, 반세기가 넘게 이런 기회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소. 나는 영원히 당신에게 충실할 것이며 당신은 영원한 나의 사랑이라는 맹세를 다시 한 번 말하기 위해서 말이오.”

플로렌티노는 51년 9개월하고도 4일 동안 페르미나를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가 페르미나 다사를 알게 된 것은 나이 25살 때였다. 당시 그는 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청년이었다.

우체국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하던 어느 날 그는 직장 선배가 다사 집안 앞으로 온 전보를 전해주라며 부탁했다. 전보를 집 주인 로렌소 다사에게 건네주고 돌아나올 무렵, 읽기 수업을 받고 있던 페르미나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로렌소는 콜레라가 유행하자 외동딸과 미혼 여동생을 데리고 거처를 옮겼던 것이다. 딸은 열세 살이었고,

18세기에 카리브 해에서 노예 무역으로 가장 번성한 도시였다. 스페인에서 독립하고 노예 제도가 폐지되자 도시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과거의 훌륭한 가문들은 폐허가 되어버린 그들이 궁궐 안에서 아무 말 없이 침몰해 갔다.”(35)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