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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의 이웃이 양을 잃어버렸다. 그는 집안사람들을 모았고, 그것도 부족해 양자의 하인까지 빌려서 양을 찾으러 나섰다. 이를 본 양자가 물었다.

“아! 잃은 양은 한 마리인데 찾아 나서는 사람은 왜 그렇게 많소?”

 

이웃이 대답했다.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참 뒤에 사람들이 되돌아오자 양자가 물었다.

“잃어버린 양을 찾았소?”

 

이웃이 대답했다.

“찾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찾지 못했소?”

“갈림길 속에 또다시 갈림길이 있더군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결국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양자는 근심스러운 얼굴빛으로 한참이나 말을 하지 않았고 하루 종일 웃지도 않았다. 문인들이 이상히 여겨 물어보았다.

“양이란 하찮은 가축일 뿐입니다. 게다가 선생님 소유도 아닌데 그까짓 양 한 마리를 두고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으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그래도 양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문인들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제자 맹손양이 이 사실을 심도자(心都子)에게 전해주었다. 심도자는 다음 날 맹손양과 함께 양자에게 가서 다시 물어보았다.

“옛날에 삼형제가 있었는데 제나라와 노나라 지방을 떠돌면서 같은 스승을 모시고 공부해 인의의 도를 터득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세 아들에게 인의의 도가 어떤 것인지 물었습니다.

 

맏형은 이렇게 대답했지요.

‘인의란 자기 몸을 먼저 사랑하고 나서 명성을 얻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인의란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명성을 구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인의란 자기 몸과 명성을 동시에 구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 해석은 서로 상반되지만 모두 유가가 주장하는 바입니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요?”

 

양자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 하수 옆에 살면서 물에 익숙해져 헤엄에 자신이 붙자, 사공의 일을 업으로 삼아 백 명을 먹여 살릴 만한 부자가 되었다. 그래서 양식을 짊어지고 배우겠다고 오는 이들이 무리를 이루었지만 거의 절반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들은 원래 헤엄쳐 살아나는 법을 배우려 했지 물에 빠져 죽는 법을 배우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결과는 이처럼 달랐다. 그대 생각에는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심도자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나오자 맹손양이 질책했다.

“당신의 질문은 어째서 그리도 헛돌고 선생님의 대답은 어째서 그처럼 괴상하오? 나는 더욱 헷갈려졌소.”

 

이에 심도자가 말했다.

“갈림길이 많아 양을 잃은 것처럼 공부하는 사람들은 방법이 많아 성명(性命)을 잃게 된 것이네. 배움이란 원래 뿌리가 하나지만 끝에 가서는 차이가 나고 마는 것이 이처럼 심하다네. 오직 같은 곳으로 돌아가 무엇이 뿌리인지 찾아야 득실이 없어지네. 당신은 선생님 문하에서 선생님의 도를 잘 배웠으면서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군.”

 

열자

열어구 저/정유선 역
동아일보사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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