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서 도시를 새롭게 만나는 것은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책은 파리, 빈, 프라하, 런던, 베를린, 라이프치히 등 여섯 도시를 영화 이야기로 시작한다; 파리의 「미드나잇 인 파리」, 빈의 「비포 선라이즈」, 프라하의 「미션 임파서블」, 런던의 「노팅힐」, 베를린의 「베를린 천사의 시」, 그리고 라이프치히 (영화는 없다)
여섯 도시는 작가와 예술가들이 살았던 수많은 이야기와 추억을 품고 있다. 그곳에서 영감을 얻은 저자는 능준한 필체와 생생한 사진으로 독자와 교감한다.
▲저자 조성관 씨
저자는 『월간조선』 기자를 거쳐 『주간조선』 편집장을 지냈다. 15년 전 빈을 여행하던 중 모차르트와 교감을 나누는 진귀한 경험을 하면서 도시 공간에 남겨진 천재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여행 작가가 되었다. 그 결과물이 첫 책 『빈이 사랑한 천재들』(2007)이다. 이렇게 해서 곧 나올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까지 포함하면 시리즈는 총 10권이 됐다.
유럽의 대표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나는 예상치 못한 많은 부수적인 스토리들을 수확했다. 그것은 천재들의 기나긴 삶의 여정에서 수습한 이삭이었다. 훗날을 기약하며 남겨둔 곁가지 이야기들은 여러 권의 취재 수첩에 삐뚤빼뚤한 메모로 남아 있었다. 이들은 내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활자로 태어나게 해달라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언젠가 유럽』은 그 아우성을 여행기(記)의 형태로 쓴 것이다. - 프롤로그에서
맨 먼저 파리 편이다. 책은 우디 엘렌이 만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로 시작한다. 책은 ‘파리’가 무려 전체의 1/3가량을 차지한다. 그 만큼 저자에게 인상적인 도시였음일까. 파리는 다시 예술가, 카페와 묘지 등 3가지 주제로 나뉜다.
▲파리시는 가장 최근에 건설된 복층 인도교에 '파스렐 시몬 드 보부아르'라고 이름지었다. 이 다리는 베르시 지구에서 국립도서관이 있는 톨비악 지구로 연결된다. 보부아르는 20세기 프랑스인을 통틀어 책을 가장 많이 읽은 다섯 명 중 한 명이다. 그녀가 책을 주로 읽은 곳이 바로 국립도서관이었다.
시나리오 작가 길 펜더는 약혼녀 이네즈와 그녀의 부모 이렇게 넷이 파리 여행을 떠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정에 길은 갑자기 나타난 클래식 푸조를 타고 1920년대의 세계로 빠진다. 그곳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와 헤밍웨이 등 유명 작가와 예술가들을 만난다.
길 펜더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는 저명한 미국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을 만나 자신이 쓴 소설을 보여준다. 길은 그녀를 무척 만나고 싶어했다. 현대 문학의 개척자이며,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길을 터준 위대한 작가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길이 쓴 소설의 도입부에 우디 엘렌이 말하고 싶은 주제가 드러난다. “‘과거로부터’라는 이름의 가게, 그곳에선 추억을 팔고 있었다. 한 시대엔 따분하고 천박하기까지 했던 것이 단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신비롭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녀가 앉아 있는 책상 뒤 벽에는 피카소가 그린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마침 스타인은 피카소가 그린 연인 아드리아나의 초상화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다. 우디 엘렌의 로맨스는 여기서도 빠지지 않는다. 길과 아드리아나가 나누는 여우비 같은 사랑과 키스 신은 압권이다.
저자는 작가가 되어 보부아르 처럼 되 마고에서 글을 쓰고 싶어했다. 내 생각에 저자의 이력은 보부아르 보다는 헤밍웨이와 빼닮았다. 헤밍웨이는 캐나다 최대의 일간지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으로 스물한 살에 파리에 와서 6년간을 주재했다. 헤밍웨이는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 그는 결국 사표를 내고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한다. 그 역시 되 마고를 사랑했다.
보부아르 사진이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되 마고에서 실제로 글을 쓰는 모습이다. 이 흑백사진은 청춘의 나를 사로잡은 사진이기도 하다. 되 마고의 존재는 헤밍웨이를 통해 차음 알게 됐지만, 막연하게 작가의 삶을 꿈꾸던 스무 살 언저리, 이 사진 한 장이 나를 뒤흔들었다. 언젠가는 되 마고의 저 자리에 앉아보리라. 저 자리에서 보부아르를 느껴보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49쪽)
나는 저자처럼 열정적으로 뭔가에 매달리는 사람을 좋아한다. 모르긴 해도 파리에 책 분량을 상당 할애한 것도 오늘의 저자가 있게 만든 원동력이 파리의 감성 덕분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파리를 여러 차례 여행했다. 신혼 초 아내와 함께 다녀오기도 했고, OECD와 WHO 출장길에 들르기도 했으며 2주간 프랑스 와인 투어 때 들르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파리의 낭만에 홀딱 빠져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곱씹듯 읽었다.
▲가브리엘(레아 세두)과 길(오웬 윌슨)
결국 길은 이네즈와 헤어지고 평범한 프랑스 여자 가브리엘과 재회한다. 가브리엘은 커피 한 잔하자는 길의 제안에 동의한다. 마침 비가 내린다. “사실 파리는 비올 때 제일 예뻐요.” 둘이 비 내리는 파리의 밤길을 걸어가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가브리엘은 대천사의 이름. 어쩌면 천사는 평범함 속에 숨어 있는 것인지 모른다.
길은 1920년대를 동경했지만 그 시대에 살고 있던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 벨 에포크를 그리워했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내가 얻은 교훈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 미래의 누군가가 그리워할지 모르는 황금시대라는 사실. 오, 카르페 디엠!
한편 길이 마주했던 1920년대의 화려함 속에서 부랑자 신세로 산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에릭 아서 블레어였다. 그는 1927년 8월 노팅힐 포토벨로 22번지에 세를 들었다. 그는 경찰이 되었다가 식민지 미얀마에서 5년 만에 그만두고 무작정 런던으로 돌아온 터였다.
나이 스물네 살, 그는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1928년 봄이 지나 파리로 갔다. 호텔에서 접시를 닦으며 힘겹게 생활비를 벌었지만 밑바닥 인생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는 이때 겪은 모든 체험을 기록해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후 그는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영화 「노팅힐」 포스터
저자는 런던 편에서 작가 리처드 커티스의 작품 「노팅힐」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노팅힐의 여행전문서점 주인 윌리엄 새커와 헐리우드의 톱스타 애나 스콧의 로맨스를 그렸다. 새커의 서점은 포토벨로 142번지에 있다. 1920년대 포토벨로 거리는 대표적인 빈민가였다.
지금은 주중에는 채소와 과일 노점이, 주말에는 골동품 노점이 포토벨리가에서 노팅힐 게이트까지 쫘악 펼쳐진다. 평범한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일상이 열리는 공간이 된다. 특히 카리브해에서 건너온 이주자들 중심으로 매년 노팅힐 카니발이 열린다. 노팅힐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설렁설렁 둘러보고 싶은 사람들이 수시로 찾는 관광명소가 아닐 수 없다.
▲로마시대에 개발된 온천지, 'Roman Bath'
나는 2009년 영국에서 2년간 가족과 함께 유학했었다. 공부했던 곳은 브리스톨에서 가까운 바스. 바스는 로마시대부터 온천지(Roman Bath)로 유명해서 영어 ‘bathroom’의 어원이 된 곳이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무척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제인 오스틴이 한때 살았던 곳이기도 하여 관광객의 발걸음이 연일 끊이지 않는다.
바스에서 런던까지 170킬로미터 남짓, 승용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나는 런던에 한두 달에 한 번꼴로 다녀왔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기도 하고, 코리아타운에서 먹거리를 사거나 미용실을 이용하기도 했다.
영화 「노팅힐」은 1999년에 나왔다. 나는 유학 시절 「노팅힐」에서 봤던 멋스런 장면들을 떠올리며 포토벨로를 찾았다. 새커의 서점에 발을 들여놓기도 하고, 노점을 둘러보며 한두 점 흥미로운 것들을 사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다.
(런던에 있는) 레스터 광장 한가운데 정원은 비극의 황제와 희극의 황제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구도다. 영국 런던이 아니라면 또 어디에서 이런 구도의 동상을 세울 생각을 하고, 또 세울 수 있을까. 소프트 파워(soft power)에서 영국이 여전히 세계 최강을 구가하는 것이 유구한 왕실 전통과 함께 풍부한 스토리를 간직한 인물들을 배출한 토양 때문이리라. 애거사 크리스티, 셜록 홈스, 비틀스, 퀸, 해리 포터가 영국에서 탄생한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바탕 없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271쪽)
레스터 광장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동상은 셰익스피어와 채플린이다. 저자가 말했듯이 영국에 인문학적 콘텐츠가 많은 것은 영국 특유의 분위기와 함께 인간애에서 비롯되었다. 가령 『피터 팬』이나 『나니아 연대기』가 나온 것도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애정 어린 시선 덕분이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한 장면
두 천사가 내려다보는 도시가 있다. 바로 베를린이다. 저자는 베를린하면 「베를린 천사의 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룰루 왕 감독의 「러브 인 베를린」도 있건만, 굳이 「베를린 천사의 시」를 곱는 이유는 이 영화가 베를린을 구석구석 보여주고 작품성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주인공은 두 명의 천사다(이중 천사 다니엘은 나중에 인간이 된다). 날개 달린 두 천사는 우울하게, 때로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본다. 영화는 1987년 독일 통일이전 서독 감독 빔 벤더스가 서독에서 찍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천사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위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빌헬름 기념교회는 1943년 연합군 폭격기에 의해 파괴됐다. 서베를린 정부는 고심을 거듭한 끝에 1957년 기념교회를 파괴된 채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저자는 베를린에 와서 베를린 정신을 느끼고 싶다면 브란데부르크문과 기념교회를 꼭 봐야 한다고 말한다.
▲폭격 맞은 모습 그대로 베를린의 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는 빌헬름 기념교회
한편 1970년 독일 연방 총리는 바르샤바 유대인 희생자 묘지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1957년과 1970년 사건의 중심에 빌리 브란트 총리가 있었다. 전쟁의 과오를 잊지 말자는 반성 덕분일까. 독일 사람들은 ‘빌리 브란트’라는 이름을 도시의 거리나 광장에 넣어 기념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베를린은 1990년 통일 이후 유럽 도시들의 위상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파리와 런던과 빈의 오랜 과점(寡占)을 깨고 그들과 대등하게 올라선 느낌이다. 아니 이제는 그 정도를 넘어서 모든 게 베를린으로 쏠리는 듯한 양상이다.”
2010년 내 가까운 조카는 독일 아가씨와 결혼했다. 둘은 영국 솔즈베리에 있는 어학원에서 처음 만나 남다른 감정을 느꼈다가 얼마 뒤 재회해 사랑에 빠졌다. 핵물리학을 전공하던 독일 소녀는 교환 학생으로 서울에 와서 한글과 한국을 배우기도 했다. 지금은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두 딸을 애지중지 키우고 있다. 내가 옆에서 지켜본 베를린 출신 독일 소녀는 활달하고 당찬 여성이다. 에너지가 가득 넘치는 특유의 독일인 기질이 살아 있다.
프라하 편을 보면 저자는 카프카의 추억이 깃든 곳을 찾는 여정을 자세히 소개한다. 나는 카프카의 팬으로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나의 이목을 끈 것은 카프카가 퇴근하고 자정까지 글을 썼다는 황금골목길에 있던 하늘색 외벽의 22번지였다.
▲카프카가 퇴근 후 글을 썼던 하늘색 외벽의 22번지
이곳은 막내 여동생의 집이었다. 여동생은 작가가 되고 싶어하던 오빠에게 직장(산업재해보험공단)에서 퇴근하면 자기 집에서 소설을 쓰게 배려했다. 지금 이곳은 카프카의 기념품과 책을 파는 서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카프카는 22번지에서 『시골 의사』, 『회랑 관람석에서』, 『형제 살해』, 『재칼과 아랍인』,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등 여러 작품을 썼다.
카프카는 1917년 결핵을 진단받았다. 카프카의 행적을 보면 글을 쓰고 싶어 했던 그는 결핵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당시 결핵은 오늘날 암과 같은 치명적인 존재였다. 카프카는 결핵을 진단받으면서 5년간 사귀었던 연인 펠리체 바우어와도 헤어진다.
그는 이곳저곳 요양하기에 좋다는 곳을 다니고, 채식이나 자연요법도 병행해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나중에는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지경까지 악화됐다. 죽음을 직감한 카프카는 회사도 그만두고 공기 좋고 물 좋은 빈으로 떠났다. 빈 근교에 있던 키얼링 결핵요양원에서 그는 1924년 마흔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카프카의 세 여동생들, 22번지를 집필실을 내줬던 여동생까지 포함해서 모두 나치가 체코를 점령한 뒤 독가스실로 끌려가 생을 마감했다. 참 안타까운 사연이 아닐 수 없다.
▲모딜리아니도, 피카소도 꿈을 키웠던 세탁선
한편 저자는 몽마르트의 현대미술의 성지와 같은 곳 ‘세탁선’ 이름의 유래가 무엇인지, 빈의 카페를 이야기할 때 왜 1683년을 기억해야 하는지, 파스콸라티 남작은 왜 베토벤과 함께 영원을 사는 이름이 되었는지,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괴테가 서울-부산의 거리 만큼 떨어져있던 라이프치히 대학을 다닌 이유가 무엇인지 등등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한아름 풀어놓는다.
▲란트만 카페에 있는 큰 거울 앞 프로이트 지정석
그렇다면 여기서 나는 궁금해진다. 저자는 자신이 다녀본 도시 중 가장 매력적인 곳은 어디일까? “빈, 프라하, 파리입니다. 이들 세 도시는 여행을 하면서 어떤 위압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걷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이용하면서 편안한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프라하 구시가광장은 나의 해외여행 경험에 비추어 가장 매력적인 공간이다. 어떻게 손바닥만 한 공간에 이렇게 기막힌 이야기들이 숨어 있고, 이렇게 개성 있고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모여 있으며, 이렇게 많은 인물들이 거쳐 갈 수 있는지! 파고들면 들수록 경이롭기만 하다. (183쪽)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유럽의 여섯 도시에 대해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모든 공간에는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있다.” 내가 다녀온 도시든 아직 찾지 못한 도시든 그 나름으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내게 새로운 감수성을 자극하고 퍼뜩이는 영감을 안겨준다. 아, 언젠가 유럽으로 다시 떠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