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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끝으로의 여행

[도서] 밤 끝으로의 여행

루이 훼르디낭 쎌린느 저/이형식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최측의농간에서 2020년을 여는 첫 책은 루이-훼르디낭 쎌린느의 문제적 데뷔작, 밤 끝으로의 여행이다. 쎌린느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삶이라는 밤의 시간을 배회하는 비참한 인간의 모습을 실감있게 드러냈다.

밤 끝으로의 여행2004년 동문선에서 발간되었지만 이내 절판되어 많은 독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 바 있다. 최측의농간은 이번 신판을 내면서 번역작가와 함께 초판에 있던 일부 오기를 바로잡았다.

쎌린느의 본명은 루이-훼르디낭 데뚜슈다. 그는 1894년 파리 근교에 있는 쿠르브부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어머니는 레이스 가게를 운영했다. 18살 때(1911) 3년 계약으로 군에 입대했다. 랑부예에 주둔 중인 제12기갑연대에 배속 받은 그는 하사관이라는 계급장을 달 때까지 군인 생활을 계속했다.

군 생활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던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졌다. 얼마 후 그는 무공 훈장을 받았다. 바르다뮈가 훈장을 받았던 것처럼. 영국을 예찬했던 쎌린느는 자원해서 영국으로 파견됐다. 그곳에서 쎌린느는 독일군이 퇴각한 카메룬을 접수하기 위해 파병됐다. 카메룬이 독일의 식민지가 된 것은 1884~1885년이었다.

전역한 그는 우방기-상하 삼림회사에서 고용되어 비코빔보로 향했다. 그는 비코빔보까지 3주 동안 걸어서 갔다고 전한다. 거기서 농장 일을 하면서 쎌린느는 말리리아와 이질에 걸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한편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의대에 복귀한 쎌린느는 파스퇴르 연구소의 연수생 자격을 얻었다. 연구소에서는 해초류와 세균을 연구하라며 로스코프로 파견했다.

쎌린느는 한때 제네바 국제연맹 자문관이 되어 미국, 캐나다, 쿠바 등지로 출장 다니면서 여러 국제보건관련 업무를 처리했다. 이후 파리 근교 클리시라는 곳에 의원을 개업했다. 낮에는 환자를 진료하고 밤에는 소설을 썼다. 이렇게 분투하던 쎌린느는 마침내 1932밤 끝으로의 여행을 발표했다. 출간 후 독자들의 반향은 대단했다.

밤 끝으로의 여행은 쎌린느 자신의 체험이 담긴 실존 소설이다. 주인공 바르다뮈는 쎌린느처럼 의과대학에 다니다가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자원해 입대했다. 그가 목격한 전쟁은 더러운 인간들이 판치는 희망 없는 곳이었다. 그에게 전쟁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고,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면서 그가 바라는 유일한 희망은 오직 한 시간이라도 살아남는 것이었다.

 

“내일이란 까마득히 먼 것이었고, 그러한 내일이란 별 의미가 없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기실 한 시간을 더 살아남는 사실이 중요하였고, 모든 것이 살육될 운명에 처해진 세계 속에서의 단 한 시간, 그것은 이미 하나의 기적이었다.” - 59쪽

 

그는 파리에서 귀엽고 아담한 미국 출신 간호사 롤라를 만났다. 두 사람은 허기진 듯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바르다뮈에게 투혼에 넘치는 듯한 롤라는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야생 고양이의 눈처럼 꼬리가 약간 치올려진, 회색이 감도는 푸른 눈 때문에 조금 잔인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세상의 끝을 향해 유랑하던 바르다뮈는 마침내 미국까지 닿았다. 처음 뉴욕에 도착한 바르다뮈는 놀라운 풍경에 어리둥절해 하면서 곧장 롤라를 찾아 나섰다.

롤라와의 재회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녀는 벌써 바르다뮈와의 사랑은 잊어버렸고, 먹고 살기 위해 세파에 찌든 한 여인에 불과했다. 롤라는 옛 사랑을 생각해서 그에게 잘 곳과 먹을 것을 챙겨준다.

바르다뮈는 전쟁 와중에 왜 서로 죽여야 하느냐고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번민했다. 그는 정신적 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치료를 위해 군 정신병원에 입원하지만 경증이라 외출이 자유롭게 허락되었다. 자주 들르던 에르뜨 부인의 점포에서 배고픈 예술가 뮈진느를 만난다.

그렇게 두 삶이 사귀던 어느 날 공습 경보가 울린다. 바르다뮈는 그녀와 급히 지하로 대피했지만, 하필 푸줏간의 저장고로 쓰이던 지하였다. 순간 그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서 지독한 피, 살 냄새를 맡고 놀라서 흠칫 물러선다. 전쟁터에서 보았던 폭탄과 총알에 찢긴 육신들이 아련거렸다. 결국 바르다뮈는 발작을 일으켰고, 뮈진느는 그의 강박증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린다.

여기서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르다뮈가 누와르쉐르라는 마을에서 정찰을 나갔을 때 조우했던 예비역 로뱅송이다. 이 로뱅송이라는 인물은 소설에서 바르다뮈의 또 다른 분신 역할을 한다. 소설에서 바르다뮈의 초기 삶은 로뱅송의 궤적과 거의 겹쳐진다. 후반으로 가면서 갈라지는 데, 마치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한 쪽씩 다른 길을 가듯 삶을 산다. 로뱅송의 죽음은 바르다뮈 인생의 정점을 이룬다.

바르다뮈는 결국 정신적 증세로 전역하게 된다. 그는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해 마르세이유에서 아프리카로 향하는 화물선에 몸을 싣는다. 그렇게 해서 아프리카, 미국으로의 유랑이 시작된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살아남은 바르다뮈는 본격적으로 밤끝으로의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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