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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사랑의 징표를 상징하는 꽃들이 여럿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치자나무, 장미와 동백꽃, 양귀비 꽃 등을 들 수 있다. 플로렌티노는 페르미나에게 동백꽃잎에 바늘로 새긴 시를 보내기도 하고, 편지에 마른 치자 꽃을 넣기도 한다. 샤넬은 치자 향을 이용해서 ‘가드니아’라는 향수를 만들기도 했다. 누군가가 그 이름을 불러 줄 때 꽃이 되듯 사랑도 누군가 그 가치를 알고 소중히 간직할 때 꽃으로 피어난다.

 

마이크 뉴웰 감독은 영화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을 화사한 꽃으로 장식했다. 마르께스가 묘사한 작품의 분위기를 잘 포착한 것이다. 영화에서 플로렌티노 역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인상적인 악역을 보여줬던 하비에르 바르뎀이 맡았다. 

 

영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오프닝 크레딧

 

 

영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엔딩 크레딧

 

마르께스는 어릴 적 아르헨티나의 탱고 가수 까를로스 가르델의 탱고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이때 마르께스의 나이 겨우 예닐곱이었으니 참 조숙했지 싶다. 1935년 가르델은 메데인에서 자신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다른 비행기와 충돌하는 바람에 사망했다.

 

우르비노 박사는 페르미나 다사와 결혼하고 파리로 신혼 여행을 떠났다가 1년 반 만에 돌아왔다. 페르미나는 임신 6개월째였다. 우르비노는 예술 사업에 필요한 기부금을 모금하러 플로렌티노의 작은 아버지 레온 12세 사무실을 찾기도 했다. 카리브 하천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레온 12세는 가장 열성적이고 후덕한 기부자 중 한 사람이었다. 우르비노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시 축제를 부활시킬 생각을 갖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마주친 우르비노는 플로렌티노에게 “음악 좋아하십니까?”하고 묻는다. 플로렌티노는 이에 “난 가르델을 좋아합니다.”라고 답한다. 마르께스는 무려 반 평생이 지난 유년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마르케스는 사랑의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는 지고지순한 정신적 사랑이다. 플로렌티노는 페르미나와의 사랑을 완성하기까지 51년 9개월하고도 4일을 기다렸다. “재앙 속에서 사랑은 더욱 위대해지고 고귀해진다.” 그는 언제 생명을 앗아갈지 모르는 콜레라의 위협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사랑을 지켜낸 기적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의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이다. 시 축제 때 18캐럿의 황금난초상은 중국인 이민자에게 돌아갔다. 시상식 자리에서 플로렌티노는 사라 노리에가라는 40대 여자를 만났다. 은근히 수상을 기대했던 사라는 슬픔에 겨워 울먹였다. 플로렌티노는 그녀를 위로해 주다 격정적인 섹스를 나눈다. 사라가 말한다. “허리 위쪽은 영혼의 사랑이고 허리 아래쪽은 육체의 사랑이죠." 이 말은 남미 사람들이 사랑과 섹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살짝 엿보게 해준다.

 

 

마르께스의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를 보면 아버지 가브리엘 엘리히오의 여자 편력은 플로렌티노가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 “고독한 사냥꾼의 밤”을 보낸 것처럼 심했다. 아버지는 백인 어머니가 열 네 살 때 교사와 사랑에 빠져 태어난 미혼모의 아들이었다. 실제로 전신 기사 일을 했고, 바이올린을 켤 줄도 알았다. 아버지의 여자 편력이 플로렌티노가 노트 25권에 기록한 622건처럼 많았는지는 모르겠다.

 

마르께스에 따르면 아버지와 어머니 루이스 산띠아가는 어느 아이의 장례식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아버지는 학비가 부족해 의약학 공부를 그만두고 카르타헤나에서 전신 기사 일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지칠 줄 모르는 유창할 화술, 시를 술술 지어 대는 재주, 유행 음악에 맞춰 우아하게 추는 춤 솜씨, 그리고 계산된 감상을 집어넣어 켜는 바이올린 솜씨”에 빠져 들었다.

 

아버지는 신혼 여행 차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리오아차를 향해 가던 스쿠너 안에서 어머니에게 속죄처럼 사실을 털어놨다고 한다. 그는 열일곱 살 때부터 숫처녀 애인을 다섯을 두었다.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아치 마을에서 전신 기사로 일하면서 이 애인들 가운데 하나와 아벨라르도라는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당시 만 세 살이 되어 가고 있었다. 스무 살 먹었을 때는 아야뻴에서 전신 기사로 일하면서 다른 애인과 까르멘 로사라는 딸 하나를 두었고 그 아이는 생후 몇 개월이 되었는데 얼굴도 모른다고 고백했다. 상식을 훨씬 벗어난 고백임에도 어머니는 인내심이 강했던 모양이다. 부모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1927년에 마르께스가 태어났다. 열한 남매의 장남이었다.

 

마르께스는 아버지의 여자 편력이 ‘고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며 아버지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고 토로한다. 자식된 도리로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플로렌티노는 결코 어떤 여자도 페르미나를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영화는 마르께스가 묘사한 플로렌티노의 여성 편력을 거의 빠짐없이 살려냈다.

 

 

마이크 뉴웰 감독은 영화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마르께스가 묘사한 플로렌티노의 정사를 거의 빠짐없이 반영했다.

 

플로렌티노의 삶은 언뜻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리게 한다. 조르바는 육체를 악마에 비유하면서 그 악마 짓을 극단까지 몰아가면 그것이 결국 성스러움으로 전환한다고 말한다. 여자가 동침하자고 하는데 그걸 거부하는 남자는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조르바, 그는 육체적 즐거움의 화신이다. 제우스 신도 탐나는 여자를 만나면 온갖 수단을 써서 맘껏 유린했다. 하지만 제우스가 인간과 달랐던 점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사랑했다는 것이다. 조르바는 결국 유혹에 버틸 것이냐 넘어갈 것이냐 라는 이분법적인 이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 자유인이 되는 길이라고 보았다. 조르바에게 자유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힘이다. 플로렌티노 역시 페르미나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절망과 고통 속에서 내면의 자유를 찾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 “사랑은 생명 이전이고 죽음 이후이며 천지창조의 근원”이라고 노래한 것처럼.

 

마침내 페르미나가 플로렌티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둘이 여행을 떠났을 때, 플로렌티노가 페르미나에게 “당신을 위해 동정을 지켜왔던 것이오.”라고 속삭였다. 이 말은 이질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지만 영화에서 페르미나는 애교스럽게 대꾸한다. “거짓말.”

 

또한 마르께스는 사랑이 시간과 어떤 형태로 교감하느냐를 들려준다. 나이든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페르미나의 아들과 딸은 어머니가 아버지와 사랑 없는 결혼을 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 플로렌티노가 청혼했을 때 아들과 딸은 사랑에 나이가 있으며, 그 나이가 지나면 사랑은 더러워진다며 한사코 반대한다. 마르케스는 플로렌티노와 페르미나의 결합을 통해 이런 우리의 편견을 여지없이 허문다. 사랑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섹스에 대한 욕구는 나이와 상관없다. 나이가 들어도 얼마든지 사랑과 섹스를 통해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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