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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카렐 코지크 (Karel Kosik 1926~2003)

구체성의 변증법(Dialektik des Konkreten,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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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에 체코에서 출생한 카렐 코지크는 전후 동구 공산권체제 확립 후 헝가리를 비롯한 체코, 폴란드, 루마니아 등지에서 고개를 든 이른바 자주의 철학자이다. 특히 1950년대의 체코에서 일국의 철학 및 사회과학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태동한 실천파(Praxis-Gruppe)의 이론적 지도자로서의 그가 차지하는 위치나 성격이 언어와 이념의 장벽을 넘어 차츰 서방세계에까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여기 소개되는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거작에서 비롯된다.

 

본서가 1963년에 체코어로 발간된 후 곧 이어 서독, 미국 등지에서 번역 소개되면서 그 당시까지만 해도 전혀 미지의 세계에 갇혀 있던 코지크는 일약 코르슈, 루카치, 그람시 등을 잇는 네오마르크시즘 이론의 최선봉 대열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 흐름을 타고 프랑스의 가로디(R. Garaudy), 이탈리아의 톨리아티(Togliatti) 등이 중심이 된 탈소련화를 향한 유로코뮤니즘 운동을 고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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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크 자신도 말하듯이 만약 철학이란 것이 세계 속에서 저마다의 인간이 차지하는 바로 그 위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 철학의 방법과 내용을 이룬다고도 할 변증법은 이렇듯 나 자신이 바로잡고 있는 세계의 진상을 파악하고, 그 터전 위에서 객관적 세계에 대한 주체적 자아의 입장을 정립함으로써 마침내 나와 세계가 한데 어우러진 역동적 관계이며, 그 과정(Prozeβ)으로서의 사회역사적 총체성(Totalitat)은 어떠한 구체적 양상을 띠는 것인가를 규명함을 목적으로 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 책의 표제로 내걸린 구체성의 변증법과 구체적 총체성의 변증법에 다시 인간과 세계의 문제성 탐구라는 부제가 달린 것은 인간의 기본적 생존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경제적 요소와 다시 이 물질적 생활 토대 위에 구축된 철학적, 형이상학적 관념의 제반 성격을 규명함으로써 결국 객관세계와의 물질적 정신적 교호작용을 펴 나가는 주체적 인간의 실천적 활동성과 다시 이 생동한 자아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역사적 총체성과의 합일점을 근거지으려는 진지한 인간주의 사상의 면모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변증법은 사상 그 자체(die Sache selbst)를 인식하여 이를 서술(Darstellung)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바로 이 사상 자체를 한낱 감각적 수용성에서 비롯된 허구적 가상(Schein)으로부터 분리하여 그 표면적 현상(Erscheinung)의 배후에 은폐돼 있는 진상이며 본성, 본질(Wesen)을 투시하고 파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허구와 가상의 베일을 벗기기 위해서는 단순한 직접적 방법이 아닌 우회적 방법, 즉 인식주체가 객관계에 적극적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매개적 노력으로 나타나는 사회실천적 역사철학적 지향과 결단을 필요로 한다.

 

이렇듯 주체와 객체 또는 인간과 자연 등을 매개하고 연결하는 변증법적 발전의 원리가 논리적, 인식론적인 중심 카테고리로 정형화된 것이 다름아닌 즉자(卽自, Ansich)와 대자(대자, Fursich)라는 개념모델일진대 어차피 변증법적 존재론(dialektische Ontologie)의 성격을 담고 있는 코지크의 주요논지에서는 끊임없이 그리고 다양하게 전개되는 인간의 활동, 노동 및 실천을 총체적 역사세계 속에서 구체화시켜 나가는 매개적 운동과 이행의 문제가 긍정과 부정, 존재와 무, 시원과 종결 또는 유한과 무한 등에서 나타나는 극히 사변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절실한 인간적 노력의 현장성을 통해서 좀더 포괄적인 치밀한 논리로 뒷받침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실천의 의의와 그 개념설정을 위해 남다른 업적을 남긴 것이 바로 마르크스 청년시대의 인간주의 사상이었다. 현상학파에서 말하는 한낱 그 어떤 것으로의 지향성과는 달리 그에게 있어서 실천은 곧 자기의 현실세계를 바로 인간의 것으로 화하게 하려는 다양한 양식으로 나타나며 동시에 세계내적 존재의 의미는 오직 인간의 적극적 활동성이 가미된 역사적 사회적 산물로 이해되기에 이른다. 이렇듯 사회적 성격으로 규정돼야만 할 인간의 활동과 그 기반 위에 설립된 현대세계, 즉 근대자본주의의 기본성격을 규명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상품(Ware)분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 마르크스는 헤겔논리학을 곧 화폐의 논리(Logik des Geldes)라고 바꿔 말함으로써 여기서 상품은 곧 논리학의 시원(Anfang)과 맞먹게 된다. 그것도 그럴 것이 변증법의 연구(Forschung)는 임의의 특정 문제로부터 시작될 수 있으나 그의 서술만은 어디까지나 사상 자체의 석명(釋明, Explikation)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품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와 그 경제운용에서 비롯된 현상들을 근본적으로 특징지우는, 총체적 현실인식을 위한 정신적 지적 재생산의 방법론적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총체성 개념에 대해서 포퍼나 하이에크 등은 1) 모든 것은 서로 연관성을 지니며, 2)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는 식의 빈틈없이 전체적인 것(restlos totales), 즉 모든 사실의 총화(Summe aller Fakten)로 이해하지만 예컨대 루카치는 현실적 역사과정의 각 계기마다에 스며있는 실천적 역동적 의미로 본 변증법적 전체라는 사실(Fakten eines dialektischen Ganzen)을 드러내준다. 이러한 변증법논리를 빌어서 그는 하이데거에 의한 일상성의 형이상학이 문제로 하는 우려(Sorge)의 개념이 실은 인간의 생리적 내지 공리적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며 더 나아가서 이 우려한다(Bosorgen)는 것은 현상적으로 소외된 세계 내에 있는 인간의 한가지 실천 양태라고 하는 역설적 논리를 내놓는다.

 

근대 이후의 산업화과정에서 나타난 소외의 원인은 베버, 루카치, 밀즈가 말하듯 이성의 상실과 합리화의 촉진에서 오히려 비합리화로 이어진 데 있다. 이제 이 거대한 현대사의 풍랑 속에서 변증법적 이성은 1) 더 이상 합리적 이성 초역사성이 아닌 이성의 역사성에 주목하여, 2) 분석의 기준으로 삼고, 3) 합리적 사유만이 아닌 현실의 합리적 구성, 즉 자유의 실현을 추구해야 하며, 4) 인간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역사적 확정성을 지닌 부정성을 발휘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상 현대자본주의에서 파생된 전반적 문제의 해명을 시도한 『자본론』은 경제학이면서 동시에 사회학, 역사철학 및 철학 일반과 관련되는 데 그 난해성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과학, 즉 경제학과 변증법, 즉 철학이 유기적인 체계적 연관을 지닌다.

 

비록 마르크스가 인류의 역사는 오직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했지만 결코 세계사의 전시대가 전도된 것은 아니고 언제나 계급적인 것과 함께 인간적인 요소도 기존의 역사 속에는 통일돼 있다. 이런 점에서 코지크는 철학의 실현에서 바로 그 지양도 가능하다고 보는 것을 종말론적 허구(eschatologische Fiktion)로 지적한다. 이 점에서 마르쿠제가 마르크스를 헤겔의 청산자로서 철학에 대체되는 변증법적 사회이론을 창시한다고 보는 것을 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자본론』의 구조해명을 위한 실마리로서의 상품분석은 근원적으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타자의 노동에 대한 착취문제와 결부되므로 이 점에 있어서  『자본론』의 처음과 끝은 바로 상품과 계급이 된다. 착취제로도서 나타나는 모순을 의식하는 실천의 역사적 형식이 더듬어가는 오딧세이는 결국 혁명적 실천에 다다른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이것을 마르크스는 엄청난 의식(enormes Bewusβtein)이라고 하였다.

 

그는 다시 노동의 철학에서 실천적 인간에 의한 역사 속에서의 자유의 실현을 추구해 나간다. 이때 노동이란 결코 경제활동의 한 형식으로서 분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에 따르는 하나의 시각(Aspekt)에서 다루어져야 하므로 조르주 프리드만(Georges Friedmann)이나 피에르 나빌(Pierre Naville)과 같이 노동사회학, 노동심리학, 노동신학, 노동생리학, 노동경제학의 분석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이렇듯 1) 노동은 인간이 행하며, 2)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이고, 3)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자기 변화도 가져온다는 점을 들면서 그는 다시 인간적 주체형성의 기초가 되는 실천은 인간존재의 한 영역이어서 이것은 결코 이론적 작업과 구별되는 실제적 활동이 아니라 바로 현실 구성체로서의 인간존재의 규정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실천은 바로 생 그 자체와 관련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그는 하이데거나 부버의 인간의 유한성 내지 무한성에 관한 인간학적 통찰과는 달리 오직 현실 속에 투기(投企, Entwurf)된 인간의 문제는 자연과 역사의 총체성으로서의 현실 자체의 인식을 통해서만 그 철학적 해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간과 자연의 보편적 상관성 문제도 역시 의식이나 물질 어느 한편을 토대로 해서가 아니라 오직 실제적으로 활동하는 중심(real tatige Mitte)으로서의 실천의 기초 위에서는 양자간의 분열, 대립도 극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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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본서의 평가와 관련하여 지적돼야 할 점은 1) 헤겔 역사철학을 신비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2) 철학의 실현을 통해서도 결코 철학의 지양·폐기는 불가능하며, 3) 인간과 자연의 문제는 단지 의식이냐 물질이냐라는 양분논법으로서가 아니라 그 중심적 통일의 힘으로서의 실천을 통해서만 해명될 수 있다고 한 것 등이다. 여기서 우리는 헤겔과 마르크스 사이를 어렵게 헤쳐나가는 듯한 독보적 사상가로서의 코지크의 면모를 본다. 결국 정통 마르크스주의도 아니며 그렇다고 헤겔마르크스주의(Hegelmarxismus)류의 엄밀한 변증법의 논리규명에 집착하는 것만도 아닌 특유의 실천론이 참신한 이 시대의 이념적 지침으로 나온 것을 의심치 않는다.

 

* 그밖의 주요 저서 및 논문

체코 급진민주주의론Ceska radikalni demokracie, 프라하, 1958

마르크스주의와 실존주의Marxismus und Existenstialismus, 미발표 원고

철학으로서의 철학사Dejiny filosofie jako filosofie, 프라하, 1958

 

임석진 (전 명지대학교, 서양철학과 교수)

 

구체성의 변증법

카렐 코지크 저/박정호 역
지만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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