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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에 감추어둔다’는 말로, 저술한 책이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 깊이 감추어두고서 기다린다는 의미다.

 

사마천이 《사기》를 완성하고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 이것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말한 것이다.

“그것(정본)은 명산에 감추어두고 부본(副本)은 수도에 두어 후세의 성인·군자들의 열람을 기다린다(藏之名山, 副在京師, 侯後世聖人君子).”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방대한 분량의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은 인간과 권력을 다룬 이 책의 예사롭지 않은 운명을 예감했다. 그의 말처럼 《사기》는 오랫동안 왕실과 역사가들에게 외면을 받으며 몇 세기를 보내야 했다.

 

이러한 비판의 이면에는 《사기》가 늦게 나온 반고의 《한서(漢書)》와 달리, 도가와 병가, 잡가 등 제자백가를 두루 다루어 국가 이념인 유학에 배치된다는 인식이 가로놓여 있다. 사마천은 자객과 골계가, 점쟁이, 유세가, 의사 등 당시 세상의 비주류들을 과감히 역사의 주류로 등장시켰다.

 

예를 들어, 형가가 연나라에서 거문고와 비슷한 악기인 축(築)의 명수 고점리와 비파를 타면서 술 마시고 노래하기도 하는 호방함, 그가 태자 단의 눈에 들어 진시황 암살 계획을 도모하는 이야기는 사마천이 아니면 쓰기 힘든 소재일 수밖에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또 있으니, 사마천에게 궁형의 치욕을 안긴 한 무제 전반에 대한 비판적 서술 시각의 문제다. 무제는 사마천이 《사기》에서 아버지 경제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 신랄하게 비판한 것을 보고 매우 노여워하며 이 두 본기(本紀)를 폐기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기》가 소외의 시간만 보낸 것은 아니다. 당나라의 문장가 유종원은 《사기》를 웅심아건(雄深雅健, 문장에 힘이 있고 함축성이 있어 품위가 빼어나다)이라고 평가하면서 문장 학습의 기본 틀로 삼았고, 구양수는 애호가로서 《사기》를 즐겨 읽으면서 글을 지을 때 이용하기도 했다. 《사기》의 위상은 청대에 기윤(紀)과 조익(趙翼) 등에 의해 더욱 확고해졌으며, 근대 중국의 루쉰(魯迅)에 의해 역시 ‘천고(千古)의 절창(絶唱)’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고사성어 사전 : 한마디의 인문학

김원중 편저
휴머니스트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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