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여행을 떠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니 어떤 글이 나올 지가 정확하겠다. 이 책은 네덜란드 출신 작가 세스 노터봄이 1950년대 네덜란드에서 남미의 수리남까지 운항하는 장거리 선박의 선원으로 첫 장기 여행을 한 이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체험한 경험과 감상을 적은 것이다.
최근 독서신문이 예스24의 도서매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출판 시장에서 에세이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작가의 여행기들이 강세를 보였다.
세스 노터봄이 쓴 『유목민 호텔』 역시 마찬가지다. 이국적인 분위기에 능준한 문체로 여행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인생을 성찰하는 작가의 글은 우리에게 삶을 위한 영감을 안겨준다.
서문을 쓴 아르헨티나 작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유목민 호텔’의 제목이 틀려먹었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유모민은 절대로 한곳에 있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노터봄은 천 개의 장소에 한꺼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찬도 다시 없을 것이다.
노터봄은 여행은 우리가 배워야 하는 무엇이라고 말한다. 여행이란 혼자인 동안에도 끊임없이 타인과 접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쉼 없이 여행하는 사람은 언제나 다른 어딘가에 있다. 이 말은 당신 자신에게도 적용되므로 당신은 늘 부재중이며, 다른 사람들, 친구들에게도 그렇다. 왜냐하면 당신 자신으로 보면 당신은 ‘다른 어딘가’에 있기에 어딘가에는 ‘부재중’이지만, 또한 어딘가에는 늘 ‘있기’ 때문인데, 요컨대 당신 자신에게 말이다.” - 17쪽
작가가 여행을 시작한 것은 1957년 스물네 살이 되던 해 화물선 그란 리오호의 수습 선원 신분으로 리스본, 트리니다드, 조지타운을 거쳐 수리남으로 떠난 여정이었다. 이때 여행에서 쓴 글이 1993년 『수리남의 왕』이라는 제목을 단 얇은 책으로 나왔다.
수리남은 아프리카에 있는 인구 40만 명의 소국이다. 한때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가 1975년 독립했다. 세 번째 이야기 ‘감비아강 보트 여행’ 편을 보면 수리남이 다시 등장한다. 감비아는 감비아강 이름을 따온 나라다. 세네갈 안에 감비아강을 따라 막대 모양으로 길게 뻗은 곳으로인구는 40만 명, 수리남의 인구와 맞먹는단다.
우여곡절 끝에 감비아에 거의 다다르게 되었을 무렵 작가가 묘사한 전경이 인상적이다.
“나무들, 바오밥 나무의 숙연한 그늘, 울타리에 모여 있는 흑인 몇 사람, 소방차가 우리와 함께 내달리고, 벗겨낸 듯 허연 스코틀랜드 여승무원들은 벌써 이것과 겉돌며, 비행기 안의 ‘제조된’ 공기는 이제 곧 열대야의 후덥지근한 공기로 바뀔 것이다. 나는 감비아를 잘 모른다.” - 51쪽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감비아를 전혀 몰랐다. 감비아라는 나라 이름은 한두 번 들어보았음직 하건만, 정작 이 나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땅콩을 재배하여 먹고 살고, 군대가 없으며, 텔레비전도 없단다. 신문은 오직 한 가지로 주 3회 발간되며, 의회는 두 달에 한 번 소집된다. 작가가 여행한 때가 1970년대 중반이었으니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감비아의 수도 반줄은 한때 배서스트로 불렸다. 영국이 여기를 노예무역 거점으로 삼으면서, 당시 영국의 식민정책을 맡은 배서스트 백작 3세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973년에 반줄로 바뀌었다. 이렇듯 아프리카 땅의 이름 하나에도 제국주의시절의 잔상이 배여 있다. 작가는 1970년대 중반 감비아강의 하류에 있는 반줄에서 400킬로미터 정도 강을 거슬러 바세까지 보트로 여행했다.
이외 1918년까지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였던 뮌헨(1989, 괄호안 숫자는 집필 연도, 이하 동일), 호주 캔버라 전쟁 기념관 이야기(1989), 아일랜드의 아란 섬들(2000), 한때 제임스 조이스가 머물며 글을 쓰곤 했던 식당 크로넨할레가 있는 취리히(2002).
작가는 캔버라 전쟁 기념관에서 자신이 맞이했던 제2차 세계 대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2차 대전이 발발하던 무렵 작가는 겨우 일곱 살이었지만 그가 목격한 전쟁의 참상은 또렷했다.
한편 1915년 4월 25일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은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터키 갈리폴리에 상륙했다. 당시 갈리폴리는 영국 연합군과 오스만 제국군이 대립하여 사상자가 무려 50만에 달한 치열한 전투였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이 날을 앤잭 데이(ANZAC Day, Australia New Zealand Army Corps)라 하여 우리의 현충일 같이 기념하고 있다. 캔버라 전쟁 기념관에는 갈리폴리 전투와 1차 대전에서 사망한 호주군 6만 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작가가 묵었던 호텔에 관한 이야기 두 편도 좋았다. 하나는 바르셀로나의 리츠 호텔(1981)에 관한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모아들인 호텔 편지지들을 훑어보면서 자신이 묵었던 호텔을 반추하는 모습(2002)이다.
“그 색바랜 편지지에서 노래하는 뭇 이름들이 나의 지나온 움직임을 기록해준다. 그 모든 방에서 나는 한 번씩은, 내가 잊은 꿈과 잊지 못한 꿈을 다시 꾸었으며, 지금은 버마, 니제르, 또는 버지니아의 이름 모를 다른 호텔들과 함께, 상상 속 다른 호텔의 일부가 되었다.” - 371쪽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