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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영생을 꿈꾼다. 만일 아무도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더라도 불치병에 걸리더라도 죽지 않고 그 상태로 멈춰버린다. 자연적인 노화, 불의의 사고나 부상, 피할 수 없는 질병 또한 여전하지만 그로 인해 죽는 사람은 전혀 없다. 이런 전대미문의 사실로 인해 국민들은 영원한 삶이 주어진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환호한다.

 

작가는 "커다른 이를 드러낸 늙은 아트로포스가 하루 동안 잠시 그녀의 낫을 옆으로 밀어두기라도 한 것 같았다."라고 묘사했다. 헤시오도스가 쓴 『신들의 계보』를 보면 아트로포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밤은 또 운명의 여신들과 무자비하게 응징하는 죽음의 여신들을 [인간들이 태어날 때 그들에게 행운과 불행을 정해주는 클로토와 라케시스와 아트로포스를] 낳으니 이들은 인간들과 신들의 범법을 추적하되 죄지은 자들을 응징하기 전까지는 결코 무서운 노여움을 풀지 않는다."

 

운명의 세 여신

 

운명의 세 여신 중 막내 아트로포스는 인간이 죽을 때가 되면 생명의 실을 자른다.

 

여기서 클로토, 라케시스와 아트로포스는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세 여신, '모이라이'(로마 신화에서는 '파르카')다. 첫째 클로토는 운명의 실을 잣는다. 임신 10달을 관장한다. 둘째 라케시스는 인간에게 주어진 생명이 시간 만큼 실을 할당한다. 막내 아트로포스는 인간이 죽을 때가 되면 가위로 생명의 실을 자른다.

 

하지만 죽음이 중지된 나라의 국경 너머에서는 사람들이 평소와 마찬가지로 계속 죽고 있다. 이제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이 나라는 과연 천국일까, 지옥일까? <눈먼 자들의 도시> 만큼 기발한 상상력을 선사하는 이 작품은 죽음에 관해 되돌아보게 한다. 

 

죽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환호도 잠시다. 그다음에 오는 것은 무엇일까? 불안과 공포다. 양로원이나 요양원이 부족해지고, 연금이 고갈되고, 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에 의지하지 않는다.

 

맨먼저 장의사들이 민원을 넣었다. 이제 자기들은 망하게 생겼으니 사람 대신 가축을 매장하거나 화장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장례업계가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민원은 생명보험을 해지해 달라는 요구였다. 아무도 죽지 않으니 보험금을 탈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보험업계는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나이 여든이 되면 죽은 것으로 하고 보험금을 지불하겠다는 것이었다. 더 많은 보험금을 받기 위해 계약기간을 80년 더 연장할 수도 있다.

 

어느 날 국경 근처 마을에서 가망이 없는 노인과 아이를 수레에 싣고 국경을 넘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대서특필되었다. 언론과 사람들은 비난의 손가락질을 해댔지만, 불과 48시간 뒤 국경 지역 전역에서 똑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국경을 맞댄 세 나라가 강력하게 항의해 죽음이 중지된 나라 총리는 국경을 봉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도 무한정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도리가 없었다. 주요 간선 도로 외 지방도로나 오솔길은 봉쇄를 풀도록 조치했다. 자경단과 마피아를 동원해 사람들이 죽을 자를 싣고 암암리에 국경을 넘는 것을 묵인했다. 이번에는 이웃 세 나라가 발끈해서 자신들의 군대로 국경을 봉쇄하기 시작했다.

 

다시 새로운 조치를 고안했다. 국경을 넘어 사람이 죽은 다음, 다시 되돌아와 장례를 치르는 방안이었다. 장의사가 즉각 환영했고, 이웃 나라도 찬성이었다.

 

죽음이 중지된 지 일곱 달 후 대뜸 '죽음(death)'이 보낸 편지 한 통이 방송사 사장 앞으로 전달됐다. 오늘밤 자정을 넘기면 예전과 같은 시간으로 돌아간다는 것. 즉 이제 더 이 죽음의 중지는 없다는 통지였다. 즉시 널리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날 자정을 넘기자 육만이천백팔십 명이 한꺼번에 영원한 안식으로 돌아갔다.

 

'죽음'은 첼리스트가 보던 곤충도감에서 해골박각시나방을 발견하고, 죽음에 이를 자에게 보내는 알림장, 자주색 편지 대신 이 나방을 메신저로 사용하면 어떨까하고 생각하는 대목이 나온다. 언뜻 MS의 이메일계정 아웃룩 익스프레스로 보내면 어떨까 하는 내용도 있다. 노작가의 호쾌한 유머가 아닐 수 없다.

 

 

해골박각시나방

 

해골박각시나방의 학명은 아케론티아 아트로포스(Acherontia Atropos). 아케론티아는 하데스 지옥에 흐르는 강 아케론에서 딴 것이다. 하데스 왕국에는 모두 다섯 강이 있다; 아케론, 코키투스, 플레게톤, 레테, 스틱스. 아트로포스는 운명의 세 여신 중 막내 이름이다.

 

한편 아케론 강은 오늘날 그리스에 실재로 존재한다. 뱃사공 카론은 원래 아케론에 있었으나 스틱스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다섯 강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아케론은 슬픔/비통, 코키투스는 탄식/비탄, 플레게톤은 불, 레테는 망각, 스틱스는 증오.

 

그리스 아케론 강

 

해골박각시나방은 영화 양들의 침묵에도 등장한다. 영화 포스터를 보면 나방이 스탈링의 입을 막고 있다. 자세히 보면 여자 7명이 어우러진 사진이다. 달리의 작품이다.

 

영화 양들의 침묵 포스터

 

나방에 있는 해골 무늬는 달리가 찍은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타나토스는 낫을 들고 검은 수의을 입은 해골 모습의 그림 리퍼(Grim Reaper)의 유래는 그리스 신화에서 농경의 신 크로노스(Cronos)로 거슬러 올라간다. 크로노스는 농작물이 다 자라면 커다란 낫으로 베어 수확했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Chronos)가 철자가 비슷했던 탓에 나중에 크로노스(Cronos)는 '시간과 농경의 신'을 뜻하게 됐다. 리퍼는 중세 페스트가 유행하기 전만 해도 저승사자처럼 망자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네주는 안내 역할에 그쳤다.

 

그림 리퍼(Grim Reaper). 사라마구는 작품에서 아트로포스를 '죽음'의 모델로 삼았다.

 

리퍼가 널리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페스트가 돌던 시기였다. 이 때 사람들이 무수히 죽어나가는 모습이 마치 크로노스가 수확물을 낫으로 한꺼번에 베듯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사라마구는 이 작품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해 볼 수 있는 상상에 그친다면 낭만적이겠지만, 이게 현실이 된다면 경악스런 공포가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어떻게 보면 삶과 죽음은 뫼비우스의 띠요, 되돌이표다.  전반부는 아무도 죽지 않아서 생긴 불행을 묘사했고, 후반부는 아무도 죽지 않아서 다행인 상황을 그렸다.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듯, 삶에서 행복과 불행은 한 끗 차이다. 우리는 삶도 죽음도 함께 한다.

 

작가가 이 작품을 발표한 때는 2005년, 83세가 되던 해였다. 이제 자신도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나이가 되었다. 평소 소탈하던 그 성격 대로 한 편의 멋진 블랙 유머를 그려냈다. 그는 5년 뒤 세상을 떠났다.

 

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저/정영목 역
해냄 | 2009년 02월

 

신들의 계보

헤시오도스 저/천병희 역
숲 | 200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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