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12. 메를로-뽕띠 (Maurice Merleau-Ponty, 1908~1961)
 
《눈과 마음》 (L’oeil et L’esprit, 1964)

 

 

 

1

아마도 모리스 메를로-뽕띠 만큼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밀착해 있었던 철학자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그는 20세기 유럽을 지배했던 3대 사조인 현상학과 실존주의,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를 편력하며, 그들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종합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철학적 문제란 이 시대의 비이성적인 국면을 탐구하여 그것을 확대된 이성의 개념에로 통합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는 데카르트 이후 중요한 철학적 물음인 의식과 대상의 관계에 주목하고, 인간과 세계, 타인과의 상호 관계 등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1908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태어나, 에콜 노르말을 졸업하고 모교와 리용, 소르본느대학 등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가르쳤으며, 사르트르와 함께 현대(Les Temps Moderns)라는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주저인 지각의 현상학(Phenomenologie de la perception)을 통해 철학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한 그는 1952년 베르그송의 뒤를 이어 가장 연소한 나이로 프랑스대학(College de France) 교수로 임명되어 1961년 예기치 않은 사고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곳에서 강의하였다.

 

그의 현상학은 전통적인 경험주의철학과 합리주의철학간의 중간노선으로서 흔히 애매성의 철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현상학은 지각의 현상학이라는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경험의 1차적 형태인 지각체험을 인식의 근원으로 상정해 놓고, 이에 입각하여 인간과 세계, 의식과 대상의 관계 등을 새롭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그러한 지각의 현상으로부터 언어와 문화와 이성, 그리고 예술적·윤리적·종교적 체험에 대한 탐구에로 확대되고 있다.

 

메를로-뽕띠의 철학체계를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로 그가 계승한 현상학자 후설과 하이데거 및 사르트르의 철학을 간단히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메를로-뽕띠는 자신이 후설의 생활세계(Lebenswelt)의 개념을 발전시키려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양자의 차이점은 후설이 선험적 이성과 범주적 사고의 현상학을 확립하고자 하여 지각적 의식을 다만 경험의 한 양상으로 보았다면, 메를로-뽕띠는 합리성의 현상학을 지각의 토대에 기초시키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또한 그는 다른 어떤 현상학자보다도 하이데거에 근접해 있으며, 특히 그의 존재와 시간에 영향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 양자는 인간의 실재성의 특징을 지향성으로서 파악하고, 그 체험 속에서 세계는 인간의 생활세계로서 구성된다고 보는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양자간에는 차이가 있다. 메를로-뽕띠에 있어서의 지각의 기본성이라는 테마에 의하면 지각된 세계가 기본적 실재로서 간주되고 있는 반면에, 하이데거에 있어서의 기본적 실재는 이 세계가 아니라 존재자(Dasein)의 존재(Sein)에 있으며, 따라서 지각적인 것을 포함한 모든 인간체험의 분석은 오직 존재에의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평생의 친구인 사르트르와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사르트르는 실재를 즉자(ein-soi)와 대자(pour-soi)로 나누고 있는데, 이러한 이분법은 의식과 세계, 의식과 신체간의 변증법적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난점을 맞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사르트르는 후설 이상으로 의식을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순수의식으로서 간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반하여 메를로-뽕띠는 육화된 코기토’(incarnate cogito)의 개념을 주장함으로써 근본적인 행위로서 이 세계에 대한 지각적 구성을 말하고 있다.

 

2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눈과 마음은 본래 아트 드 프랑스(Art de France)지 창간호(1961.1)에 실린 기념논문이었다. 그 뒤 그의 사후  현대지에 재수록되었다가 1964년 갈리마르판으로 출판된 것으로서, 영어로는 지각의 기본성(Primacy of Perception) 속에, 우리말로는 필자가 그의 논문을 모아 편역한 현상학과 예술(서광사, 1983)속에 실린 바 있다.

 

이 논문은 사르트르도 평한 바와 같이 메를로-뽕띠의 초기 사상을 압축하고 있는 가장 풍부하고 함축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즉 과학일반과 데카르트식의 시각(sight) 개념을 비판한 후, ‘본다는 것의 참된 의미와 그에 관련된 회화활동의 본질을 밝혀냄으로써, 이 논문은 그의 유고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타나고 있는 존재론적 관심에로의 이행을 암시해 놓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데카르트식의 감각론에 의하면 눈은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며 단지 정신만이 눈과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다고 브룬슈비크는 말하고 있다. 메를로-뽕띠는 눈과 정신의 관계에 대해 이와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한다. 눈은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지만 시각을 소유한 신체는 자기 자신을 본다는 입장이다. 나 자신이 느낀다는 것을 내가 느낄 수 있다는 이 사실이 결과적으로는 신체의 재귀성으로 확대되고, 그러할 때 감각은 존재의 중요한 상관물로 해석되게 마련이다.

 

한마디로 이 논문은 시각에의 찬미라고 말할 수 있다. 시각은 존재(Being)의 모든 양상과의 만남이며, 회화는 시각의 연장으로서, 따라서 우리의 존재에의 접근 방식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메를로-뽕띠는 화가의 그린다는 행위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고찰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린다는 것은 구상이든 비구상이든 어쨌든 보았기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화가는 볼 수 없는 것을 그리지 않는다 할 때, 화가가 그리는 대상은 어떻든 세계 내 존재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계 한가운데 있다고 해도 일상적인 시각으로는 볼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화가의 역할인 것이다.

 

그렇다면 화가가 보는 대상은 그의 내부에 존재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즉 화가에는 동일한 대상이 세계 내에도 그의 시각 속에도 존재하는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러한 착각을 가능케 하는 화가의 시각이란 어떤 것인가? 이것이 메를로-뽕띠가 눈과 마음에서 해결하려 했던 과제였다.

 

그에 의하면 화가는 자신의 신체를 세계에 맡김으로써 세계를 그림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고 한다. 곧 회화의 수수께끼는 신체의 비밀을 설명함으로써 밝혀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논지를 펴기 위해 그는 데카르의 시각론을 세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앞서 암시했듯이 데카르트에 있어서는 본다는 행위가 정신(혹은 마음)의 사고작용으로 환원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먼 산을 보는 것은 빛이 눈에 들어와 망막 위에 무언인가를 만들고, 그것을 우리가 오성으로써 판단하기 때문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먼 산을 본다기보다는 생각한다고 말해야 될 것이라는 것이 메를로-뽕띠의 입장이다. 거기에서는 거리의 문제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본다는 현상을 관찰해 보면 우리는 눈이 보지 않은 것을 볼 수도 없지만, 또한 우리에게서 떨어져 있지 않은 것도 볼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본다는 것은 떨어져서 소유한다는 말로도 될 수가 있다. 그런데 거리란 내가 있는 이곳에서 저곳까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므로, 그것은 세계 내에 존재하는 신체로서의 나에게 열려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체를 갖지 않은 정신 속에는 그곳에 선행되어야 할 이곳이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사물을 본다는 현상은 불가능하다. 데카르트 처럼 시점이 어느 곳에도 얽매여 있지 않은 순수한 정신이 되려고 할 때, 그를 기만하는 것은 눈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시점을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공비행적인 사유일 뿐이다.

 

그렇다면 감각세계는 정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체에 의해 구성되는 것일까? 메를로-뽕띠는 이 물음에 대해서 신체 그 자체의 패러독스를 끌어냄으로써 답하고 있다. 즉 나의 신체는 보는것인 동시에 보여지는것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는 무엇인가를 보는 자신의 신체를 볼 수가 있다. 따라서 나와 세계간에는 감각의 이중관계가 성립되는데, 내가 보는 것인 한 세계의 중심은 나의 신체이며, 한편 내가 보여지는 것인 한 나는 보여지는 것인 세계의 틀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요컨대 우리는 시각체험 속에서 주체인 동시에 객체로 되는 신체의 양면성, 신체의 재귀성을 체험케 된다는 것이다.

 

회화의 본질은 이 불가사의한 교환체계에 있다는 것이다. 곧 회화는 사물의 육화된 모습, 말없는 존재의 표현인 것으로서 느낌의 이중성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회화란 존재의 들숨과 날숨이 아주 가냘프게만 구별되어 더 이상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그리는 사람과 그려진 것이 구별될 수 없는존재의 호흡이며, 보편적 존재의 현존화 작업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메를로-뽕띠는 눈과 마음에서 보이는 것보이지 않는보편적 존재라는 독창적 표현을 통해 그가 세잔느를 분석하고 있는 자리에서 보여주었던 회화에 대한 초기의 현상학적 입장으로부터 회화란 존재의 무개념적 표현이라는 존재론적 입장에로 이행하고 있다. 요컨대 그는 회화를 통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존재방식을 설명하고 있으니, 이것이 다름 아닌 신체의 양면성이요 재귀성인 것이다.

 

* 그밖의 주요 저서 및 논문

행동의 구조La Structure de Comportement, 1942

센스와 넌센스Sens et Non-Sens, 1948

철학 예찬Eloge de la philosophie, 1953

변증법의 모험Les Aventures de la Dialectique, 1955

기호들Signes, 1960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Le Visible et l'invisible , 1964

세계의 산문La Prose de Monde, 1969

 

오병남 (서울대 명예교수·예술철학)

 

현상학과 예술

메를로 퐁티 저/오병남 역
서광사 | 1989년 02월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eunbi

    현상학 한참 공부할 때 메를로 뽕티를 접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다시 듣는 사상가 입니다.^^

    2019.10.09 17:3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사랑지기

      아 그러시군요~ 저도 메를로 뽕티를 열심히 읽어보려 합니다~ ^^

      2019.10.09 21:23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