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콜레라는 1832년 이전까지만 해도 인도와 네팔 등 아시아 일부에 국한된 풍토병에 지나지 않았다. 1829년에 인더스 지역에 생긴 콜레라는 맹렬한 기세로 번져 아시아와 러시아를 휩쓸고 이웃 대륙으로 들이쳤다. 1831년 여름 콜레라는 영국과 유럽에 처음 퍼졌다. 대서양 횡단 증기선을 타고 미국에도 상륙했다.

 

콜레라균은 장에 들어가 엄청난 속도로 불어난다. 100만 마리가 3~4일 만에 1조 마리로 늘어난다. 콜레라 균은 소장 내벽을 덮은 다음 장 세포 내부로 독소를 주입한다. 보통 소장 벽은 내보내는 물보다는 흡수하는 물이 더 많다. 하지만 독소에 공격당한 내벽은 그 비율이 역전된다. 콜레라에 걸리면 심할 경우 몇 시간 만에 몸 전체 수분의 30퍼센트까지 잃을 수 있다. 이때 소장의 상피세포 조각들이 흘러나와 살뜨물 같은 설사를 하게 된다.

 

박테리아는 상호간에 DNA 조각 일부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낯선 환경에 적응한 다른 박테리아의 능력을 전달받을 수 있어 환경 변화에 아주 빠르게 적응한다.

 

『죄와 벌』을 보면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와 여동생을 살해한 뒤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수한다. 그는 8년 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 감옥에 수감된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어떤 질병을 앓고 있었다. 감옥 병원에서 차츰 회복기에 접어들 무렵 그간 꾼 꿈에 암시가 드러난다.

 

“아시아 대륙에서 유럽을 향해 오는,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어떤 가공할 만한 전염병 때문에 전 세계가 희생될 운명에 직면했다. 극히 소수의 선택된 몇 사람을 제외하고 인류는 죄다 멸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인체에 파고드는 현미경적인 존재인 일종의 새로운 선모충이 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생물은 지능과 의지가 부여된 정령이었다. 그래서 그것에 걸린 사람들은 이내 귀신에 홀린 듯이 미쳐버리고 말았다.”

 

이 꿈은 상처 입은 자부심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 생각한 라스콜리니코프의 의식 상태를 보여준다.  『죄와 벌』은 1867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꿈 속에서 본 콜레라 유행 양상은 장 지오노의 『지붕 위의 기병』과 거의 같다. 로쟈의 꿈은 선견지명이 있었던 모양이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콜레라 유행이 두어 차례 더 생겨 수십 만 명이 사망하는 등 큰 피해를 보았다. 

 

도스토옙스키는 콜레라의 원인이 새로운 선모충이라고 짐작했지만, 이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표현한 것이다. 콜레라의 원인이 박테리아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죄와 벌』이 나온 지 16년이 더 지난 1883년이었다. 당시 이집트에서 발생한 콜레라를 역학조사하던 로베르트 코흐가 현미경으로 발견했다.

 

1830년대 사람들은 감염설과 독기설을 놓고 논쟁했다. 감염설은 어떤 매개체에 의해 사람 사이에 전파된다는 것이고, 독기설은 오염되거나 나쁜 공기에 의해 전파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콜레라가 오염된 물을 통해 감염된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작품의 배경은 1848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등지에 콜레라가 재차 유행했을 때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1879년 콜롬비아 카르타헤나 지역이다. 콜레라는 1848년 이후 1879년을 비롯해서 몇 차례 더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카르타헤나는 1533년 스페인이 개척한 이래 잉카 제국의 금과 페루의 은 같은 보물을 실어 나르던 메인 항구였다. 18세기 때 도시는 노예무역으로 번성했다. 1819년 스페인에서 독립하고 노예제도가 폐지되자 도시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과거의 훌륭한 가문들은 폐허가 되어버린 그들이 궁궐 안에서 아무 말 없이 침몰해 갔다.”

 

소설에 등장하는 카르타헤나의 지명, 가령 마차 광장이나 라스 아니스만 등은 지금도 남아 있다. 카르타헤나는 세 지구로 나뉜다. 먼저 산 페드로 성당과 궁전이 있는 산 페드로 지역, 유서 깊은 귀족이나 부자들이 주로 사는 ‘부왕의 동네’다. 다음은 중산층과 상인이 주로 기거하는 산 디아고 지역. 마지막으로 노예나 하층민이 모여 살던 게세마니 지역이다. 이 지명과 지역은 작품에서 주요 무대로 등장하니 눈여겨봐두면 좋다.

 

마르께스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었던 사랑 이야기를 가져와 콜레라가 유행하던 시대를 설정하여 약간의 허구를 덧대 작품을 완성했다. 마르께스가 이 작품을 발표한 때는 1985년 나이 쉰일곱이었다.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처음 선보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가족과 민족 그리고 콜롬비아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1967년 발표한 『백년 동안의 고독』 이후 언젠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 보겠다고 작정하고 있었지 싶다.

 

소설을 보면 배경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단서가 나온다. 후베날 우베르노와 페르미나 다사가 파리로 신혼 여행을 갔을 때 둘은 1881년에 초연된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를 본 대목이 나온다.

 

이제 작품으로 들어가보자. 우르비노 박사는 어느 날 정원에서 앵무새를 쫓기 위해 사다리에 올랐다가 떨어져 세상을 떠난다. 조문객 틈에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서 있었다. 플로렌티노는 일흔여섯 살 된 노인으로 여태껏 독신으로 살고 있었다. 그는 검은 색 프록코트를 입고 윙 칼라 셔츠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중산모를 쓴 모습이었다. 지팡이로도 쓰이는 우산을 들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카리브 하천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마치 그는 고독한 영혼 속에서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누군가를 사랑해 오고 있었다. 미망인 페르미나 다사는 일흔 둘이었다.

 

마이크 뉴웰 감독의 영화『콜레라 시대의 사랑』 한 장면. 이하 동일

 

 

 

여담이지만 우르비노 박사가 죽었을 때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된 유명한 화가는 비애감에 젖어 죽음의 순간을 커다란 캔버스에 그렸다. 화가는 박사가 입고 있던 셔츠와 초록색 물무늬 멜빵 대신 중산모를 쓰고 까만 프록코트를 입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콜레라가 창궐하던 시대 신문 삽화가들이 중세 페스트 시대의 의사들 모습을 패러디한 것을 본 딴 것이다.

 

페르미나가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거실에 돌아왔을 때 플로렌티노가 홀로 다가왔다. “페르미나, 반세기가 넘게 이런 기회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소. 나는 영원히 당신에게 충실할 것이며 당신은 영원한 나의 사랑이라는 맹세를 다시 한 번 말하기 위해서 말이오.” 플로렌티노는 51년 9개월하고도 4일 동안 페르미나를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페르미나를 알게 된 것은 나이 25살 때였다.

 

우르비노 박사가 가운데 누워 있다. 머리 맡에 앉아 있는 이가 페르미나 다사. 어깨에 손을 올린 이가 아들 마르코 아우렐리오. 그 옆에 며느리, 딸 오펠리아와 사위가 나란히 서 있다.

 

 

플로렌티노는 페르미나가 파리로 신혼 여행을 떠난 것을 알았을 때 평생 기르게 될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밀랍을 발라 끝을 뽀족하게 세웠다.

 

당시 플로렌티노는 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청년이었다. 그가 우체국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하던 무렵 전신 기사 로타리오 투구트는 그에게 다사 집안 앞으로 온 전보를 전해주라고 시켰다. 플로렌티노가 전보를 집 주인 로렌소 다사에게 건네주고 나올 무렵, 읽기 수업을 하고 있던 페르미나를 마주보게 된다. 이때부터 둘의 사랑은 싹트기 시작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송병선 역
민음사 | 2004년 02월

 

콜레라 시대의 사랑 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송병선 역
민음사 | 2004년 02월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조구호 역
민음사 | 2007년 03월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